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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파리광장 답사기- 생트 제네비에브 광장 (Place Sainte-Geneviève), 네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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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 붐>의 시나리오 작가 다니엘르 톰슨(Danièle Thompson)은 태어나 보니 엄마가 배우이고 아빠가 영화감독(Gérard Oury)이었다. 그는 부모 덕에 영화와 관련된 많은 인물과 제작 환경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26세에 아빠가 만들 영화 <La Grande Vadrouille>의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다. 


‘홀쭉이와 뚱뚱이’ 혹은 ‘키다리와 땅딸이’ 류의 이 못말리는 듀오 코미디 영화는 오늘날까지도 프랑스인이 가장 많이 본 영화 중 하나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소위 ‘대박’ 흥행작을 지향하던 작가는 1970년대 미국에서 청소년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TV 시리즈 ‘Happy Days’의 성공을 봤다. 이를 프랑스 영화로 풀어내겠다는 의지에 그는 자신의 사춘기를 반영한 이야기를 섞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소녀가 파티에서 소년과 춤을 추는 장면에 영화의 주제곡을 삽입해야 하는 상황. 소위 '블루스 타임'에 흘러나오는 '슬로우' 음악의 주제가가 필요했다. 제작과 배급을 맡은 고몽 측에서는 "Love Me, Please Love Me"라는 샹송을 만든 미셀 폴나레프(Michel Polnareff)가 최적임자라는 결론이 났다. 그러나 그로부터 온 대답은 “Non! 나 안 해! 못해!”. 아마도 그는 “나를 뭘로 보고 애들 영화에 쓸 음악을 만들라는 거야?”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다른 작곡가, 다른 음악감독이 급히 필요했다.


<라 붐>의 시나리오 작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연출한 영화에서 음악감독을 담당했던 블라디미르 코스마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다. 거의 같은 시기인 1960년 대에 한 명은 시나리오 작가로, 한 명은 음악감독으로 데뷔한 두 사람은 오랜 기간 영화적 경험을 공유한 사이였다.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 게다가 영화사 고몽의 압력. 시나리오를 읽은 코스마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가 한번도 청소년들의 유행가에 대한 경험과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청소년들이 포옹을 한 채 춤을 출 때 나오는 슬로우 뮤직? 거기에 이들 입맛에 맞는 가사까지? 아이고 이를 어쩌나…...코스마는 거절 대신 최선의 노력을 선택했다. 며칠 밤을 꼬박 새운 그는 전자 피아노로 주제곡의 기본 선율을 담아 고몽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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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렉스 극장. 출처 : www.urbansider.com


코스마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연주자이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다. 1960년대부터 영화음악 감독으로 활동한 그는 2010년도부터 현재까지 파리의 그랑 렉스(Le Grand Rex)라는 극장에서 자신의 영화음악을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는 콘서트를 열고 있다. 마침 지인인 프랑시스가 이 콘서트의 촬영을 담당하고 있어서 촬영을 목적으로 아르데코 스타일의 영화관이자 복합 공연장인 그랑 렉스를 찾았다. 콘서트가 시작하기 전에 극장 스케치와 더불어 줄 서있는 관객들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극장 안으로 들어가 ‘코스마’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지휘자 대기실로 들어갔다.


작은 키에 배가 불룩 나온 코스마는 싸늘한 구두쇠 스쿠루지의 인상과 동시에 산타클로스와 같은 아주 온화한 기운을 풍기는 사람이다. 내가 한국인이란 것을 알고 그는 한국에서도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소피 마르소, 아니 소피 마르소가 나오는 영화의 주제곡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듯하다. 뭐 스위스에서 잘 되었으니 벨기에는 또 어떠하리 식의 발언이랄까. 나도 그에게 무언가 이야기해야 하는 어색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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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코스마. 출처: Orchestre Philharmonique de Paris


-당신은 우리에게 소리로 랜드스케이프(landscape)를 보여주는 사람이예요. 내 귀로 들어온 당신의 음악은 내 앞에 공간이 ‘촤라락’ 펼쳐지는 황홀한 순간을 경험하게 합니다. 영화 <마르셀의 여름>에서처럼 말이죠.


순간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인상적이었다. 용기를 얻은 나는 무언가 더 이야기하려 했으나, 그가 직접 준비했을 듯한 오래된 금색 자명종 시계가 콘서트 시작의 시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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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영화 변사.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Ocrée Editions, 2021) »,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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