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아틀리에 탐방] 꿈을 그리고 모두를 치유하는 동화 ·그림 작가, 박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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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실비 작가-파리한글학교 도서관에서 (2025년 5월)
작가 박실비(본명 박재현)는 인간의 삶을 동물의 세계에 투영하여, 따뜻하고 몽환적인 동화와 그림을 그려낸다. 한국과 프랑스, 두 문화의 결을 모두 품은 그의 풍요로운 정체 성은 작가로서의 감성과 세계관을 더 깊고,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완성시킨다. 그는 그림이라는 조용한 언어로, 어린이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삶의 따뜻한 메시지와 희망 을 전하고자 노력한다. 그의 그림 속에 스며든 본능적인 색채 감각은 단순한 미적 표현을 넘어, 감정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힘도 느껴진다. 치유와 희망을 전하는 작가 박실비의 그림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간략한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서울 태생으로 열한 살(초등학교 5학년) 때 프랑스로 조기 유학 왔다. 프레파(Prépa)를 거쳐 파리 샤르팡티에 미술학교(Academie Charpentier)와 펜닝렌 그래픽 아트 및 실내 건축 고등미술학교(ESAG)에서 그래픽(광고) 디자인을 전공했다. 학업을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가 5년 정도 국민일보, 스포츠데이 삽화 기자를 거쳐 광고회사(Albedo Design)의 아트디렉터로 일했다. 이후 다시 프랑스로 건너와 동화· 그림 작가로 데뷔했다. 이외에도 광고디자이너(Graphiste), 도서관 사서, 예술 치료사 (Illustration-Thérapeute)로 활동한다. 유학 후 한국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왜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나?
-분명 성공한 삶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했고, 어느 정도의 명성도 따랐다. 하지만, 그 이면은 너무나 숨가빴다. 쉴 틈 없이 바쁘고, 내 삶의 리듬(휴식, 가정과 나만의 시간)이 전혀 없었다. 아이가 없던 시절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지만, 첫 아이가 태어난 이후 그런 삶의 방식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다. 무 엇보다, 광고계의 작업 방식이 내 성향과 맞지 않았다. 창작자의 감성이나 의견보다는 광고주의 요구가 중심이 되는 구조, 서울에서 삶의 리듬은 나와 본질적으로 어긋나 있었다. 학교 동기이자 당시 회사 동료였던 프랑스인 남편이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면서, 자연스럽게 프랑스에 정착하게 됐다.
프랑스 쨈 셰프로 유명한
브리짓트 르 플러티에(Brigitte Le pelletier) 초상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어떤 계기로 동화 작가이자 그림 작가(삽화가)가 됐나?
-2008년 첫 번째 책 «나의 이웃들(MIJN BUREN)»을 벨기에의 Clavisbooks출판사에서 출간하면서, 동화·그림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첫 아이를 키우며 틈틈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우연히 벨기에 하셀트 (Hasselt)시에서 주최한 동화책 공모전에 출품했는데, 후보작 10위 안에 들었던 거다. 이 작품은 플랑드르(Flamand), 이탈리아, 덴마크, 남아프리카공화국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광고 디자이너와 그림 작가(삽화가)는 테크닉부터 매우 다른 분야다. 그림을 원래 잘 그렸나?
-집 안 환경의 영향인 거 같다. 아버지는 건축가고, 어머니는 조각가다. 어머니가 집 한 켠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해서,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생활의 일부였다. 외가 쪽이 간송미술관 설립자이기도 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예술적 환경에 노출되었던 거 같다. 사실 순수미술을 공부하고,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어머니가 디자인 관련 학과를 권하셔서, 광고 그래픽을 전공하게 됐다.
삽화가로서 별도의 테크닉을 배운 적이 없다면, 동화 속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 되는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손에 익은 그림들이 발전해 지금의 형태가 된 것 같다. 예를 들어, «호야의 숲속 산책»(2020)의 경우, 숲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다. 내가 사는 동네 숲에서 영감을 얻었다. 주인공 호랑이는 한국도 상징하지만, 호랑이띠인 나와도 관련이 있다. 정글에 사는 호랑이가 숲에 와서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지만, 오감으로 숲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적응해가는 이야기다.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내 이야기다. 10여 년 전 숲 바로 앞집으로 이사 왔는데, 처음에 그 숲이 너무 무서웠다. 숲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었고, 한번은 길을 잃었는데, 숲이 마치 거대한 감옥 같았다. 이상한 벌레들, 습기 등 너무 적응하기 힘들었다. 또, 도시와 다르게 마을 사람들도 이상하리 만큼 너무 친절했다. 처음 한 3년 동안은 그모든 것들이 너무 낯설고 적응이 안됐다. 지금은 도시 생활보다 너무 좋다.
첫 출간 이후 계속 활동해 온 것인가?
-아니다. 첫 출간 이후 상도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2009년 둘째 아이 출산과 육아로 6년 정도 공백기가 생겼다. 2015 년 출간된 프랑스 동화책(Un Nöel Extra Cha-Ordinaire)의 그림 작가로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동화 및 그림 작가로 2008년부터 2024년 사이 총 13권의 아동책(불어/한국어)을 출판했다. 한국어 책으로는 «호야의 숲속 산책»(2020), «채식 흡혈귀 딩동»(2021), «함께하면 이 겨낼 수 있어!»(2021)가 있다.
그림 스타일이 명쾌하고 인상적이다. 특히, 밝고 원색적인데, 과장된 표현이 어우러지면서 몽환적인 느낌도 난다. 영감을 받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
-색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다. 어릴 때부터 빨강, 노랑 등 원색,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색 하나하나가 모두 다 너무 좋고, 색을 쓰면서 힐링을 한다. 문을 샛노란색으로, 화장실을 분홍색으로 칠한 적도 있다.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도 없다. 반면, 아버지가 미로, 피카소, 샤갈을 너무 좋아해서, 항상 집 곳곳에 걸어 뒀다. 어머니는 모딜리아니를 특히 좋아했다. 어릴 때 미로 작품의 파랑, 빨강 이런 색들을 모방했던 거 같다. 지금은 새로운 전시가 있으면 놓치지 않는 편이다. 회화, 패션 등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적 감동을 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SAFRAN 회사에서 일년마다 열리는 porte ouverte 때 로케트 만드는 어린이 아뜰리에에 쓰는 게시판 (삽화와 디자인).
감성이 다채롭다. 두 문화를 모두 경험하고, 오가며 사는 삶이 작가로서의 강점(장점)으로 작용할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면 프랑스 적이라고 하고, 프랑스에서는 아시아적이라 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나를 실비로 부르고 프랑스에서는 재현이라고 한다. 두 가지 모두 가진 것이 결국 내 정체성이다. 내 작품에서도 그런 면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나이 들면서 이런 어우러진 이질감이 나만의 문화적, 예술적 풍요로움을 만든다고 생각하며 감사하게 살고 있다.
주로 동물이 주인공이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나?
-인간 세상의 이야기를 동물을 통해 이야기하는 거다. 중심 테마는 연대, 우정, 공존과 존중, 자연, 환경 보호 같은 가치들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삶에서 마주하는 우연한 사건, 사고를 주변과 함께 헤쳐 나가는 서사적 내용이다. 내 인생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작업은 주로 언제 하나?
-주중 화·목·금요일에 한다. 이날만큼은 사람은 절대 만나지 않고, 오롯이 혼자 있다. 그림 작업에 들어가면 동화책 세계에 온전히 몰입해 그 세상 속에서 살기 때문에, 평소 정신 건강에 각별히 신경 쓴다.
동화 작가/일러스트레이터 이외의 활동도 많이 한다. 정신 요양원(Fondation Falret)의 아트 테라피스트, 도서관 사서, 오케스트라 타악기 연주 등 다양한 활동 을 많이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내 시간을, 현실을 살기 위해서다. 작업만 하면 정신적으로 버티기가 쉽지 않다. 한편으로, 작품에 매진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길이 쉽지 않다.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어떤 논리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닌 거 같다. 나의 경우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못 산다. 뭔가 허전하고 공허하고 일종의 생명력 같은 거다. 돈벌이와는 상관없는, 타고난 운명 같은 거 아닐까... 여러가지 일을 하는 것도-외부에서 보면 정신없어 보일 수 있지만- 이런 측면에서 나름대로 정신적으로 안정된 일, 균형을 잡아주는 뭔가를 계속 찾고 있는 거라 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처음으로 만화 시나리오에 도전했다. 자서 전적 내용으로 지난 2년간 꼬박 썼고, 이제 막 탈고를 마쳤다. 현재, 만화가 Jean-Pierre Duffour가 그림 작업 중인 프랑스어 만화고, 출판까지는 1년 정도 소요될 거 같다. 또, 한국어와 프랑스어로 된 동화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제 강아지 위피(Wifi)가 주인공이 다. 조만간 마무리하고, 다른 작업에 들어가고 싶다. 한 5년 후엔 노르망디에 정착해 작 업을 이어가고 싶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현 경 기자 dongsimj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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