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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작가의 <파리의 연인들> (7) -아폴리네르와 로랑생 : "미라보 다리"의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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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생이 그린 <아폴리네르와 그의 친구들>


모든 것은 1883년 10월 31일 파리에서 시작되었다.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어머니는 폴린 멜라니 로랑생, 아버지는 알프레드-스타니슬라스 툴레였다. 

마리의 아버지는 파리에서 명망 있는 인사였다. 감사관으로 경력을 시작한 후 직접세 최고 감사관이 된 그는 구의원이 되었고 마침내 솜 도의 페론 시에서 도의원이 되었다. 그는 그의 집안처럼 부유한 티스랑 장군의 조카딸과 결혼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혼외 관계인 그녀의 어머니를 정기적으로 찾아왔고, 두 모녀가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생활비를 대주었다. 


하지만 마리 로랑생은 자신의 혈통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다. 마리 로랑생은 수녀들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간헐적으로 학업을 이어가다가, 라 마르틴 고등학교에서 루브르 박물관을 접하게 된다. 폴린 로랑생은 딸 이 교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마리는 다른 꿈을 품고 있었다. 


"폴린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마리는 학업을 계속하면서 붓을 손에 쥐게 된다. 그녀는 도자기 화가가 되기로 한다. 이는 당시 유행하던 진지한 직업이자 엄격한 분야였다. 마리는 이 선택을 하면서도, 평생 존경을 표했던 르누아르가 자신보다 먼저 같은 방식으로 경력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플로라 그루,<마리 로랑생>-


1901년 바칼로레아를 취득한 후, 마리는 세브르 학교의 폴린 랑베르 밑에서 3년 동안 도자기 화 가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 또한, 그녀는 외젠 키뇰로에게서 드로잉을 배우고, 꽃을 전문으로 하는 마들렌 르메르에게도 수업을 받았다.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도 마리 로랑생은 집에서 꾸준히 회화 연구를 계속했다. 이 시기 그녀는 오직 어머니와 자신만을 모델로 삼았다. 


1902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그녀는 여성들에게 무료로 개방된 움베르 아카데미의 오후 강좌에 등록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프란시스 피카비아, 조르 주 라파프, 조르주 브라크를 만났다. 그들은 그녀의 첫 연인이 되었다. 브라크는 마리에게 도자기를 포기하고 진짜 그림을 그리라고 조언했다. 그는 마리 로랑생의 그림을 가져가 바토 라부아르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마리 로랑생은 1904년 6월 세브르 학교를 졸업했다. 이 시기는 작가에게 결정적인 시기였다. 스무 살의 나이에 그녀는 여전히 어머니의 세심하고 때로는 너무 엄격한 통제하에 살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마리는 어머니와 선생님 앞에서 자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심하지만 필연적으로 여성으로서 그리고 화가로서 자신의 성격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친구 브라크의 조언에 따라 움베르 아카데미에서 배운 고전주의에서 벗어나 일주일에 몇 번씩 훌륭한 거장을 만나러 다녔다. 


1905년,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마리 로랑생은 성인이 되어서야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1907년 봄에 그녀는 처음으로 살롱 데 앵데팡당전에 참가하여 <꽃병 속의 꽃>을 선보였다. 같은 해 마리 로랑생은 피카소를 통해 그 당시만 해도 별로 알려져 있지 않던 시인, 귀 욤 아폴리네르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한눈에 반해 미라보 다리 주변에서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고, 마리 로랑생은 그가 계속 시를 쓰고 문학을 하도록 격려하는 한편 자기가 속해 있는 서클에 그를 소개했다. 그녀는 스물세 살 그는 스물일 곱 살이었다. 


1908년, 그녀는 <아폴리네르와 그의 친구들>이라는 그림을 팔았는데, 이 그림에는 왼쪽에서부터 피카소와 마리 로랑생, 아폴리네르, 피카소의 동거녀이자 모델이었던 페르낭드 올리비에가 그려져 있다. 1909년 마리 로랑생과 아폴리네르의 친구 였던 화가 루소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시인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 를 그렸다. 그런데 마리 로랑생은 뮤즈가 아니라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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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의 <시인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에서 

로랑생과 아폴리네르


이 연인들은 열정적이고 격렬하고 파란만장한 사랑을 나누다가 결국 5년 뒤인 1912년에 헤어졌다. 이때 아폴리네르가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가 <미라보 다리 아래서> 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사랑은 흘러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그 뒤로 두 사람은 각자 결혼을 했다. 그는 서른여덟 살 때 스페인 독감으로 죽었다. 그녀는 이혼을 했고, 일흔둘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녀는 눈을 감기 전에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하얀 드레스를 입혀주세요. 그리고 한쪽 손에는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다른 쪽 손에는 아폴리네르가 내게 보낸 연애 편지들을 들고 있는 자세로 묻어주세요." 


파리의 페르라세즈 묘지. 두 사람은 백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묻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아, 사람의 인연은 징하다. 그리고 흐르는 물처럼 구비구비 이어진다.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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