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아줌마의 <파리 유학생-그때 그 시절> 파리에 한인 마트가 단 한 군데였던 그 시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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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당시 외국에 나가면 가장 문제가 되었던게 음식이었다. 지금이야 상품화된 포장 김치니 온갖 한국음식들을 파리에서 여러 군데의 한인 마트에서 구해서 먹을 수 있지만, 당시는 파리에 단 하나의 한인 마트만 있었다.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을 떠나 그 나라의 문화를 대표하고 있고, 김치와 된장찌개, 얼 큰한 김치찌개를 먹고 자란 한국인들에게 한식은 소울 푸드라고 할수 있다.
거친 세상에 휘둘린다는 생각이 들 때 따뜻한 국 한그릇은 지친 삶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 땅에 떨어지니 한식을 못 먹는게 살아가는데 문제로 다가오기는 했다. 당시 남학생들이 음식 문제를 더 심하게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학생들은 바게트에 버터 발라 먹어도 크게 문제될게 없는데 당시 남자들은 좀 다른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함께 사는 선배 언니와 함께 아침 저녁으로 바게트를 먹었다. 따뜻한 바게트에 버터를 한조각 얹으면 버터가 사르르 녹아 빵에 스며드는 그 맛에 주구장창 먹어대었다. 그 때 찐 허리살은 아직도 빠지지 않고 있으니 프랑스 버터살이다. 그러니 여학생들은 체중이 올라가고, 남학생들은 삐적 마 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한국 인이기에 프랑스의 초콜릿 스프레드인 뉴땔라(Nutella)가 팥앙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당시 알고 지내는 유학생들 중에 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는 한국 남자가 있었 다. 자식을 유학 보내는 그의 어머님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어느날 우연히 들른 중국 시장에서 한 국 배추를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큰소리로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그로부터 그 남학생 은 한번씩 김장하듯 김치를 담구는 것을 보았다.
캔김치로 똥(Thon) 찌개를 끓여 먹곤 했어
1990년에 파리에서 한국 식품점은 단 한 군데 밖에 없었다. 파리 14구 알레지아 지역에 있었는데, 상호명이 ‘국제식품점’이었다. 독점하고 있는 상태여서 30년전인 그 당시 신라면 하나가 2000원 상당이었으니, 유학생들에게는 고급 식품으로 취급되어 쉽게 접할 수도 없었다. 우리 유학생들은 중국 시장에서 파는 밀가루 냄새 풀풀 나는 일본 라면을 사먹고는 했다. 닭고기맛, 불고기맛 등이 있었는데, 가격이 유학생들이 근접할 정도로 착했다. 프랑스에서 라면을 먹을 수 있음에 감지덕지하면서 사먹곤 했었다.
요즘도 '신라면'하면 유일한 한인 마트, '국제 식품점'의 비쌌던 신라면 생각이 난다. 학생 생활에 김치 담구어 먹을 엄두도 못내던 시절이었다. 김치가 먹고 싶으면 중국시 장에서 파는 캔김치를 사다가 먹었다. 마음 맞는 유학생들끼리 만나면 이 캔김치에 캔참치를 넣고 푹 끓여서 김치찌개로 먹고는 했었다. 참치가 불어식 발음이 똥(thon)이니 그때 우 리는 이를 약간의 유머를 가미해 ‘똥찌개’라 고 불렀다. 그때 얼큰하게 끓였던 똥찌개는 맛있었고, 유학 생활의 위로였다.
파리에서는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한인 마트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파리에 한인 마트가 여러 개가 있어 원하면 각종 김치, 다른 한국음식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김밥도 각종 재료들로 분류해서 내어놓으니 선택의 폭도 넓다. 하지만 그런 것은 꿈도 못꾸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 옛날 프랑스 유학 생활을 하면서 소울 푸드인 한식을 먹지 못하는 것은 살아가는 동력을 잃는 것이나 다름 없었던 거 같다. 먹는 것이 별거 아닌거 같아도 이렇듯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더라.
<파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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