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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파리광장 답사기- 소르본 광장 (Place de la Sorbonne), 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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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 대학 광장에 있는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1802-1885) 동상

출처: 소르본 대학 사이트 www.sorbonne.fr


빅토르 위고는 나를 내려다보고 나는 점심 대용으로 사과를 씹으며 빅토르 위고를 올려 다보고 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에 노크를 한다. 톡. 톡.


-누구 ? 


조금 전 강의실에서 내 옆에 앉았던 그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인 양 내 옆에 앉 는다.


-내 이름은 에밀이야. 나는 콩고에서 왔어. 


그는 방금 산 듯한 자신의 새삐 신발을 신줏단지 모시듯 닦으며 말했다. 내가 신기한 듯 그 모습을 쳐다보자.


-아! 이거는 말이야, 우리 엄마가 나 프랑스로 공부하러 간다고 사 주신 거야. 엄마는 우리 집 소들도 팔았어.


말하던 에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콩고 사람은 잘 우나? 하는 의문이 들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화제를 돌려 말했다.


-에밀. 잘 들어. 나는 프랑스인이 아니고 공부 실력도 형편없으니 혹시 너의 학점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을거야.


그런데 그는 듣는지 마는지 나와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했고 강당에서의 수업 시간에는 늘 내 옆에 앉았다. 한번은 수업이 끝나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나의 다락방에서 같이 요기를 했다. 내 방에는 내가 아는 한 이 우주에서 가장 싼 음식인 니신(Nissin) 라면이 카레 맛, 깨 맛 그리고 새우 맛으로 제법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에밀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신세계를 경험했다. 나는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더군다나 콩고라는 나라는 정말 모르는 나라.


-근데 참, 아 ! 콩고의 수도가 ?

-킨샤사.

-그래! 거기서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 의 권투 시합이 있었어. 프로복싱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라고. 킨샤사. 콩고. 


내가 무언가 콩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자 에밀의 눈이 커졌다. 이에 용기를 내어 아마추어 권투선수인 나는 내가 아는 지식을 쥐어짜며 말했다. 나는 알리의 랩퍼와 같은 언행을 흉내내며 좌우로 몸을 흔들며 손가락을 허공에 가위 형태로 찌르며 말했다.


-나를 검둥이라 놀리지 않는 베트콩들을 내가 왜 죽여야 하지? 나는 당신들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챔피언이 되겠어. 

베트콩들은 우리를 검둥이라고 조롱하지는 않지.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지요 ! 이렇게 말한 알리는 세계 챔피언을 박탈당했고 모두가 그의 권투 인생이 끝난 줄 알았고 그런데 콩고의 킨샤사에서 세기의 매치가 열린거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거야. 세상의 차별과 탄압의 400 coups. 알리가 날린 거야.  


이에 오버 액션 모드에 진입한 나는 이에 더하여 스파이크 리 감독의 말컴 X (1992)라는 영화를 혹시 보았느냐, 알리는 왜 이름을 바꾸었는가 등으로 수다를 이어 나갔는데 듣고 있던 에밀이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갑자기 더운 나라 사람들은 오래 이야기하면 피곤해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프리카라. 그래! 아프리카에서는 바나나와 생선을 같이 요리해서 먹는다는 것을 만화에서 본 적이 있다.


-에밀. 바나나와 생선이 어울리니?

-물론이지. 그런데 그 바나나가 그냥 바나나하고 달라. 


우리는 Marché Barbès에서 그 특별하다는 바나나를 샀다. 오는 길에 생선가게에 들러 고등어도 샀다. 나는 에밀과 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벨기에 초콜렛이 왜 유명해졌는가 등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제국주의의 절정기. 벨기에의 왕이 된 레오폴드 2세는 1876년 브뤼셀에서 실업가, 군인 등으로 구성된 국제콩고협회라는 단체를 설립한다. 

표면적인 목적은 미개척지의 탐험과 더불어 고통 받는 흑인을 돕는다는 인도주의였지만 당연히 실제 목적은 콩고 지역을 식민지화하려는 계획이었다. 


마치 일제 강점기 수탈과 탄압의 만행을 건너뛰고 한반도가 근대화 되는 혜택이 있었던 시기라고 말하는 사람들과의 주장과 겹쳐지는 부분이 보이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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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쉘린 공식 사이트 https://www.michelin.com/groupe/histoire


19세기 말 고무의 사용량이 급증 하기 시작한다. 던롭이 개발한 자전거 타이어를 자동차에 이식한 인물이 바로 미쉐린(Michelin) 형제다. 

 미쉐린 형제는 손쉬운 탈부착이 가능한 자전거용 타이어를 1891년 개발해 내놨다. 이후 1895년에는 자동차용 타이어를 개발했으며, 푸조는 이를 차량에 장착해 경주까지 참가한다. 폭발적으로 규모가 커지고 있던 자동차 산업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고무의 수요량이 급증하였다. 이에 벨기에는 원주민을 몽땅 투입해서 고무 생산에 콩고의 전 역량을 집중하고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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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출간된 최초의 미슐랭 가이드. 출처: labonnevague.com


1900년 최초의 미슐랭 가이드(Le premier guide MICHELIN)가 출간된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에 자동차의 급증 시대가 시작되고 다음 해인 1901년에 콩고에서 빠져나간 고무의 양은 자그마치 6000톤이다. 


원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외부에서는 콩고가 수출이 늘어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에서 생산되어 수탈된 쌀은 모두 수출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콩고의 산들과 정글을 통과하는 근대식 철도가 깔렸다. 더 많은 수탈 물자를 빼내가야 함으로,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는 지옥이었다. 


하루당 고무 채취량을 충당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로, 벨기에 감독관들은 콩고인들의 손과 발을 잘라버렸다. 내 다락방에 도착한 나와 에밀은 쇼핑한 바나나와 생선을 꺼낸다. 에밀이 후라이 팬을 잡았다. 그리고는 기름을 두르고 바나나와 생선을 올렸다. (4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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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 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영화 변사. 프랑스 방방곡곡을 누비며 강연회 와 상영회를 통하여 한국영화를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Ocrée Editions, 2021),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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