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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작가 <프로방스 여행> 연재(34) -고르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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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연재 이후, 

<프로방스 여행-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르드-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도라 마르가 느꼈을 절절한 외로움을 가슴에 담고 ‘뤼베롱의 등대’ 고르드(Gordes) 마을을 찾아 북쪽으로 달려가지만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올리브나무, 아몬드나무, 무화과나무가 길 양쪽에 서 있는 커브 길을 벌써 몇 번이나 돌았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치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처럼 피라미드 모양으로 지어진 이 성채 마을이 프로방스의 태양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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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드(Gordes) 전경


고르드(해발 635m)는 아비뇽에서 가장 가깝고 라벤더밭이 딸린 세낭크 수도원이 지척(5km)에 있어서 뤼베롱 지역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언덕 꼭대기에 조성된 이 마을에는 층을 이룬 집들과 경사진 골목길, 개인 저택, 돌계단, 아치 모양의 통로, 작은 광장, 샘이 빼곡히 있다. 맨 꼭대기에는 잘 보존된 르네상스식 성당이 있다.


해가 서산마루에 뉘엿거리면 고르드의 돌집들은 빨갛게 물들고 저 아래 계곡은 초록 바다로 변한다. 고르드는 이때가 가장 아름답다.

여행 전문지〈Travel+Leisure〉는 고르드를 ‘2023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하였다.


루시옹-세낭크 수도원

세낭크 수도원(Abbaye Notre-Dame de Séanque)은 고르드에서 자동차로 10분 정도만 가면 된다. 1148년에 설립되었으며 토로네 수도원, 실바칸 수도원과 더불어(이 세 수도원을 ‘프로방스의 세 자매’라고 부른다) 시토 수도회가 프로방스에서 부흥했던 시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낭크 계곡은 수도원을 건설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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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옹의 세낭크 수도원


도시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완전히 자율적으로 사는 데 꼭 필요한 자원들을 근처에서 구할 수 있어서 수도회의 계율에 완벽하게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계곡은 수도원을 짓는 데 필요한 돌과 나무, 그리고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데 필요한 경작지와 목초지, 물이 흐르는 개울을 제공해주었다.


지금 이 수도원은 벌을 키우고 올리브나무와 라벤더를 재배하여 꿀과 올리브유, 라벤더 에센스를 생산하고 판매한다. 여기서 생기는 돈과 수도원 입장료, 은퇴자들을 위한 호텔 운영 수입을 합하여 수도원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다.


세낭크 수도원에서 수도원의 가사를 담당하는 보조 수도사들이 거주하는 곳(18세기에 개축하였다)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1150년에 지어진 그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편편한 돌을 얹은 지붕도 그대로다.


수도원은 간결하고 수수한 교회와 회랑, 회의실, 필사실, 난방실, 공동 침실, 공동 식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원 건물들은 회랑을 둘러싸고 배치되어 있다. 회랑 한가운데 있는 정원은 천국을, 정원 한가운데 있는 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샘물로써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회의실은 이런저런 결정을 내리는 장소로 수도원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필사실에서는 종교 서적을 필사하는데, 추운 겨울에 잉크가 얼어붙거나 손가락이 마비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난방실이 붙어 있다.

부엌을 제외하고 수도원에서 불을 피울 수 있는 곳은 이 난방실뿐이었다.

필사실과 회의실 2층에는 공동 침실이 있고, 수도사들은 여기서 옷을 다 입은 채 잠을 잤다.

공동 식당에서는 수도사들이 침묵 속에서 식사를 해야만 했으며, 음식에 고기도 넣지 않고 기름도 치지 않았다.


라벤더


“라벤더는 프로방스의 영혼이다.”(장 지오노)


이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기 위해서는 라벤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수확하기 전에 프로방스에 가야 할 것이다. 라벤더는 대체로 7월 첫째 주와 둘째 주부터 꽃을 피우고, 라방뎅은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 꽃을 피운다. 라벤더는 순종이며, 증류해서 얻는 방향유의 품질이 최상급이다. 줄기마다 이삭이 하나만 달리고 여기서 푸른색과 보라색이 섞인 꽃이 핀다. 해발 800m 이상 되는 곳에서 덤불의 형태로 1m까지 자란다. 라방뎅은 잡종이며, 자연 상태에서도 잘 자라지만 기후나 토양에 매우 잘 적응해서 바닷가에서부터 해발 800m 되는 곳에서까지 골고루 재배할 수 있다. 여러 개의 줄기에서 이삭이 세 개씩 달리고 꽃을 피우기 때문에 라벤더보다 더 풍성해 보인다. 수확량이 라벤더보다 4배 이상 많아서 재배자들이 선호한다.


대체로 마노스크 동쪽의 발랑솔 고원에서는 7월 둘째 주부터 수확을 시작하며, 마노스크 북쪽의 포르칼키에 지역에서는 8월 말까지도 수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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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랑솔(Valensole)의 라벤더밭


라벤더는 비누나 세제 같은 가정용품이나 향수를 만들 뿐 아니라 의학적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서 중세 때부터 라벤더유로 상처를 소독하거나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백 프로 순수하며 자연적인 순종 라벤더 방향유는 마사지를 하거나 설탕이나 꿀을 타서 마실 수 있다. 또 불면증을 치료하고 스트레스와 두통을 진정시키며, 일사병, 타박상, 인후통에도 잘 듣는다.


1996년 한국에서 건너와 남프랑스에서 정착한 나는 생전 처음으로 쏘(Sault) 부근에서 라벤더밭을 보았다. 산도, 들도, 그리고 땅과 맞닿은 하늘도 보라색이었다. 그걸 보고 있는 내 눈도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나는 근처의 어느 작은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딸기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 전에 한국에서 왔는데 오늘 본 라벤더밭이 너무 예뻤다고 말했다. 잠시 후, 주인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타났다. 그런데 1개가 아니고 2개였다. 하나는 내가 주문한 딸기 아이스크림이고 다른 하나는 메뉴에 없는 라벤더 아이스크림이었다. 의아해하는 내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라벤더를 재배해요. 그런데 먼 나라에서 온 손님이 라벤더밭을 보고 예뻤다고 말씀하시니 우리도 좋네요. 그래서 라벤더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어요. 선물로 드릴 테니 맛있게 드세요.”


그 뒤로도 거의 매년 나는 라벤더가 꽃을 피울 때가 되면 쏘를 찾아갔고, 그때마다 이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그가 만들어주는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즐거워했다. 라벤더가 친구를 만들어준 것이다.



송로버섯

겨울철에 프로방스는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프로방스의 겨울은 낮이 짧고 날씨도 안 좋다. 식당도 대부분 문을 닫는다. 하지만 바로 이 시기에 미식가들은 송로버섯(트뤼프)의 향을 맡기라도 한 듯 모여든다. 프로방스는 전 세계에서 송로버섯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투산 주변의 참나무 숲에서 송로버섯을 풍부하게 수확하던 것도 이제 먼 과거의 일이되었다.


지금은 참나무 조림지에서 프로방스 송로버섯의 90% 이상을 수확한다.

재배지에서 처음으로 송로버섯을 수확하려면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참나무는 40년 동안 자신의 검은 다이아몬드를 인간의 손에 넘겨준다. 그 이후로 이 나무에는 송로버섯이 거의 자라지 않는다.


송로버섯은 4월과 5월부터 자라기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4월에는 비가 자주 와야 하고, 5월에는 너무 춥지 않아야 한다. 6월과 7월에는 너무 건조하지 않아야 하고, 수확기에는 비가 조금 내려야 한다. 이런 조건이 충족되면 좋은 품질의 송로버섯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종은 11월부터 생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수확기는 1월 15일부터 한 달이다.


송로버섯은 다 자라면 향기를 내뿜는다. 바로 그때 개나 돼지는 겉으로 봐서는 그다지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이 작고 검은 흙덩어리를 찾으려고 킁킁거리며 땅을 파헤친다(처음에는 돼지가 이 버섯을 찾아냈지만, 지금은 후각이 더 발달한 개가 이 일을 한다). 개가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하면 개를 먼 곳으로 데려다 놓은 다음, 사람이 송로버섯을 캐내야 한다.


송로버섯을 넣고 요리를 할 때는 그 향이 버터나 달걀 같은 지방질 속에 잘 용해된다는 특성을 이용하면 좋다. 예를 들어 밀폐용기 속에 송로버섯과 달걀을 같이 넣어두면 송로버섯의 향이 달걀에 그대로 스며든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남쪽에 있는 핑크 맘마 식당(Pink Mamma - 20 bis, rue de Douai, 75009 Paris)에 가면 송로버섯이 들어간 파스타(Pâte à la truffe)를 맛볼 수 있다.


<이재형 작가>



1, 이재형 작가와 함께 하는  "파리구석구석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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