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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아줌마 단상>- "날씨(le temps)를 전해주던 그녀가 시간(le temps)과 함께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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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화요일 라디오를 듣다가 익숙한 이름이 나온다. 설마.. 했는데 그녀가 맞다. 희귀성 신경 질환으로 7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옛날 인터넷도 없던 시절, 남의 나라 말이라 알아듣건 못 알아듣건 프랑스 TV 방송만 즐겨 보던 때, 프랑스 TV 방송 1번인 TF1에서 일기예보를 전해주던 기상캐스터, 카트린 라보르드(Catherine Laborde)가 세상을 등진 것이다. 


그녀는 TF1 방송국에서 1988년부터 2017 년까지 28년 동안 기상캐스터 일을 했기에 프랑스인들에게 익숙한 인물이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 및 바이루 총리도 추모의 메시지를 보내며 애도했다. 


프랑스 TV 방송에서 수많은 기상캐스터들을 보아왔지만, 유독 카트린 라보르드가 떠오르는 이유는 25년 전 프랑스를 강타하며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초래했던 폭풍이 지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천년을 앞둔 1999년 12월 말(26~28일)에 프랑스를 포함한 서유럽 전역에 초강력 폭풍이 몰아닥쳤다. 이 폭풍은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폭풍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프랑스에서만 88명 이상 사망, 유럽 전체적으로 약 140명이 사망한 폭풍이었다. 


당시 거센 바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창가에 앉아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 순간, 자연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폭풍이 지나간 다음날 아침, 아이들 아빠 차가 무사한지 확인하러 거리에 나가 보았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였고, 지난밤 거센 바람에 떨어진 나뭇가지와 쓰레기들이 아무도 없는 거리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집으로 들어와 바로 TV를 켰는데, 속보와 특보가 쏟아지던 그날, 위험한 상황 때문에 방송국에도 나오지 못한 채 전화로만 « 제발 나가지 말고 집에 계세요 »라고 간곡히, 절실히 당부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가끔 떠오르곤 한다. 그랬던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나이 서른이 된 큰 아이가 그녀의 별세 소식을 들었다며, 자기 어린 시절, «마담 라 메테오(Madame La Méteo 일기예보 아줌마)»라고 불리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는 2017년 1월 방송국을 떠나면서 그녀의 마지막 일기예보 영상을 우연히 보았는데 감동적이었다며 아이가 눈시울을 살짝 붉힌다. 그러면서 7살 차이 나는 동생은 그녀를 알까라고 이야기한다. 


프랑스어에 "le temps"이라는 단어는 '시간'과 '날씨'에 함께 사용한다. 


그녀의 마지막 일기예보 멘트를 옮겨본다:


 ‘여러분에게 내일의 날씨(le temps)를 전해 드립니다. 

그리고 흘러온 시간(le temps)에 대해서도… 


시간은 흐르고, 이제 저는 여러분과 작별할 때가 되었습니다. 

 28년 동안 충실하게 맡았던 역할을 마치고, 저는 떠납니다. 

추위와 함께, 시간과 함께, 그리고 수년 동안 여러분이 저에게 주신 모든 추억과 함께 떠납니다. 


여러분이 제게 주셨던 믿음, 저에게 너무도 부족했던 자신감. 

그리고 28년 동안 저를 감싸주었던 사랑과 따뜻한 배려, 그것은 단 한 순간도 여러분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정말 멋진 순간들이었습니다. 즐거운 순간, 그리고 동료애가 넘쳤던 시간들. 

러분을 제 마음 속에 간직한 채 떠납니다. 


여러분은 저를 잊겠지만, 저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그녀는 ‘여러분은 저를 잊겠지만’이라고 했지만, 우리도 그녀를 잊지 않을 거 같다. 나의 프랑스 생활의 추억 속에, 그리고 큰 아이의 어린 시절 추억 속에 그렇게 간직되지 않을까? 살다 보면 잊혀지는 순간들도 있겠지만, 새천년을 앞둔 어느 날 밤의 무서운 폭풍이 생각날 때마다 그녀의 간절한 목소리가 떠오르고, 큰아이 어린 시절의 ‘일기예보 아줌마'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날씨(le temps)"를 전해주던 그녀가 "시간(le temps)"과 함께 영원히 떠났다. 


 


 <파리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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