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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아줌마 단상] "10여 년 만에 한국의 무더운 여름을 접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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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여름에 가본지는 10여 년은 된 것 같다. 그동안 주로 가을, 겨울에 한국을 다녀 오곤 하다가 지난 겨울에 가려다가 체류증이 만기가 되어 이번에 갱신하고 여름 휴가 때 가게 된 것이다. 곧 90의 문턱에 들어서는 엄 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나의 고향 대구의 ‘대프리카’ 악명은 익히 들어서 각오는 좀 했었다. 하지만 폭염에 선 풍기 하나 제대로 없는 파리에 비하자면 한국은 실내만 들어가면 냉방이 빵빵하니 괜찮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이 생각으로는 무엇인들 못하고 못 견디랴!. 하지만 오랜 만에 접해본 한국의 여름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더위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다: 2년 반 만에 간 나의 나라, 한국 땅을 눈에 가득 담으며 감격스러워했다. 리무진을 타고 대구로 내려오는데 잠시 휴식 시간을 주길래 버스에서 내려보니 믿기 어려운 더운 기운이 엄습했다. 하지만 가열된 버스 안에서 나오는 공기라고 일축하고 싶었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둘러보는데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온 한국에 대한 감격이 지배적이었다. 더운 날, 휴게소 음식 부스에서 뜨거운 열기를 견디며 일하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짠해지기는 했다. 


엄마의 에어컨 

그렇게 ‘대프리카’에 도착해서 엄마와 동생들을 만났다. 엄마가 에어콘을 가동시키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오후 12시부터 6시까지였다. 나는 ‘대프리카’에서 에어콘 없이 잠을 자야만 했고, 나는 찬밥이 좋다고 하는데도, 엄마는 그건 ‘실기 없다’며 멀리서 온 딸내미에게 매일 따신 밥을 해 주었고, 나는 매일 뜨거운 밥통의 열기가 있는 엄마의 부엌에서 식사를 해야만 했다.

엄마의 집이고, 엄마의 생활 리듬과 룰을 온전히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에 감히? 오후 12시 이전이나, 오후 6시 이후에 에어콘을 좀 틀자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의 말을 거역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노인들은 더위를 덜 탄다는, ‘청천벽력’까지는 아니었지만 숨이 잠시 막히는 듯한 느낌의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엄마의 에어콘 가동 시간 제한은 전기요금과 직결되어 있었고, 동생은 "그거 얼마나 더 나온다고!"라며 탄식을 하면서, "언니가 알아서 에어콘 틀고 지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동생의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14시부터 17시까지는 외출 자제 당부 

한국을 다니러 가면 거리 산책을 즐긴다. 걸으며 쇼윈도 디스플레이가 눈에 띄면 매장에 들어가 옷을 입어 보고 마음에 들면 사서 오곤 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엄마 집 인근의 재래 시장으로 구경을 갔었다. 그때가 오후 2시경이었다. 그리 많이 걷지도 않았고, 잠시 다녀왔는데, 더위에 얼굴은 금방 벌겋게 달아 오르면서 거의 실신할 정도였다. 시간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TV뉴스에서는 온열 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외출을 자제하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이는 특히 농사일 하는 분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대에는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더운 날 얼굴을 가리고, 마스크까지 착용한 이들, 그리고 민소매 하나 입은 여성을 본 적이 없다. 오로지 나 밖에는.. 

더우면 무조건 벗고 다니는 파리 시민들만 봐서인지 이상히 여겨서 친구에게 물어보니 "피부가 해볕에 그을릴까봐 그런다"고 한다. 프랑스에 오래 살아서 한국 여성들의 해볕에 민감한 피부를 잠시 잊고 있었다. 


파리로 돌아오기 며칠 전부터 나는 한동안 장염을 호되게 앓았다. 나는 좀처럼 장염은 걸리지 않는데, 한국 더위의 열기 탓인지, 아니면 엄마가 몸을 보신하기 위해 지어준 한약이 독했는지,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국 가서 맛난 거 많이 먹고 몸무게가 늘 것이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덕분에? 몸은 좀 가벼워진 것 같고, 요즘 많이 먹지 않고, 먹는 것을 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장염의 여운을 안고 나의 삶의 터전인 파리로 돌아왔다. 

‘다시는 여름에 한국을 가지 않을거’라는 다짐을 안고 말이다. 


<파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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