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 5월 1일에 은방울꽃을 선물하는 전통의 기원과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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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5월 1일은 국제 노동자의 날이자 '은방울꽃의 날'이기도 하다. 유럽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날 은방울 꽃은 선물하는 풍습이 있지만 프랑스만큼 대중적이지는 않다,
매년 이 날이 되면, 꽃집이나 특별히 이날을 위해 거리 곳곳에 설치된 판매대에서 작은 은방울꽃 한 송이를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풍습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
이 풍습의 기원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이미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꽃이 피는 시기를 축하하는 행사가 있었다.
*켈트족(Celtes)도 이와 비슷한 '벨테인(Beltaine)'이라는 축제를 지냈는데, 이는 어두운 계절에서 밝은 계절로 넘어가는 전환점을 의미하는 날이다.
여러 역사적 일화들은 이 전통이 샤를 9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전해진다. 1560년 5월 1일, 샤를 9세는 도피네(Dauphiné) 지방을 방문하던 중 은방울꽃(muguet) 한 송이를 선물로 받았고, 그 제스처에 크게 감동한 나머지, 이후 매년 봄마다 궁중의 여성들에게 은방울꽃을 선물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실제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샤를 9세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 예를 들어 장 뤼(JEAN TEULÉ)의 2011년 소설 『Charly 9』 등에서도 자주 인용된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다른 꽃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은방울꽃은 5월 1일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고, 혁명력이 적용되던 플로레알 7일(4월 26일)의 공화국 기념일에 연관된 꽃이었다.
당시에는 붉은 들장미(에글랑틴, églantine rouge)가 5월 1일과 연결되었고, 오랫동안 노동자들의 상징 꽃으로 여겨졌다.
1889년: 국제 노동절의 시작과 붉은 꽃
약 100년 후인 1889년, 첫 번째 국제 노동자의 날(5월 1일)에 참가한 시위대는 처음엔 붉은 삼각형 배지를 달았지만, 곧 붉은 에글랑틴으로 대체되었다.
이는 혁명 달력을 만든 파브르 데글랑틴(Fabre d’Églantine)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했지만, 당시 프랑스 북부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흔하게 재배되던 꽃이기도 했다. 1891년 5월 1일, 푸르미(Fourmies) 시위에서는 경찰의 유혈 진압으로 9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붉은 들장미는 흘린 피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다시 떠오른 은방울꽃: 19세기 말의 부활
은방울꽃은 1800년대 말부터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다.
1895년, 가수이자 작사가인 펠릭스 마욜(Félix Mayol)은 파리 친구 제니 쿡(Jenny Cook)에게 은방울꽃 한 송이를 선물 받았고, 파리에서 처음 무대에 오르던 날 재킷에 그 꽃을 달고 등장했다. 공연은 성공을 거뒀고, 그는 그 이후에도 계속 은방울꽃을 착용했으며, 자신의 회고록에서 밝히길, 이 일이 은방울꽃을 다시 대중 속에 유행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고급 디자이너들도 같은 시기(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은방울꽃의 부활에 한몫했다.
그들은 직원들과 고객들에게 은방울꽃을 선물하며 이 전통을 이어갔고,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는 아예 은방울꽃을 자신의 브랜드 상징(emblème)으로 삼기도 했다.
일간지 르 몽드(Le Monde)에 의하면, 은방울꽃이 공식적으로 ‘노동절 및 사회 화합의 날’과 연결된 것은 1941년, 비시(Vichy) 정권의 수장인 페탱 원수(Maréchal Pétain) 집권 하에서였다. 그는 5월 1일을 공식 기념일로 지정하면서 붉은 에글랑틴 대신 흰색의 은방울꽃을 채택했는데, 이는 붉은 들장미가 좌파와 공산주의를 너무 강하게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5월 1일 = 은방울꽃의 날”이라는 전통은, ‘노동절’이라는 명칭과 더불어 부분적으로는 비시 정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한다.
<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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