<인터뷰> 이재형 번역가를 만나다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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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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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번역가에 대해서는 지인으로부터 프랑스 저서를 많이 번역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많다면 한 열 권, 아니면 많아봤자 스무 권 정도? 싶었다. 하지만 고정관념과 편견뿐만 아니라 나만의 생각은 경계해야 될 것이다. 그를 만나 알고보니 89권이라고 한다. 이정도면 대단하다. 거의 불어에는 도통했다 싶을 정도의 그를 만나 한국어와 프랑스어의 미묘한 관계를 듣고 싶었지만 예상은 살짝 빗나가, 순례길과 더불어 프랑스에 대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되었다.
자기 소개 좀 해주세요.
저는 1956년생이고요, 외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고, 졸업후 신문사에서 일하다고 대학원을 갔죠. 그리고 강사 생활을 하다가 1996년에 프랑스에 왔어요. 처음에는 프랑스 남부 도시인 몽펠리에로 갔어요, 거기서 살다가 파리로 올라온 지는 한 3년반 정도 됐어요.
거기 살면서 ‘영화와 만화와의 관계’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했어요. 평소에 그 두 가지 장르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것을 하는데 불문학이 큰 도움이 됐죠. 만화가 인류의 최초의 표현 방식이거든요. 예를 들면 프랑스에 성당들이 많은데 그 입구에 ‘최후의 심판’을 조각으로 보여주잖아요. 그게 일종의 만화인데 그게 왜 프랑스의 모든 성당에 있냐면, 프랑스에 성당이 많이 세워질 당시인 12, 13세기에 대부분 프랑스 사람들은 글을 읽을 줄 몰랐어요. 그 사람들이 성경을 못보는 거죠. 그래서 성경의 가장 충격적이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장면이 ‘최후의 심판’ 이거든요. 죽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거죠. 그게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로 이끌수 있는 충격요법이라고 할수 있죠. 그것을 보고 성당으로 들어가는 거죠. 일반적으로 그것을 만화의 최초로 형태로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만화의 원시적인 형태라고 할수 있어요. 비록 조각이기는 하지만 그게 그림이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그 조각을 보면서 ‘저게 만화 같네’ 싶었죠.
프랑스 문화 쪽으로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네. 지금 그쪽으로 책도 쓰고 있어요. 이번 6월에 출간될 텐데요. 제가 2010년에 순례길을 갔어요. 잘 알려진 스페인 쪽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니고, 프랑스에서 시작해서 프랑스에서 끝나는 코스가 있어요. 르퓌 길이라고 부르죠. 한 달 걸리는데, 리옹 서쪽의 르퓌앙벨레 Le-Puy–en-Velay에서 출발해서 생장피에뒤포르 Saint-Jean-Pied-du-Port까지 가는 길인데, 총 730킬로에요. 유럽 사람들은 두 달을 가요.
순례길이라면 종교적인 의미 아닌가요?
지금은 종교적인 의미가 많이 없어졌고요, 프랑스인들 같은 경우는 은퇴한 그 해에 ‘제 3의 인생’을 기념하기 위해 많이 가요.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아요. 2010년에 4월에 처음으로 걸었는데요,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뭐랄까, 새로운 삶을 사는 느낌? 다시 태어난 느낌? 같았어요. 하루종일 걸으면 육체적으로는 많이 힘들어요. 그런데 정신은 점점 더 맑아지는 거예요.
그게 신앙관과 연결되는 거였나요?
제가 지금은 기독교 신자지만 그때는 아니었어요. 세례를 받기 전이었어요. 신앙과는 아무 연관이 없을 때였죠. 그때까지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좀 쉬면서 살아온 삶도 돌아볼 겸 해서 걸었는데, 예상 밖으로 저한테는 큰 정신적인 충격을 안겨주었어요. 그때만 해도 그게 무엇인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떤 강렬한 종교적인 체험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가고 싶어 계획을 했지만, 기회가 맞지 않았고요. 작년 9월에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다시 갔죠.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순례길 책 준비하고 있어
숙소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2010년 처음 걸었을 때는 30일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라서 23일 만에 끝냈죠. 다녀와서 한국의 출판사와 연결이 되어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고, 아무도 이 길에 대해 다룬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보통 기행문이 아닌 걸으면서 프랑스의 문제점이랄까, 이런 것들을 인문학적으로 풀어가고 있어요. 제가 찍은 사진도 들어가고요. 그 코스가 프랑스의 중심을 넘어가는 건데요, 거기를 걷다보면 젊은 사람들이 없어요. 다 노인들이에요. 동네도 띄엄띄엄 떨어져 있고요. 젊은 사람들이 거기서 살 수가 없어요. 할 일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대부분 대도시로 떠나죠. 그런 게 프랑스의 농촌 문제에요. 또 다른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어느 지점을 통과하다 보면 산 몇 개가 밤나무로 덮여있어요. 지금은 아무도 밤에 신경을 쓰지 않는데, 왜? 언제? 밤나무를 심게 되었는지 원인을 파고 들어가 보는 거죠. 옛날에 프랑스가 비료를 쓰기 전에 밤나무를 심었어요. 비료를 쓰기 전에는 땅이 척박해서 다른 것들을 심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런 땅에서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게 밤나무에요. 그래서 밤나무를 심었는데, 그게 그들의 생존 수단이었어요.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밤나무를 빵나무라고 불러요. 또한 거기가 지대가 높아서 밀을 심을수 없어서, 산을 계단식으로 깎아서 과일 나무를 심었어요. 지금은 아무도 과일을 따먹지 않아요. 풍족하니까요. 걷다보니 특히 사과나무가 많았는데, 길에 사과가 천지에요. 그런 것들을 좀 더 깊이 있게 책에서 다루고 있어요. 6월말에 서울 평창동에 있는 금보성 갤러리에서 제가 다니는 교회의 작가님 두 분과 함께, 저는 사진으로, 아프리카 선교 목적으로 1주간 전시를 해요. 그런 다음 전주에서 또 1주일간 전시회를 하고요. 그때 맞춰서 책이 나옵니다.
번역에 대한 말씀 좀 해주세요.
저도 잘 몰랐는데 검색을 해보니 제가 번역한 책이 89권이더라고요. 그런데 6, 7년 전부터 한국의 출판 시장이 어려워졌어요. 사람들이 책을 안 읽잖아요. 더군다나 프랑스 책은 더 안 나가요. 제가 번역을 하면서도 많이 느끼는 건데요, 일반적으로 프랑스 문학작품은 재미가 없어요. 그런 프랑스 문학의 자리를 일본과 중국 문학이 차지한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와 정서가 비슷하고, 스토리 위주에다가 전개가 빠르고, 훨씬 더 흥미진지하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느린데다가, 철학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출판계가 어려워지면서 프랑스 문학이 더 하락세가 되어버렸죠. 제가 불문과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문학을 전문적으로 번역하고 싶은데, 그전에는 그게 됐어요. 출판 위기가 오기 전에는 번역할 작품이 2년치도 밀려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장르를 고집하기가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제가 장르를 넓혔어요. 인문학과 사회학 쪽으로요.
번역하신 작품 중에 대표적인 건 무엇인가요?
89권이라 저도 잘 기억을 못해요. 대표적인 걸로는 프랑스의 고전인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와 장 쟉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의>,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이건 저와 맞죠... 그리고 한국에서 많이 팔린 <꾸뻬 씨의 여행> 시리즈,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 뜨는 여자>, 마르트 로베르의 <프로이트, 그의 생애와 사랑>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5년 동안 온힘을 다해 번역한 니콜라 부비에의 <세상의 용도>가 2월중에 출간됩니다.
번역하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골치 아프죠. 저는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번역가는 절대로 안 해요. (웃음) 원래 번역은 대학 때부터 했어요. 대학 4학년 때 첫 번역서가 나왔죠. 시몬느 베이유 작품이었어요. 그 다음에는 공부하느라 못하다가 몽펠리에에서 많이 했죠.
번역하시면서 힘들었던 게 있다면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서평을 올릴 수 있잖아요, 오역 같은 거 찾아내서 글을 올려요. 철학 쪽 번역서에 서평이 제일 많아요. 철학서는 번역하기도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려요. 그리고 책이 나오면 안 좋은 소리 들을 확률도 제일 높고요. 그래서 저는 철학책을 잘 안 해요. 서평을 보면 긍정적으로 지적을 해주는 사람도 있는데, 악플도 많이 달리거든요. 본인들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근거 없는 지적을 하고 잘못된 분석을 해서 글을 올려요. 그게 번역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죠. 그래서 저는 번역 의뢰를 받으면 책부터 먼저 읽어보고 제 능력에 벗어날 것 같으면 안 해요. 또한 과학 분야 같은, 저의 전공과 상관없는 것도 안 하죠. 저는 주로 불문학, 인문학, 사회학, 이렇게 세 분야만 합니다.
보통 책 한 권을 번역하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물론 책 분량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저는 하루에 원고지 20매 정도 번역을 해요.
순례길을 걷는 이재형 번역가
순례길 관련 책은 번역서가 아니네요.
제가 쓰게 될 책이죠. 그 책에는 제가 찍은 사진도 들어가는데요, 파리에 올라오면서 사진에 관심을 가졌죠. 작년에 사진 전시도 했어요, 우리 교회에서 아프리카 우물 파는 비용을 헌금하기 위해 화가 한 분과 함께 수익을 기부했죠. 교회에서 한 것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어요. 어떤 거냐면요 프랑스 남부쪽이 신교가 강한데요, 그게 프랑스 역사를 보면 앙리 4세가 낭트 칙령을 발표해서 신교도들이 예배를 자유롭게 드리게 했잖아요. 그 이후 앙리 4세의 손자인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폐지해 버리면서 신교도들이 본격적으로 박해를 받게 되는데, 가장 심하게 박해를 받은 지역이 프랑스 남부에요. 그래서 신교도가 군대를 조직해서 루이 14세 군대와 전투를 해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지만, 결국 왕의 군대를 이길 수는 없었어요. 예배를 못 드리게 하니까 높은 산에 큰 동굴에서 밤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집에서 한두 시간 걸리는 곳인데도 불구하고요. 그런 동굴이 프랑스 남쪽에 많이 남아있어요. 그것을 사진으로 촬영해서 전시를 했죠. 금년에는 파리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게 돼요.
책이 꽤 흥미로울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그 분야로는 처음인데, 인문학적이고 사회적인 접근 방식으로 써가고 있어요. 또 다른 예를 들면요, 그 코스에 카오르라는 도시가 있는데, 19세기의 유명한 프랑스 정치가인 클레망소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그 도시를 다룰 때는 클레망소의 삶을 이야기하게 되죠. 그가 1871년 파리가 독일에 점령을 당했을 때 파리 시민들과 저항하다가 날 수 있는 기구를 타고 몽마르트르에서 탈출을 하게 되는데요. 그날 바람 방향 때문에 원하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는 그런 일화도 담고 있어요.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의 역사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몽펠리에에서 오래 계시다가 파리 오셨잖아요? 파리는 어땠어요?
진작 파리에 오지 않은 걸 후회했어요. 파리에는 할 것도, 볼 것도 많고, 파리가 좋은 게 일 년 내내 그랑팔레나 루브르, 오르세이에서 전시회가 열리잖아요. 제가 전시는 거의 다 보았어요. 음악회도 많이 열리고요, 제가 음악은 장르 불문하고 다 좋아하거든요. 예전에 중고등학교 다닐 때 좋아했던 그룹들이 여기 자주 와서 공연을 하고요, 클래식도 세계적인 수준의 연주자들이 오고요. 문화 혜택 속에 몸을 푹 담그고 살고 있어요. 그만큼 파리가 전 세계에서 문화예술 도시로서 가지고 있는 위치가 막강한 거죠.
앞으로 계획은요?
계속 번역은 하고 있어요. 순례길 관련 책도 지금 번역 작업 때문에 3월부터 시작할 예정이고요. 앞으로는 번역은 좀 줄이고, 파리에 관한 책을 쓸 예정이에요. 이전에는 다뤄지지 않은 장소나 주제를 다룬 책을 쓸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베르사유를 깊이 있게 다룬 책이 없어서 이곳을 심도 있게 다룬 책을 사진을 곁들여 출판하고 싶어요. 날이 갈수록 한국인들의 여행 수준이 높아지고 있거든요,
<파리광장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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