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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영필 교수의 세상 읽기] - 석류의 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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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12-23 01:31 조회 30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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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석류의 빛깔'(1969)


나는 역사적 성격의 영화는 거의 빠뜨리지 않고 본다. 그 외의 영화는 관심이 가는 작품만 선택해서 본다. 어제는〈석류의 빛깔〉 (1969)을 감상했다. 대구 유일 개봉관 CGV아 카데미에서 오후 딱 한 번 상영한다. 얼마 안 되는 관객 중 시니어는 나 밖에 없다. 주로 젊은 대학생들이다. 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 영화를 보러왔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건 구소련 시기에 만들어져 56년 만에 세상으로 나온 영화라는 그 사실 때문이다. 이 영화는 당시 소련 위성 국가였던 아르메니아의 민족 시인 사야트 노바의 일생을 영상으로 그린 것이다. 닫힌 체제 안에서 창 너머로 보이는 세계를 영상으로 표현한다. 원래 제목은 시인의 이름을 달았지만, 검열관이 임의적으로 ‘석류의 빛깔’ 이라 고쳤다고 한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이 석류의 붉은 빛깔과 함께 열린다. 


영화의 주제는 고통, 사랑, 죽음, 신 등 무겁다. 무거울 수밖에 없다. 닫힌 세계 안에서 언어로 표현하는 것조차 검열의 대상이 되어 언어 자체가 고통인 시대였다. 그래서 시인은 말을 절제한다. 꼭 할 말만 한다. 삶은 고통이 라고. 그것도 반복해서 읊조린다. 이 영화 속에서 서사를 발견하긴 힘들다. 그때마다 우연한 이미지들이 불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삶이 예측가능한 것이 아니었던 시대였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연속적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할 수 없었던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니 관객의 시선은 혼란스럽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그런데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시인이 창 너머로 그린 세계를 아르메니아풍으로 영상화한 것이다. 고통은 그냥 아픔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통은 단순한 정서가 아니다. 고통을 통해 주어지는 메시지는 희망이다. 시인은 암울한 동굴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그린다. 언어의 한계를 영상으로 메웠지만, 영상 이미지 역시 관객에게는 한계로 다가온다. 이 영화를 쉽게 이해했다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이다. 그저 주어지는 영상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이 영화는 당신을 이해시키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다. 검열관이 우연히 붙인 제목이긴 하지만 석류라는 영물이 지닌 의미도 이 영화에선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스 신화로 잠시 돌아가자.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지하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당한다. 데메테르의 아버지는 제우스다. 딸이 지하의 세계로 납치당했으니 구해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데스의 부탁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제우스다. 딸을 찾아달라는 데메테르의 간청을 듣고, 제우스는 한 가지 조건을 단다. 하데스의 눈치도 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조건은 저승에서 머무는 동안 그곳 음식을 먹었다면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상으로 돌아간다는 기쁨 때문에 페르세포네는 먹지 말아야 할 석류의 네 알을 먹고 말았다. 제우스가 판단을 내린다. 4 알을 먹었으니 일 년 열두 달의 3분의 1은 지하에, 나머지 3분의 2는 지상에서 어머니와 살게 한다. 이처럼 석류는 지상과 지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한다. 먹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먹을 수밖에 없는 마력을 지닌 과일이다. 석류의 빛깔은 이중적이다.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그리고 고통과 희망을 담고 있다. 인생은 석류의 빛깔이 지닌 이중성을 운명으로 받아 안고 사는 게 아닐까? 제목을 ‘석류의 빛깔’로 바꾼 게 그저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이 영화를 보고나니 체코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화가인 알폰스 무하가 생각난다. 마침 그의 특별전〈알폰스 무하: 빛과 꿈〉이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 ALT.1에서 11월 8일 개막해 내년 3월 4일까지 전시 중이다. 전시 중인 걸 몰랐다. 사야트 노바와 알폰스 무하 가 영화와 미술로 대한민국에서 조우하는 게 마냥 우연만은 아닌 듯. 우리 역시 창너머의 세계를 우리만의 이야기로 그려내야 했던 아픔을 공유한 민족이기에 더욱 그렇다. 


<김영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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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대학교 교수와 대구 교육대학교 연구교수 역임. 철학박사(전공 서양철학 중 현상학). 저서로는 ‘여행, 인문에 담다(2020)’ , ‘욕망으로 성찰한 조선의 공간(2021: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신천에 철학 카페를 짓다(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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