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암의 한국 명시 산책]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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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지역의 한 일간지에 ‘詩로 여는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시와 짧은 평문을 2년 남짓 연재를 한 적 있다. 나는 그때 연재를 시작하면서 우리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내 이웃들에게 시를 통해서나마 작은 위로라도 전하고 싶었고, 또 그들이 엮어갈 삶의 길 위에 시의 문양(紋樣) 하나 새겨주고 싶었다.
신문에 소개된 300여 편의 시들 가운데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별로 22편씩 선정하여 모두 88편의 시로 책을 묶고, 그 이름을 ‘詩境’이라고 붙였다. 여기에 수록된 시들은 모두 잡지나 시집을 읽다가 감동이 되어 내 시 공책에 또박또박 필사한 것이니 나에게는 시의 경전(經典)과도 같은 작품들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詩經’이라 명명(命名)하고 싶었지만 내가 엮은 책에 ‘經’을 얹는 것은 지나친 것 같아 오래 망설였다. 빛나는 시의 나라를 소요한 내 황홀경(恍惚境)을 담은 것이니 ‘詩境’이라 부르면 족하지 않을까.
서양의 어느 시인은 산문이 언어의 산보(散步)라면 시는 언어의 무용(舞踊)이라고 했다. 또 동양의 한 시인도 시와 산문을 구분하기를, 쌀로 만든 밥이 산문이라면 시는 쌀로 빚은 술이라고 했다. 동·서양 두 시인의 시에 대한 이러한 설명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예술의 정수(精髓)로서 시가 갖는 의미와 그 가치를 강조한 것이리라. 산보가 어찌 무용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것이며, 밥이 어찌 술이 갖는 흥(興)을 넘어설 것인가. 여러 시인들의 멋진 시에 곁들인 어설픈 내 평문이 부끄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 책이 세상 사람들에게 시를 만나는 아름다운 길에 작은 징검돌 하나 놓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좋은 시를 써 주시고 또 여기에 기꺼이 재수록을 허락해주신 여러 시인들께 재삼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올해 88세의 병약하신 우리 어머니, 지난 2년간 대상포진이라는 견디기 힘든 병을 잘 건너와 주셨다. 내가 엮은 ‘시경(詩境)’이라는 이 책을 글자는 모르지만, 시인을 낳으시고 평생 시적인 삶을 살아오신 손순연 여사께 바친다.
-가을, 흥해 현담재(玄潭齋)에 엎드려 -
<헌정 시>
시인의 엄마
-이종암
입 주변까지 번진 대상포진으로 고생하는
여든 일곱의 우리 엄마
37도 무더위에도 지치지 않고 꿋꿋하다
오랜 만에 안부 전화를 드리니
“우리 선상님, 어데 멀리 외국 나가셨든게?”
이리 무더운데 요새 뭘 드시느냐 하니
“내사 하늘의 별 따다 안 묵는게.” 하신다
면구스러움에 앞서, 그 참!
초등학교도 못 나와 한글도 모르는 분이
외국 유람은 어찌 알고
하늘의 별 따다 먹는 것은 또 어찌 알꼬?
시인이랍시고 까불락대는
헐거워진 내 언어가 다시 탱탱해진다

시인 이종암(mulgasar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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