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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아줌마의 <파리 유학생-그때 그시절> 지상낙원 같았던 파리 그 시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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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89년 7월 말에 파리에 왔다. 썸머 타임이 한창이었던 파리는 저녁 8, 9시가 되어도 대낮처럼 환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동네 산책을 나가면 길거리에는 사람 한 명 없고, 저녁 먹고 그릇 정리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건물 안에서 울려 나오곤 했었다. 세상은 그지없이 환한데 거리에 사람이 없 으니 조금 과장해서 전쟁 폐허 같은 느낌을 받곤 했었다. 지금이야 여름에도 한번씩 폭염이 닥치곤 하지만, 1989년의 여름, 파리 날씨는 아침에 가디건 걸치고 나가면, 오후 에는 더워서 벗고 다닐 정도였다. 여름 햇살은 강한데 바람은 봄 가을 같은 그런 날씨였 다.그러니 나는 오랫동안 선풍기 없이 여름을 보내었고, 불과 몇 년 전에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 선풍기를 구입했을 정도다. 


향수의 나라답게 파리 지하철 안에서 자주 풍기던 강한 향수 냄새, 한적한 거리, 사람들의 여유는 바쁜 한국에 살다가 온 나에게는 모든 게 느렸다. 어느 날 한국에서 친구가 파리 여행을 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모든 게 느리게 가는 걸 보니 너의 성향과 맞다고 했다. 


모든 게 느렸고, 모든 게 인간적이었다. 길 을 물으면 목적지 인근까지 데려다 주곤 했었다. 그 정도로 인심이 좋았다. 20대의 앳띤 아시아 여자 아이에 대해 안스러움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감사했고, 신기한 일이었다. 우체국에 가면 사람들이 긴 줄을 써서 있는데 어느 누구도 기다리는 데에 대해 짜증스런 표정을 짓지 않고 있었고, 멀뚱멀뚱 거리며 본인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당시는 미테랑이 대통령으로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과 비교해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상태였고, 가족수당부터 의료보험, 은퇴연금 등 사회복지 튼튼하게 되어 있었으며, 많이 벌면 세금 많이 내어야 하는 사회 구조라 악바리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의 느낌으로는 전형적인 사회주의 구조 속의 프랑스 같았다. 느리게만 돌아가는 시스템과 사람들의 여유를 보며 당시 나는 지상낙원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노숙인 중에는 철학자가… 

소매치기라면 가방을 잡고 가져가려는 범인과 안 내어놓으려는 가방 주인과의 실랑이 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한다고 미리 파리에 온 선배 언니가 일러주었다. 그야말로 지금 같으면 상상하지 못할 일이 당시에는 프랑스 사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 다. 살벌한 소매치기가 아닌 서로 실랑이 벌이는 게 소매치기라니…. 


지금도 슈퍼마켓 음식 절도에 관련해서는 법 보다는 여러 단체에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내세우며 훔친 이를 옹호하고 있다. 왜냐하면 배가 고파, 즉 생존을 위한 절도로 간 주하기 때문이다. 당시 어학원 교사는 노숙인들 중에는 철학자들이 있다고 했다. 세상의 허무함에 모든 것들을 버리고 노숙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프랑스였다. 


몇 년 전 진료를 받으며 보험 혜택을 못 받는게 용납될 수 없다고 단호한 표정으로 서류를 다시 적어주던 주치의 모습이 내가 아는 프랑스였다. 첫 체류증을 요청했는데, 의무적인 의료 보험도 없었는데, 나는 어떻게 1년짜리 학생 체류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대구 집에  '모든게 술술 풀린다고 걱정마시라'고 편지를 적어 보낸 기억이 난다. 이건 나에게는 혜택이었다. 허술한 행정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편하게 프랑스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프랑스가 외곽지역 소요 사태, 테러를 거치면서 많이 각박해졌다. 그리고 예전보다는 빨라졌고, 일하는 사람, 즉 노동자 우선이던 사회가 이제 어디를 가든 서비스를 평가하는 평점을 남기게 되었다. 그렇게 프랑스는 그동안 참 많이 변했다. 

2015년 11월 13일 파리 테러 이후, 아이들 음악학교에 들어가는데 안전 요원이 가방 검사를 했다. 내가 아는, 처음 파리에 와서 보고 느낀 지상낙원의 파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에 약간의 슬픔을 느꼈다. 



<파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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