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작가의 <파리의 연인들>(14)발자크와 한스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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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한스 부인
“발자크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편해져…” 제라르 드 네르발은 이렇게 썼다.
『외제니 그랑데』와 『고리오 영감』, 그 리고 아름다운『골짜기의 백합』 등을 비 롯한 수많은 작품을 쓴 오노레 드 발자크는 1829년부터 1852년까지 총 91편의 소설과 중단편을 집필(애초에는 137편을 구상했다)하여 수천 명에 달하는 인물들을 창조해 냈다. 에블린 한스카는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젊은 폴란드 여성으로, 다섯 아이의 어머니이며 스무 살이나 많은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신비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그녀는 깊은 권태 속에서 프랑스 소설을 탐독하곤 했다. 그러다 발자크의 작품을 읽게 되었고, 곧 그의 열렬한 숭배자가 된다. 1832년부터 그녀는 “이방인”이라는 이름으로 발자크의 출판사인 레옹 고슬랭을 통해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첫 번째 편지는 이 소설가의 주목 을 끌었고, 우리에게 전해진 두 번째 편지에서부터, 이미 뭔가 분위기가 야릇해진다.
“당신은 사랑해야 하고, 또 사랑받아야 해요. 천사들의 결합처럼, 그런 영혼의 연대가 당신의 몫이 되어야 해요. 당신의 영혼은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행복을 누려야만 해요. ‘이방인’인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들의 친구가 되고 싶어요… 나 역시 사랑할 줄 압니다. 하지만, 그뿐이에요… 아, 당신은 저를 이해하게 될 거예요!
그녀는 작가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고, 이 교류는 무려 17년에 걸쳐 총 414통의 편지로 이어졌다. 발자크는 세상 끝에서 날아든 이 편지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는 대신 그것을 쓴 사람의 정체를 파헤쳤다. 그리고 그녀가 “젊고 아름다우며, 백작부인이자 엄청난 부자이고,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으며, 지성과 마음에 있어서 다른 모든 여성들보다 뛰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짐작할 수 있듯, 이런 묘사는 발자크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두 사람은 마침내 1833 년 9월 25일, 뇌샤텔 호숫가에서 처음으로 대면했다. 작가는 이 품위 있고 통통한 흑발의 여인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백작 부 인은, 딸과 남편을 대동하고 온 자리에서 만난 발자크가 작고 뚱뚱하며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 모두 삼십 대였고, 발자크의 첫 번째 위대한 사랑이었던 로르 드베르니는 당시 쉰여섯에 가까웠으며 1836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발자크는 온 열정을 이 백작 부인에게 쏟아붓게 되었다.
그는 유럽 여러 도시에서 그녀를 다시 만 났지만(하지만 15년 동안 딱 4번뿐이었다!), 그녀는 늘 그를 애타게 하면서도 끝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발자크의 방탕한 생활과 잦은 연애 행각이 그녀를 망설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자크는 한 번에 네 편의 책을 동시에 써내 던 사람이었으니, 그런 식으로 사랑하는 것도 어쩌면 그에게는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발자크는 위안을 찾았고, 한없이 다정하고,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모 습으로 그녀 곁에 머물렀다. 그것은 마치, 필사적인 집필 노동과 하층민 여성들과의 방탕한 관계 사이에서 잠시 머무는 휴식 같았다. 빚과 망해가는 사업으로 허덕이던 발자크는 그녀와의 결혼에 점점 더 집착했다. 그녀 는 마음뿐만 아니라 지갑까지 그에게 열어주었다. 왜냐하면 그녀 또한 화려하고 낭만적 이며 마법처럼 반짝이는 그 파리의 거리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와 나란히 거닐 수 있는 날을 끊임없이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1842년에 미망인이 된 그녀가 그려본 파리는 곧 행복 그 자체였다. 그녀는 결코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떠났다.
발작크와 한스 부인의 풍자화
1848년, 북부 철도 회사의 파산으로 파산 상태에 이른 그는 러시아행 짐을 꾸렸다. 그리고 2년 후, 지치고 병들었지만 마침내 이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식을 치르고 돌아왔다. 그들은 포르튀네 가 12번지(지금 이 길은 발자크가로 이름이 바뀌었다)에 함께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발자크는 병으로 인해 겨우 여섯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발자크 부인’이 된 에블린 한스카는 파리에 도착한 이후 불운만을 겪었다. 그녀는 채권자들에게 쫓기며 신경이 곤두선 채 도시를 헤매었다. 모든 희망은 사라졌고, 현실은 너무도 암담했다.
“18년의 사랑, 16 년의 기다림, 2년의 행복, 그리고 6개월의 결혼”이라고 자크 생 브리는 말했다.
너무도 힘들었던 에블린 한스카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 고 싶어 했던 화가 장 지구의 품에 안긴다. 그는 잘생기고, 근육질에, 유쾌하며, 마치 갈리아 전사처럼 길고 굵은 콧수염을 자랑하는 남자였다. 빅토르 위고는 발자크의 죽음을 모든 이에게 버림받은 채 맞이한 참담한 모습으로 묘사했지만, 그 무엇보다 충격적인 모욕은 옥타브 미르보의 고백에서 비롯되었다. 발자크가 죽어가던 바로 그 순간, 장 비구가 에블린 한스카와 이웃방에서 정사를 나누고 있었다 고 고백한 것이다. 1907년에 공개된 이 폭로는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켰고, 한스카 부인의 딸 안나의 요청으로 해당 발췌는 결국 삭제되었다.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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