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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필 교수의 세상 읽기] - 페이크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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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베스트 오퍼'(2014) 포스터


유튜브에서 영화〈베스트 오퍼(2014)〉의 하이라이트를 우연히 보았다. 이 영화는 최고의 감정가이자 경매사인 한 노인의 러브스토리다. 70이 넘은 한 노인이 젊은 여인에게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다. 그가 평생 한 일은 장갑을 끼고 작품을 감정하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여인을 그린 작품들을 자신 의 창고에 은밀히 숨겨둔다. 그것도 위조품이라 감정해 낮은 낙찰가로 구입하도록 친구를 시켜서 모은 작품들이다. 


이 노인은 부모에게서 상속 받은 고가의 미술품을 경매에 부쳐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문제는 이 의뢰인이 광장 공포증, 즉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집 안에서만 있는 희귀질환을 12년째 앓고 있다. 노인은 의뢰인을 훔쳐볼 기회를 갖는다. 젊은 미모의 여성이다. 그 후 노인은 점차 이 여인에게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노인은 베스트 오퍼를 만났다. 자신의 인생과 맞바꿀 수 있는 명작을 만났다. 


‘사랑’이란 작품이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광장 공포증을 앓고 있는 젊은 여인과, 노인이 자주 찾아가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털어놓았던 젊은 남자는 연인 사이다. 이 둘이 짜고 노인이 평생 모아 놓은 명작 들을 모두 훔쳐서 달아난다. 노인이 한 말이다. “모든 위조품엔 진실의 미덕이 숨어 있다.” 

그렇다. 작가는 진심을 다해 위조품을 만든다. 위조품일수록 더욱 더 진심을 담는다. 노인은 자신이 한 말이 덫이 되었다. 위조된 사랑놀이의 희생자가 되었다. 하지만 노인은 사랑했던 여인이 프라하 여느 카페에서 행복했었다는 말을 전해 들은 걸 기억하면서 그 카페를 홀로 찾는다. 


혼자 앉아 있는 노인에게 점원이 혼자냐고 묻는다. 노인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는 여전히 사랑에 빠져 있다. 페이크 러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가짜란 사실이 드러나기 전엔 진심으로 사랑 한다. 드러난 후에도 여전히 사랑은 변함이 없다. 노인에겐 여전히 진실된 사랑이었다. 비록 상대의 사랑이 가짜였을지라도 사랑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한 것이 나의 선택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후회는 선택의 자유가 보장될 때 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적 사랑은 사랑일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빠져든 사랑이기에 나를 두고 떠난 사랑을 후회할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다. 후회하는 자만 어리석은 자가 된다. 모든 사랑은 사랑하는 순간엔 다 진실의 미덕이 숨어 있다. 진실의 미덕이 없는 사랑은 유희에 불과하다. 


나에게도 그렇게 떠나 버린 한때의 사랑이 있었다. 떠난 사람은 위조품(?)이라도 사랑 자체는 위조품이 아니다. 사랑했던 사람은 변해도. '사랑'이란 관념 은 영원하다. 불에 타 없어질 수도 바람에 날아갈 수도 없다. 모든 사랑은 그 자체로 위대한 작품이다. 자신의 삶과 맞바꿀 수 있는 베스트 오퍼는 '사랑'이란 걸작이다. 


<김영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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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대학교 교수와 대구 교육대학교 연구교수 역임. 철학박사(전공 서양철학 중 현상학). 저서로는 ‘여행, 인문에 담다(2020)’ , ‘욕망으로 성찰한 조선의 공간(2021: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신천에 철학 카페를 짓다(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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