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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하원, ‘조력 사망’ 허용 법안 통과, 상원 논의는 험로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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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하원이 지난 27일 화요일(현지 각), 수년간 준비해 온 ‘조력 사망의 권리 (droit à l’aide active à mourir)’ 즉, ‘임종 지원법(Loi fin de vie)’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선 중대한 개혁안이 첫 관문을 넘었다. 이는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에서 약속한 핵심 공약 중 하나다. 본회의 투표 결과는 찬성 305표, 반대 199표, 기권 57표로,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좌파 정당들과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 연합 (Ensemble pour la République), 그리고 모뎀(MoDem) 소속 대부분의 의원들이 법안을 지지한 반면, 공화당(LR) 과 극우 정당, 국민 연합(RN)은 대규모 반대 표결을 보이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번 법안은 개인의 신념과 삶의 경험에 깊이 연관된 주제인 만큼, 모든 정당은 의원들에게 자유 투표를 허용했다. 


투표에 앞서, 하원은 보다 폭넓은 합의를 이룬 ‘완화 치료(soins palliatifs) 지원 및 강화’ 법안을 만장일치(찬성 560표)로 가결했다. 하지만 조력적 죽음 법안을 둘러싼 논의는 훨씬 복잡하고 민감한 양상을 띠고 있다.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X(구 트위터)를 통해 “각자의 감수성, 의문, 그리고 희망을 존중하며, 내가 바랐던 ‘형제애의 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품위(존엄성)와 인간성을 바탕으로”라고 밝히며, 이번 법안 통과를 “중요한 단계”라고 평가했다. 



법률 용어는 신중히 조정, ‘양심 조항’ 포함 안전장치 강화 

이번 법안을 발의한 모뎀(MoDem) 소속 올리비에 팔로르니(Olivier Falorni) 의원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즉,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환자에게 치명적인 약물 사용을 허용하고, 이를 지원하는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환자(신청인)는 약물을 직접 복용하거나, 신체적으로 불가능한 경우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결국, 해당 법안은 자살을 돕는 ‘조력 자살(suicide assisté)’ 을 합법화하며,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안락사(euthanasie)’도 허용하는 구조다. 다만 «‘조력 자살’이나 ‘안락사’라는 용어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이유로 법안 본문에는 명시되지 않았다.

대신 상대적으로 덜 자극적이고 분열적이지 않은 ‘조력 사망(aide à mourir)’과 ‘자가 투약(auto-administration)’이라는 표현이 선택됐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권리 협회(ADMD, Association pour le droit de mourir dans la dignité)’의 조나탄 드니(Jonathan Denis) 회장은 이번 결정에 대해, “통제 가능한 삶의 마무리,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불필요한 고통스러운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고 평가했다. 법안은 ‘조력 사망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환자의 조건으로 총 다섯 가지 누적 요건을 명시하며, 그 가운데 핵심 기준은 ▲치유 불가능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질환일 것 ▲병이 말기이거나 고도로 진행된 상태일 것 ▲육체적 또는 심리적으로 지속적인 고통을 겪고 있을 것 등이 포함된다. 


국회는 또한 이번 법안 심의 과정에서 절차의 신중함과 윤리적 기준을 보완하기 위한 중요한 수정안 두 건을 채택했다. 먼저, 프레데릭 발르투(Frédéric Valletoux, Horizons) 사회문제위원회 위원장이 제안한 수정안은 의료진 간의 집단적 (합의적) 판단 절차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어서, 정부가 발의한 또 다른 수정안은, 환자가 결정을 번복할 수 있도록 최소 2일의 재확인 기간을 두는 조항을 다시 삽입했다. 아울러, 모든 의사와 간호사는 ‘양심 조 항(clause de conscience)’을 근거로 조력 사망 시행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보장받게 된다. 이러한 조건들은 신중한 적용을 위한 ‘안전장치’로 제시되었지만, 보수 진영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지는 못했으며, 정부 전체를 설득하지 못한 상황이다. 


정부와 상원의 입장은 여전히 신중 

특히 해당 법안에 강력히 반대 입장을 보여온 내무부 장관이자, 공화당(LR, 상원 다수당)의 신임 대표, 브뤼노 르타이요(Bruno Retailleau)는 해당 법안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프랑수아 바이루(François Bayrou) 총리 역시 여전히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보수 출신으로 과거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해온 보건부 장관, 카트린 보트랭(Catherine Vautrin)은 이번 법안을 "균형 잡힌 법안"이라고 평가하며 적극 지지하고 있다. 총리는 이날 오전 BFMTV와의 인터뷰에서 “여전히 많은 의문점이 남아 있으며, 의회 논의를 통해 해소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가을, 상원 심의 앞두고 보수 진영 강한 반대 지속 

보수 우파는 이번 법안에 대해 여전히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공화당(Les Républicains)소속, 필리프 쥐뱅(Philippe Juvin) 의원은 “이 법안은 앞으로 수년을 더 살게 될 환자들, 그리고 질병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너무 큰 부담이 된다는 생각’에서 오는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적용될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또한 법안에 담긴 기준이 ‘엄격하다’는 주장과 절차가 ‘진정한 집단 결정(합의 절차)’이라는 점을 모두 부인하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법안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세력 중 하나인 프랑스 돌봄 및 완화 치료 협회(SFAP, Société française d’accompagnement et de soins palliatifs)의 의료진들은 이번 법안이 ‘돌봄(노동)인의 본질적인 임무를 바꾸는 중대한 변화’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협회장 클레르 푸르카드(Claire Fourcade) 는 “이번 ‘조력 사망’ 법안은 예외적인 상황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현재 의료 서비스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 에서 자유로운 선택이 보장될 수 없다”고 덧 붙였다. 한편, 이번 표결에서 기권한 ‘불복하는 프랑스(La France Insoumise)’소속, 소피아 시키루(Sophia Chikirou) 의원은, 일간지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이 법안이 인류학적 측면에서 어떤 도덕적 영향을 미칠지, 포식적 자본주의에 의해 조직된 사회에 어떤 해로운 효과를 가져올지 의문이다. 또한, 현재 법으로도 대부분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데 굳이 새로운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는 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이 법안은 상원 심의를 거쳐야 하며, 올해 가을쯤 첫 심의가 예상된다. 이후 하원으로 다시 돌아와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심의가 진행될 가능성도 있어, 법안 내용은 앞으로도 여러 차례 조정될 전망이다. 


국민투표 가능성도 열려 있어 

법안이 상원에서 제동에 걸릴 가능성을 고려해, 마크롱 대통령은 조력 사망에 대한 논의가 의회 내에서 교착 상태에 빠질 경우 국민투표를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이미 밝혔다. 이 문제는 2022년 시민협의회 (Convention citoyenne)를 통해 공론화된 바 있다. 이후 마크롱은 2024년 3월, 법안의 주요 방향을 발표했으나, 국회 해산으로 인해 심의가 중단되면서 법안 처리는 일시적으로 좌절됐다. 

한편, 보트랭 보건부 장관은 지난 주말, “조력 사망 권리 법안이 2027년까지 통과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직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밝혔다. 


 “매우 균형 잡힌 법안, 2012년 동성결혼 이후 가장 큰 사회 개혁될 것” 

이 법안을 발의한 팔로르니 의원은 27일 (현지 시각)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이 법안은 매우 균형 잡힌 법안이며, 적용을 위한 기준도 엄격하게 정의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개혁이 최종적으로 입법에 성공할 경우, 2012년 ‘모두를 위한 결혼법’(동성결혼 합법화) 이후 프랑스 사회에 있어 가장 중요 한 사회적 진전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 경 기자 dongsim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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