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리광장 답사기- 소르본 광장 (Place de la Sorbonne), 아홉 번째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0 추천
- 목록
본문
샹폴리옹 거리 (Rue Champollion)
천재 이집트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 (1790-1832)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샹폴리옹 거리(Rue Champollion)는 어떤 이들에게는 영화의 골목. 이 길로 들어서면 나는 먼저 나란히 위치한 3개의 아담한 예술영화 상영관이 무사히 잘 계신지를 확인한다.
Le Reflet라는 작은 카페의 간판이 보이는데 이곳은 차세대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를 꿈꾸는 감독 지망생들이 모여 수작을 벌이는 아지트로 사용되기도 하는 카페이자 선술집으로 요즘은 음식도 판다. 나도 이 곳에서 패거리를 만들고 첫 단편영화 연출과 제작을 모의했는데 이곳에 모인 이들은, 드러내고 말은 않지만, 모두 자기집의 한 구석에 영화 혁명가라 불리는 고다르 감독의 영화《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의 한 장면 혹은 포스터를 걸어 놓고 제사를 지내는 대다수가 이른바 고다르의 아이들이다. 고다르의 영화《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 속 남자 주인공이 입술에 엄지 손가락을 대고 있다가 립스틱 바르는 듯한 행동을 반복한다. « Qu'est-ce que c'est, dégueulasse? » 라는 대사와 함께. 크으아 ! 멋있어.
Jean-Luc Godard 출처 CNC, www.cnc.fr
그런데 한겨울에 이 동작을 반복적으로 따라 하다가 입술이 훌렁 까진 적이 있다. Qu'est-ce que c'est, dégueulasse ? 라는 대사를 한국어로 옮기 자니 쉽지가 않다. 서울 말로는 목으로 콱 나오는 게 있는데……사투리로 가보자.
-이게 뭔데, 이래 드러븐 거? 치사하고 비열하데이. 와 이래 찝찝하노? 이게 뭐여, 와 이리 치사하고 더럽어?
별 감이 없다. 가리봉동 스타일루다가 해 보면
-니 치사하고 더러운 게 뭔지 아니?
이것도 아니고…
À bout de souffle de Jean-Luc Godard 출처: CNC
그러고 보니 우리는 지금 해석학의 위대하고도 커다란 별이신 샹폴리옹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거리(Rue Champollion)에 있다.
해석학'(herméneutique)은 그리스어 '헤르메뉴티케'(hermēneutike)에서 유래했는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르메스'(Hermes)는 신들의 전령이자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신으로 목에 두르는 스카프나 가방 같은 거 파는 유명한 브랜드랑은 상관이 없다.
헤르메스는 신들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달하고 해석하는 역할을 맡았고 이러한 맥락 에서 '해석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 인데. 수수께끼와 같은 메시지의 실타래를 풀어 해치는 기술 및 예술이라…… 이것은 번역 이라는 작업이 마주하는 문제 와도 상당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출처: quellehistoire.com
지난주 내가 참가한 대학의 세미나 제목은 Oralités littéraires(문학적 구술성)이었다. 문자 문학이 연극과 영화 등 다양한 공연 형태로 어떻게 변형되고 전달되는지 문학 작품의 의미와 감동을 어떻게 증폭시키거나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구술이 사회적 갈등, 저항,변화 등을 표현하고 촉진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탐구하려는 세미나.
한 발표자가 보들레르의 시 낭송법에 관련 한 주제로 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해당 시인이 음성학적으로 어떻게 그의 시가 발화되기를 희망했는가, 그리고 시 낭송회에서 어떠한 강약과 높고 낮음으로 낭독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각 음소가 지니는 뉘앙스와 의도를 설명하였다. 그리고는 그 다음은 랭보의 시가 어떻게 슬라브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음성적 양상의 음가 교환이 필요한 지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발표하였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갈수록 어째 프랑스 시라는 게 한국어로 번역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어가 달라도 너무 달러.
한숨을 쉬며 말하던 나는 한국시를 프랑스 시로 혹은 반대로 번역을 한 적이 있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음률도 맞추고 했는데…
Bonimenteur. 출처 univ-poitiers.fr
소리가 지닌 바스락거림까지 번역할 수 있을까? 과연 이 두 머나먼 언어 사이에 잠입하여 훌륭한 공작이 완수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일상에서 소위 언어횡단적 실천(Translingual Practice)을 수행하는 자로서 머리가 아프다. 두통의 시간을 지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나는 물 만난 물고기? 사실, 내 대표적 연구 발표의 레퍼토리 중 하나가 Boniment이란 것인데 Oralités (구술성)의 관련 주제에 들어가면 내가 신나게 날라 다니는 분야이다.
프랑스에서 Boniment은 원래 사람들을 즐겁게 하여 설득하기 위한 매혹적 혹은 유혹적 말솜씨를 뜻하였다.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어 주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거나, 무엇을 홍보하기 위해 말솜씨로 이러한 언행을 하는 자는 Bonimenteur라 불렸다. 이들은 진실처럼 꾸며낸 이야기로 사람들을 속이기도 했는데 한국으로 치면 저자거리 혹은 마을에 찾아온 약장수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Bonimenteur의 이미지. www.fortunapost.com
-자. 이거 한번 잡숴봐. 여든 살 먹은 할아버지가 이거 드시고 볼 일을 보시는데 행주산성이 금이 가고 남한 산성에 빵꾸가 나.
저기 허리 굽은 백발머리 할머니. 남산에 올라가 남몰래 일을 보실 적에 아이고. 이게 무슨 물 난리냐? 홍수가 나고 서울 장안이 범람을 하야 모두가 노아의 방주를 찾을 적에……으흠.
자 ! 애들은 가라.
이들이 언행을 능숙하게 즉흥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준비하고 다듬어진 말솜씨이다. 1895년 파리에서 처음 시네마가 선보인 뒤 이 약장수들은 시골마다 장날에 설치되는 영화상영용 천막으로 전격 스카웃이 되는데...
<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 영화 변사. 프랑스 방방곡곡을 누비며 강연회와 상영회를 통하여 한국영화를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Ocrée Editions, 2021),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 가 있다.
관련자료
-
다음
-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