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럽에 우리 한과를 알린다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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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대를 이어가고 있는 태극푸드 전주한과홍의 유홍림 대표와 고은솔 모녀를 만나다.
유홍림 대표와 그의 장녀, 고은솔씨
프랑스에 오래 살면서 어린 시절 한국에서 먹었던 우리의 전통 과자인 유과나 약과에 대한 그리움은 쉬이 떠나지 않는다. 유과는 어린 시절 고모할머니가 맛나게 만들어 집에 가져오시곤 했는데, 향수와 추억, 그리고 그리움이 진하게 배여 있다. 유과 하나에 얽힌 수많은 기억과 관계들이 있는데 어찌 음식이 단순한 그 무엇일수만 있겠는가? 그러다가 파리에서 우연히 전주한과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건 향수, 추억, 그리움과의 만남이었다.
작년 봄 한인 행사에서 파리 전주한과의 유홍림 대표를 우연히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단아한 겉모습에 반해 내면은 왠지 배포 두둑한 슈퍼우먼 같았다.
그리고 2015년 끝자락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유홍림 대표의 전주한과가 전주 명가로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2015년 12월 23일 전주시는 한국전통문화전당 5층 미니컨벤션에서 ‘전주음식 명인, 명소 등 지정업소 시연회 ’를 개최하고, 전주음식의 우수성과 역사성, 전통성을 이어온 음식 대가들에게 전주음식 명인·명소·명가 칭호와 함께 인증서를 교부했다. 이번에 새로 신설된 명가 분야에서 유홍림 대표의 전주한과가 명가로 선정된 것이다. 전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식의 고장이자 유네스코가 선정한 음식 창의 도시다. 그런 고장에서 명가로 선정된 전주한과의 내력에 대해 궁금해졌다. 새로운 해가 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아, 파리에서 유홍림 대표와 그의 딸 고은솔씨를 만났다.
전주한과가 전주 명가로 선정 된 것을 축하합니다. 어떤 과정과 경로를 거쳐 그렇게 된 건가요 ?
유홍림 : 전주는 예로부터 한지, 한식, 한옥의 3대 전통문화로 이름이 높았으며 이제 여기에 또 다른 한겨레의 문화인 한과로 이어 가고자 합니다. 전주가 이처럼 한겨레 문화의 중심이 되는 이유는 호남평야의 맑고 풍부한 자연 속에서 한국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우리 선대들의 숨결이 남아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들이 생산한 쌀과 여러 곡물들을 계약재배하여 한과의 재료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명성을 잇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지금 제가 경영하고 있는 전주한과 홍洪은 대대로 3대를 이어온 가족 기업입니다. 어려서부터 음식솜씨가 좋으신 할머니(김순권여사)와 가정선생님이셨던 어머니(조옥영여사,1981년 신사임당 추대)와 함께 한과를 만들었고, 집안의 내린음식으로 만들었던 한과를 1963년 전주 합죽선, 태극선 등 전통공예의 발전을 위해 한국 유니온 산업사를 설립하신 아버님(유창해 선생)은1986년에 전주 태극산업사로 회사 명칭을 개칭하시고 전통한과를 연구하여 생산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머님은 교육자이시며 전북여성교육의 선각자이셨으며 은퇴후 전주한과를 전국에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셨습니다. 1989년부터는 우편 판매 1호로 전주한과를 우체국 지정판매로 입하하기 시작하셨지요, 2006년 태극산업사는 (당시) 한명숙 총리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2010년 1남5녀인 형제중에 4녀인 제가 이 사업을 이어 받게 되었습니다.
작년 10월에 전주 시청에서 명인,명소,명가 신청 공고가 있었어요. 시청측에서 3대를 이어온 가문이고 전주전통음식에 대표성이 있으니 신청하라는 추천이 와서 신청을 했고, 조례를 수정하면서 까지 실시하는 제도라 3번에 걸친, 복잡하고 어려운 서류,면접, 실기 과정을 통과해서 이번에 전주 명가로 선정됐습니다.
유홍림 대표는 1980년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남편은 신학을, 그리고 유대표는 미학 공부를 하고, 2000년에 파리로 오게 된다. 그리고는 그는 1남 3녀의 엄마다. 외국에서 4남매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일이 쉽지않다. 지금 세 딸들은 장성하여 각자의 길을 가고 있고, 막내 아들은 대학 재학중이다. 특히 딸 둘은 파리에서 그랑제꼴을 나온 수재들이다.
장녀인 고은솔씨는 1살때 부모의 유학으로 독일로 갔고, 대학 1학년때 파리로 오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자란 고은솔씨의 한국어 구사는 완벽했다. 파리에서 법대를 나오고 지금 변호사 사무실의 사무장으로 있는 그는 엄마와 함께 유럽에 한과 전파 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한다.
1남 3녀를 이렇게 훌륭하게 키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대표님의 자녀 교육관이라면요 ?
유홍림 : 유럽에서 살면서 아이들과 철저히 한국 명절을 지키며 한국 문화를 함께 했어요.
저는 우리 조상의 절기에 대한 지혜가 좋았어요.
그리고 독일에 있을때, 독일어를 잘해도 한국말 할 수 없으면 독일어를 잘 하는게 아니라며 한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고은솔 : 어렸을때는 그게 힘들었어요. 독일 친구들과 어울리고 그쪽 문화를 익히고 싶었는데, 집에 와서 한국말 해야 되고 한국어로 일기를 써야하고 이런게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엄마가 안계셔도 한국 명절이면 동생이랑 한국 식당 갔다가 보름에는 다리밟기 하러 가고 동지에는 팥죽을 끓이기도 해요.
엄마와 함께 그리고 나중에 이어 한과 전파 일을 하는게 어때요 ?
고은솔 : 일단은 지금 당장 제가 이어 받는건 아니며, 제가 봤을때 앞으로 엄마가 한 10년은 하실것 같은데요(웃음) 그동안 엄마 하시는 일 보고 배우고, 한국 공장에 가서 한과 만드는 과정도 알아야 되쟎아요.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엄마 일을 이어받아 할수 있다는게, 물론 부담감은 있지만 4대를 잇는 가업으로 외국에서 한국의 가치관을 살릴수 있는 일을 한다는게 뿌듯하고 좋아요. 특히 올해 한불수교 130주년의 해죠. 그로 인해 한국의 문화가 이곳에 더많이 알려진것 같아요. 그런 기회를 이용해서 우리 후식인 한과도 알리고자 하고 있어요.
파리 전주한과는 언제부터 있었는지요 ? 그리고 이곳 현지인들 반응은 어땠나요 ?
유홍림 : 9년 정도 되었어요. 그동안 대사관 행사때 런칭으로 시작했죠. 독일, 네델란드, 프랑스 대사관에서 했어요. 개천절 행사때 오신 분들에게 답례품으로 드렸는데요, 그때는 초창기라 낯설은 후식이라 별다른 시식 행사도 없이 그렇게 한거에요. 그래서 이제는 시식 행사를 많이 하려고 해요. 그리고 앞으로 세계를 향한 한과는 그 나라의 특유의 식감, 색깔등의 선호도에 적응하되 우리 고유의 맛으로 승부하려고 합니다. 한식의 경우처럼 한과의 세계화 역시 단순히 우리의 입맛을 강요해서도 안되지만 우리의 고유성을 상실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한과를 이곳 사람들 입맛에 맞게 하려고 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먹고 싶게 하는거죠.
고은솔 : 7, 8년전 즈음에 파리에서 현지인들 상대로 시식 행사를 했을때 반응은 아주 좋았어요. 왜 프랑스 후식은 많이 달잖아요. 그런데 한과는 유자 같은 것이 들어가니깐 상큼하다고 좋아했었어요.
유홍림 : 교육원에서 하는 프랑스 학교 식당을 상대로 하는 한식 행사가 매년 있어요. 그때 후식으로 한과를 낸적이 있어요. 일단 유과가 색이 예뻐서 먹기는 하지만 먹었을때 엿의 끈적거림이 싫어서 뱉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그런 점을 보안해서 일단은 많이 보여주고 먹어보게 하는게 중요할것 같아요.
고은솔 : 아이들에게는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있지요.
유홍림 : 아~ 프랑스는 그게 장점이지.
이곳 사람들 입맛에 맞게 한다면 한국에서 만드는 한과와는 레시피가 좀 다르겠네요 ?
유홍림 : 한과는 기본적으로 발효 천연 건강 식품이에요. 유과를 하더라도 찹쌀을 삭혀서 발효를 거쳐 튀김으로 부풀려 조청과 튀밥으로 마무리를 하죠. 주로 찹쌀이 들어가는데 이곳 사람들에게 맞지 않는 것을 조금씩 변형시켜 만들려고 해요. 한과는 오방색이에요. 그게 다섯가지 천연 색소가 사람의 오장육부에 좋아요. 제가 2014년에 여기서 한과 런칭을 할때 ‘아직도 마카롱을 드세요 ? 라는 광고문으로 접근을 했죠. 이곳 사람들에게 한과 만드는 퍼포먼스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 때는 여러나라 언어를 구사하는 딸 아이가 필요하죠.
그럼 한과를 이곳 파리에서 만드시는거네요 ?
유홍림 : 약과와 타래과는 여기서 제가 만들고, 유과는 번데기라고 하는 복잡한 과정은 한국에서 만들어서 와요. 그것으로 여기서 마무리 작업을 합니다.
한식 세계화로 비빔밥이나 불고기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한과는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유홍림 :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것 같아요. 그동안 한국 문화와 음식이 많이 홍보 되어 있고 저 자신부터 한과가 건강한 음식이라는 자부심이 있으며 너무 맛있고 좋은거에요.
고은솔 : 사실 홍보하기가 쉬운게 저부터 한과를 많이 좋아해요
은솔씨는 해동 검도를 배운다고요 ?
고은솔 : 지금 3년째 배우고 있는데요, 처음에 운동을 하려고 한국 무술을 찾았는데요. 태권도는 별로 마음에 안들고 해서 엄마에게 여쭈어보니 해동 검도를 권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시범하는거 보니 마음에 들어 해동 검도를 하게 됐죠. 한국 무술이쟎아요. 해동검도하면서 한국 문화를 더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거 같아요. 제가 거기에 유일한 한국 사람이에요. 그래서 한불 관계를 위한 역할도 하게 되죠 (웃음)
유과나 약과는 기름에 튀기지 않습니까 ? 그래서 좀 느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유홍림 :그렇죠. 그러나 약과는 약이 되는 과자라 하여 약과이며 약과는 몸을 따뜻하게 하며 몸에 독성분을 분해한다고 해요. 궁에서 기미상궁이 꼭 약과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름의 산화를 막기 위해 생강이 들어가요. 그리고 튀기지 않은 강정에는 생강이 들어가지 않아요. 그런데 깨강정 말고 쌀 강정에는 조청에 생강을 다져 넣으면 풍미가 더해요. 계속 공부하다 보니까 어떻게 해야 되는지 발견하게 되고 개발하게 돼요.
음식은 종합예술이에요. 제가 미술을 전공해서인지 한과하는데 영향을 미치는것 같아요. 형제들이 많은데도 어머님이 저한테 물려주신게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워낙에 어릴때부터 요리를 잘했어요.
어머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
유홍림 : 어머님은 집안에 일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어릴때부터 저희들에게 집안일을 시키셨어요. 어머님이 만석꾼의 딸로 태어나셔서 부유하게 살았지만, 시집와서 보니깐 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 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셔서 그랬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사회활동도 많이 하셨어요. 소비자 고발센터, 가정법률상담, 그리고 걸스카웃 연맹장도 하시면서 외국으로 많이 다니셨어요. 저희에게 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셨죠. 그리고 13대 신사임당(1981년)으로 추대 되셨어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
유홍림 : 문화가 열려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해서 유럽 그리고 더나아가서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한과가 될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그래서 파리 1구에 한과 부틱을 가지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고은솔 : 그만큼 후식을 위해 지갑을 열수 있는 나라가 프랑스에요.
유홍림 : 서양 음식에는 익숙하면서 우리의 맛을 잃어가고 있는데요. 우리만의 색깔, 맛, 향 등으로 당당하게 도전해보고 싶어요. 태극푸드 “전주한과 홍” 으로 이름을 더하여 대를 이어온 전주한과를 전통문화에 공헌한다는 자부심으로 이 책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전통은 함께 나누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지켜온 전통 한과 맛의 깊이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과 오랫동안의 유럽 체류경험을 바탕으로 한과의 세계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파리광장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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