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리광장 답사기- 소르본 광장 (Place de la Sorbonne),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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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hithéâtre Oury,
사진 출처: 소르본 대학 사이트
이 오래된 나무 바닥의 강의실 이름은 Amphithéâtre Oury다. 계단식 강당인 이 곳 강단에 피아노가 놓여 있어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음악학과(UFR de Musique et musicologie) 수업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벌써 몇 주가 지난 학기 중 어느 날, 수업 도중 한 학생이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을 살펴보았다. 그는 용기를 내어 삐걱거리는 나무 복도를 걸어 들어왔다.
나는 강의실 맨 뒷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잠시 자리를 둘러보다 맨 뒷줄까지 와서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나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강의실을 나와 학교 중정에 걸터앉았다. 다른 학생들처럼 수업 사이사이에 주로 이곳에 앉아 있었다. 이곳 땅바닥에 앉아 있으면 빅토르 위고 선생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준비해 온 사과를 먹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빅토르 위고의 문학작품은 영화 만화 공연 등 다양한 미디어로 재생되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 2025년 1월 25일까지 (2024년 11월 20일 – 2025년 1월 2일) 파리의 Théâtre du Châtelet에서 《레 미제라블》이 상연된다. 나는 연말연시를 핑계로 이 공연을 보러 가려고 가장 싼 티켓을 구매했다. 기둥이 있어 무대가 잘 안 보인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뭐, 고작 기둥 정도가 무슨> 하는 마음으로…
가난한 학생 시절 이상한 공연장 입장법을 배웠다. 하루는 같은 수업을 듣는 니콜라와 어느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 이 공연 보고 싶은데. 입장료가 너무 비싸.
-오, 그래? 다 방법이 있지
나는 그를 따라 공연장으로 같이 갔다. 우리는 하염없이 공연장 입구에 서 있었다. 그 순간 관객 중 한 커플이 밖으로 나온다.
니콜라는 퇴장하는 관객에게 티켓을 정중히 요청하였다. 티켓을 손에 넣은 니콜라가 말했다.
-공연 중간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가 있어. 주로 관심도 없는데 초대를 받았거나 다른 약속이 있다거나 등등.
우리는 중간 퇴장한 관객에게 티켓을 얻어 그 표로 막간에 입장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실 그 이후로 내가 본 수많은 공연들은 중반 이후의 장면들이 대부분이다.
소르본 대학 광장에 있는 빅토르 위고 동상. 사진 출처: 소르본 대학 사이트
다시 소르본 대학의 중정으로 돌아가자. 빅토르 위고는 나를 내려다보고 나는 점심 식사 대용으로 사과를 씹으며 빅토르 위고를 올려다보고 있다. 세상에는 넘사벽이 있다. 빅토르 위고, 이 넘사벽의 사나이는 인간 이 글을 써서 위대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바로 그의 글로 증명했던 사람이다.
나는 프랑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가끔 혹시《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을 다 읽어볼 기회가 있었냐고 묻곤 한다. 나는 한국 지인들에게도 훌륭한 한글 번역본이 나왔으니 이 책을 언젠가 조금씩 다 읽어보기를 권유한다.
-영화와 공연으로 보아도 좋으나 꼭 책으로 보세요.
《레 미제라블》은 책으로 읽는 순간 빅토르 위고 선생의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심오한 맛을 느낄 수 있다.
65만 5,478개의 단어로 쓰여진 이 거대한 책을 이루는 각 문장들은 그가 바라보는 사물, 건물, 인간, 감 정, 제도, 사건 그리고 세상에 대한 견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울의 한 출판사인 민음사가 한글 번역하여 5권으로 이루어진 완역본을 출간하였다.
중국에서는 이 책이 『비참세상悲慘世上』 으로, 일본에서는 『애사哀史』로, 한반도에는 최남선에 의해 『너 참 불쌍타』로 소개되었다.
1918년에는 민태원이 『레 미제라블』을 ≪매일신보≫에 <噫 無情(아아, 무정도 하여라)>라는 부제를 달고 연재된다.
주인공 장발장은 장팔찬으로, 장발장의 시장 시절 가명 마들렌은 마대련으로, 형사 자베르는 차보열로, 불쌍한 여인 팡틴은 황애련으로 한국인에게 소개되었다. 연재가 시작된 지 몇 달 후 한반도는 대한독립 만세의 물결에 휩싸인다. 일제강점기의 성난 한국인들은 일본 제국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부르며 조선 전역에서 봉기하였다. 3.1 운동을 계기로 다음 달인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 마침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1920년 5월 6일 매일신보
군사와 경찰에 의한 강경 진압을 펴던 조선총독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인들의 봉기에 화들짝 놀라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봉기에 대비하며 바짝 긴장하고 있었고, '변화', '항거', '봉기', '전복', '반란', '혁명' 등 의 단어 사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몇 달 후인 1920년 5월 6일, 매일신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인도주의적인 세계적 사진' 이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당 시 영화를 '활동사진'이라고 불렀고 아직 필름에 소리를 입히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빅토르 위고의 숭배자야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너라.
5월 11일, 12일, 13일 총 3일간
서울 시내 종로 중앙 청년회에서
빅토르 위고를 사랑하는 여러분! 앞에 있든 뒤에 있든 모두 여기로 오세요. 본 활동사 진회 본사의 후원으로 개최됩니다. 그 사진을 설명하는 사람으로 말하자면 조선 사람의 활동 사진 변사로 엄지 손가락으로 꼽는 서상호와 김덕경의 두 사람이요. 1920년 5월 6일 매일신보 기사는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영화화한 <레 미제라블>의 상영회가 종로의 중앙청년회(YMCA)에서 열리며, 당시는 무성 영화의 시대였으므로 조선 최고의 변사인 서상호와 김덕경이 이 영화를 해설한다는 내용이다.
1913년 파리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3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목이 찢어질 듯하다며 조선 최고의 변사들이 협박과 하소연을 하자, 개최 측에서는 한 영화에 두 사람의 변사가 등장하는 신의 한 수를 두게 되었다. 변사(辯士)는 무성영화 시대에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흉내내거나 영화의 내용을 설명하고 효과적인 의성어를 사용하여 청중의 영화 이해와 감상을 도왔던 영화의 해설자이다. 한반도에서는 '활동사진 해설가' 또는 '해설가' 그리고 프랑스 및 불어권에서는 'Bonimenteur'라 불렸다. 전 세계에 존재하였으나 유성영화의 도래로 대부분 무대에서 사라졌다.
매일신보의 기사는 아래와 같이 계속된다.
프랑스 영화사 파테(Pathé)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영구적으로 기념하기 위해서 그리고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파리 국립극장에 소속된 수백 명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이 영화는 막대한 촬영 권리금을 지불하고 수백만 원을 들여 정부의 후원과 헌신으로 원작과 비교해 다름의 의심 없이 촬영된 명작입니다
기사에 '불국 혁명'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음에도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해 영화 '레미 제라블'은 상영 허가를 받았다. 관객들은 빵을 구하려 나선 장팔찬에게서 우리 형제들의 모습을, 사회에 유린당하는 팡틴 황애련에게서 고통받는 여성들을, 혁명의 시민 봉기 장면에서 3.1운동을 떠올리며 감동을 느끼고 공감을 나눌 것이다.
조선 최고의 변사 서상호와 김덕경은 뛰어난 해설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검열을 피해 답답한 가슴 속 억울함과 울화로 뭉쳐진 민족의 한을 대변할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감동적인 영화 상영회가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질 준비가 되었다. 수탈과 핍박에 시달리던 한 국인들은 1920년 5월 11일, 영화를 보기 위해 종로로 몰려들었다.
<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영화 변사. 프랑스 방방곡곡을 누비며 강연회와 상영회를 통하여 한국영화를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 »(Ocrée Editions, 2021),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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