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암의 시와 시작 노트] 시론(詩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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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詩論)
-이종암
3학년 9반 교실‘독서’수업 시간, EBS 수능특강 언어영역 60쪽 황동규 선생의 시
「퇴원 날 저녁」을 가르치다가“주인이 나오기 전에/배터리 닳지 말라고 속삭인다.”에
밑줄 그으라고, 시인은 저렇게 배터리 닳아가는 자동차에게도 말을 건네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시인은 위대한 거라고, 아이들에게 받아 적으라고 윽박지른다. 괄호 열고,
우리의 이종암 시인 또한 위대하다, 괄호 닫고.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에이, 웩웩,
책상 두드리고 고함지르고 교실이 완전 난장판이다. 아니다 야들아, 진짜라니까.
내 말 못 믿는 사람, 수업 마치고 교무실로 와서 봐라. 내 책상 위 물컵 속에 며칠 전 화단에서
꺾어온 매화 활짝 웃고 있단다. 그거 내가 자꾸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말 건네서 활짝
웃으며 꽃 핀 거라니까.
시詩라는 건 세상에 말 걸기이다. 수업 끝.
-『꽃과 별과 총』(시와반시, 2024)
[시작 노트]
저는 31년간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다가 지난 2022년 2월에 명예 퇴직을 하였습니다.「시론(詩論)」이라는 시는 2001년쯤 경북 포항에 있는 대동고등학교 3학년 9반 교실에서 있었던 수업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아이들과 재미나게 하던 문학 수업 시간, 한두 시간 빌 때 교장 몰래 체육 시간 아이들과 축구를 하던 그때가 벌써 그립기만 합니다. 시는 사물과 존재에 가까이 다가가서 그 이름을 불러주고 언어적 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생업(生 業)에도 졸업한 마당에, 날마다 읽고 쓰기를 끊임없이 지속하면서 지금의 제 좁은 언어적 상상력의 울타리를 날마다 쳐부수고 그것을 더욱 넓혀가기를 다짐해봅니다. 이제 나는 전업 작가다, 라는 그 분명한 마음으로.
시인 이종암(mulgasarang@hanmail.net)
1999년 동인지《푸른시99》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집으로《물이 살다 간 자리》로 등단. 발간한 시집은《저, 쉼표들》,《몸꽃》,《꽃과 별과 총》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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