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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의 <학부모와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 한 스푼>-신라 시대 현명한 인재 등용의 교훈, 화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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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 초상


이번 호에서는 신라 시대의 이야기 하나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바로 '화왕계’인데요, 화왕(花王)은 '꽃의 왕'을, 계(戒)는 '경계하다', '조심하다'의 의미로, “화왕에 대한 경계”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 사료는 신라의 신문왕(재위 681~692)을 깨우치기 위해 설총(薛聰)이 들려준 우화입니다. 

설총은 신라의 대표적 학자이자 문장가이자, 이두를 정리한 인물로, 신라 유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이야기를 간략히 요약해보겠습니다


신문 왕이 어느날 설총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 달라고 요청하자, 설총은 화왕, 즉 꽃들의 왕 이야기 한 편을 들려줍니다. “……(전략)…… 신문대왕(神文大王)이 한 여름 5월에 높고 밝은 방에 거처하면서 설총 (薛聰)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 그대는 틀림없이 기이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을 것이니, 나를 위해서 이야기해 주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설총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이 들으니 옛날에 화왕 (花王)이 처음 전래하였을 때 이를 향기로운 정원에 심고 비취색 장막을 둘러 보호하자 봄 내내 그 색깔의 고움을 발산하니 온갖 꽃 을 능가하여 홀로 빼어났습니다. …”-『삼국사기』권46, 「열전」6 설총 


이런 화왕 앞에 아름다운 장미와 지혜로운 백두옹이 찾아왔습니다. 화왕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미를 선택한 반면, 백두옹(白頭翁) 의 충언은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러자 백두옹은 군주가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는 것을 한탄하며 떠나버렸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왔는데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리시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화왕이 말하기를, ‘장부의 말에도 합당한 것이 있으나 아름다운 사람은 얻기 어려운 것이니 이를 어떻게 함이 좋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장부가 다가가 말하기를, ‘저는 왕께서 총명하여 이치와 옳은 것을 알 것으로 생각하여서 왔는데, 이제 보니 그것이 아닙니다. 무릇 임금이 된 자가 사특하고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정직한 사람을 멀리하지 않음이 드뭅니다. … “-『삼국사기』권46, 「열전」6 설총 


이 우화는 왕에게 따끔한 충언을 담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 내면의 진실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요. 어찌 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을 직접 들은 권력자에게는 불편하고 쓰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신문대왕은 이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설총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그릇이 크고 인품이 넉넉한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고자 기록으로 남겼고, 설총에게 높은 관직을 내 리기도 했습니다. 


“화왕이 이르기를, ‘내가 잘못하였구나! 내가 잘못하였구나!’라고 하였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슬픈 얼굴빛을 지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우화(寓話) 속에는 실로 깊은 뜻이 있으니 청컨대 이를 써서 임금이 된 자의 교훈으로 삼도록 하라.” 하고, 설총을 발탁하여 높은 벼슬을 주었다. ……(하략)……”-『삼국사기』권46, 「열전」6 설총 


단 한 편의 이야기로 왕을 설득한 설총의 지혜도 놀랍지만, 그 뼈 있는 충언을 기꺼이 받아들인 신문왕의 덕도 참으로 인상 깊습니다. 프랑스에서 살아가다 보면, 우리가 어떤 기준을 따라 살아가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프랑스 사회의 가치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하기도 하지요. 그런 순간마다 곁에 설총과 같은 이들을 두고, 바른 도리가 무엇인지 귀 기울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공자는 일흔이 되어 ‘이 순(耳順)’, 즉 귀가 순해졌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우리도 바른 말에 귀 기울이고 이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지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설총의 우화인 ‘화왕계’가 오늘날 프랑스에 살아가는 한인들에게도 어떤 가치와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를 성찰하게 하는 소중한 지침이 되어주기를 바래봅니다. 



<역사학자, 이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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