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아틀리에 탐방] 타자와의 공존, 모준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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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준석 작가
조각-조형예술가 모준석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현대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가로, 이미 미술계에서 그 역량과 작품성을 두루 인정받아 온 작가다. 국민대 학교에서 입체미술을 전공한 그는 파리1대 학 팡테옹-소르본에서 조형예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실의 공간을 넘어 가상의 공간까지 아우 르며 시공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 세계의 중심에는 언제나 ‘타자와의 공 존’이라는 주제가 놓여 있다. 작가는 이 개념을 선, 조각, 경계라는 형식 언어로 시각화하며,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함께 존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어떤 미학이 형성되는지를 끊임없이 탐색한다. 그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닌, 존재 그 안에서의 관계를 탐구하는 말 그대로 끝없는 ‘질문과 답의 공존’을 작품 속에 담아 관객에게 제시한다.
모준석 작가의 작품은 현재 아사쿠라후미오 박물관(일본 오이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정부미술은행, 포항시립미술관, 한국미술관, 서울 플라자 호텔 등 국내외 주요기관과 기업에 소장되어 있으며, 일상과 공공 공간 속에서 우리와 직접 만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의 작품 세계와 창작 철학,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을 들어보았다.
본인을 조각가로 소개하는데, 작품이 전통적인 조각과는 좀 다른 형식이다.
-로댕의 조각을 생각하면 알 수 있듯, 보통 조각이라고 하면 볼륨, 덩어리가 있어 안밖의 경계가 분명하다. 하지만 내 작품은 ‘안’ 과 ‘밖’의 경계가 모호하다. «조각이라는 것이 반드시 막혀 있어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은 이미 조각사에서 많이 다뤄졌는데, 이를 ‘역구조’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선만으로 부피를 가늠하고 무게감을 상상할 수 있고, 안과 밖이 명확히 구분되기 보다는 안이면서 동시에 밖이 될 수 있는 이런 작품들을 하고 있다.
선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지만, 상대적인 볼륨감이 인상적이다. 마치 거대한 건축물의 내부 철골 구조물이나 마케트(maquette)를 보는 듯하다. 선을 이용해서인지 회화적인 분위기도 느껴진다. 작품의 주된 재료와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주요 재료는 동선이다. 동선을 달군 뒤 망치로 두들겨 단조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선들을 용접해 하나의 구조적 형상을 만든다. 선을 두들기는 방식으로 ‘공간에 드로잉 한다’는 느낌을 더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가공하지 않은 스테인레스 선을 그대로 사용했지만, 시각적 완성도가 아쉬웠다. 그러다 우연히 동선을 두드려 봤는데 마치 드로잉한 것 같은 효과도 주면서, 구조적으로 훨씬 안정적인 작업이 됐다. 드로잉을 바탕으로 점토로 입체적인 형태를 구현한다. 이 점토로 만든 마케트 덩어리에서 형태를 이루는 선들로 최종적인 형태를 구성한다. 동선을 두드려 질감을 더하고, 이를 용접해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구조물 중간중간 창문처럼 스테인드글라스를 배치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공존’이다. 오래전부터 이 질문을 붙잡고 작업해왔고, 박사 논문 제목도 «공존의 미 학: 선, 조각, 경계» 이다. ‘공존’ 이라는 것은 결국 ‘나’와 ‘타자, 즉 두 존재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로 다른 존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지’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해왔다. 이런 고민을, 선을 활용해 안과 밖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로 구체화 된다. 예를 들어 빛이 들어오면 그림자와 실체가 있는 금속 조각, 또는 빛이 사라지면 실체는 여전히 존재함에도 사라져 버리는 그림자, 이런 반대되는 속성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형태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빛과(빛을 이용한) 그림자(재료), 작품(물질) 이 세 가지가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메타포를 이룬 상태가 작품 감상의 포인트인가?
-그렇게 볼 수 있다. 작품 자체는 그대로지만, 조명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는 끊임없이 달라진다. 실물은 움직이지 않지만, 조명의 위치가 바뀌면 그림자의 크기나 형태가 변하고 때로는 왜곡된다. 우리는 흔히 ‘빛과 그림자는 서로 반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빛과 그림자는 항상 동시에 존재하는,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반대로 어둠에는 빛도 그림자도 없다. 즉, 빛과 그림자가 서로의 반대말이 아니라, 이 두 개를 함께 부정하는 개념이 바로 ‘어둠’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차이’를 ‘반대 개념’으로만 이해하려고 하지만, 사실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일 수도 있다. 내 작품은 이런 사고방식-‘겉보기에 반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호적으로 존재하는 관계’-를 역구조적 성질을 드러내려는 시도다.

<끝이 없는>, 2025,
동선, 스테인드글라스, 67×40×42cm
영상: Boundaryless Way(경계 없는 길), 2023-2024 : VR 드로잉으로 만든 디지털 조각, 가상현실 드로잉, 사운드, 4k, 2분51초 - https://vimeo.com/1034446124
주제 의식 전반에 비판적 시각이나 사회 이슈가 강하게 느껴진다
-사회적 이슈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 등 모든 것이 담겨있다. 물론, 다루는 주제 자체가 ‘타인과 어떻게 살 것인가’, 즉 (타인과의) ‘공존’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회적 이슈에도 민감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타자와의 ‘공존’에 대해 작가적 관점에서 스스로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예를 들면, ‘타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에서 시작해, ‘타인과 내가 가지고 있는 그 경계가 무엇인가’, ‘그 경계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 차이는 왜 생겼는지’, 그리고 ‘그 차이를 우리가 어떻게 다뤄야 되는지’….등 이런 지점들을 끊임없이 자문하며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다.
냉철한 시각, 주제 의식만큼이나 조형미가 뛰어나다. 울퉁불퉁한 선은 회화적이고 신체적이면서도, 중간중간 배치된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채감은 시적이고 동화적이기도 하다.
-작품에는 내용과 기법이 있기 때문에,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에 합당한 기법이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용은 거창한 데 시각적인 비주얼이 받쳐주지 않으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무너진다. 마치 비행기가 나는 것처럼 양쪽 날개가 모두가 탄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건축물 중에서도 특히 집(아파트)의 형상이 많이 등장한다. 간단히 말해, 공존과 집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작업 초기, 집이라는 형상은 나의 아주 어린 시절 개인적인 경험과 깊이 연결된다. 어린 시절 가족이 한 방에서 지냈는데, 경계가 없는 거다. 이 경험이 나한테는 ‘경계 없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입력된 거 같다. 군대도, 기숙사 생활에서도 샤워실, 화장실도 다 같이 쓰고 경계가 없었다. 경계 없이 사람들과 만나는 장소가 나에게는 집이었다. 결국 집은 나에게 만남과 공존,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 장소이기 때문에, 그 메타포(은유)를 작업 속에 계속 활용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집은 안전하고 외부로부터 [내가]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지는데, 공존과 경계의 모호함이라는 확장된 개념으로 접근하는 점이 흥미롭다.
-2020년 코로나 시기, 외출도 작업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과 소통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가상 현실(VR) 공간을 알게 됐다. 오큘러스를 착용하고 가상의 VR 공간에서 선을 이용해 드로잉을 하면서 디지털 조각을 만들 수 있다. 실제 용접 방식과 비슷하다. VR 공간은 중력과 면적에 한계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가상 현실, 증강 현실에서는, 이런 집이라는 메타포보다는 좀 더 다이나믹한 형태와 공간을 발견하고 체험하고 경험하고 이런 부분에 훨씬 더 방점을 두고 탐구하게 된다. 공통점은 내부가 다 비어 있다는 거다. 면(벽)이 없고, 내부가 다 뚫려 있기 때문에 내,외부 구조를 온전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이나 열린 문처럼 상징적으로 집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다.
VR 드로잉으로 제작한 디지털 조각은 관객들이 어떻게 감상할 수 있나 ?
-관객이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인식하면 증강현실을 통해 디지털 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입체 조각에서 디지털 조각까지 작업 세계가 매우 확장되었다. 지금까지 해온 입체 조각과 디지털 조각의 차이가 궁금하다. 또, 재료로서 디지털의 매력은 무엇인가?
-앞으로의 작업은 두 가지 트랙이 병행될 것이다. 기존 조각은 항상 정지 되어있고, 시야와 위치가 한정되어 있다. 반면, 디지털은 마치 내가 새가 된 듯 이(가상) 공간을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다. 매트릭스 세계처럼 작품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돌리고 이동할 수 있다. 지금까지 조각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조각에 대한 정의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해왔는데, 디지털과 증강현실 작업은 실물 조각의 한계를 어느정도 극복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조각이란 공간을 다루고, 공간을 재료로 삼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디지털 조각’이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본인이 느끼는 미술의 매력은 무엇인가?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을 만나면서 미술을 시작했다. 당시 ‘너의 인생을 그려봐라’ 는 추상적인 주제가 나왔는데, 거기서 큰 매력을 느꼈다. 미술은 당연히 시각 표현 예술이지만, ‘무엇인가,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고 ‘내 표현과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너무 재미있었다.
예술/예술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술, 예술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시대에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어떤 타이틀 보다, 앞으로 계속 작업을 하면서 내가 ‘동시대에 필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가 나에게 가장 큰 숙제다. 그것이 비록 내 개인적인 질문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시기와 상황이 잘 맞는다면 ‘시대의 질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회와 소통하고
경험한 수많은 것들이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들을 시각적인 방식으로 또는 다른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고, 작가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안전성이나 비-안전성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작품과 생각이 어디까지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가이다. 이를 위해 안정적인 것이 필요다면 안정성을, 비-안전성이
필요하다면 비-안정성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모준석 작가 개인전 « ni dedans ni dehors »-
일시: 11월 18일-30일, 오프닝 18일 18시
장소: 갤러리 'quand les fleurs nous sauvent'
16 Rue Guénégaud, Paris 6ème
<현 경 기자 dongsim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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