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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작가 <프로방스 여행> 연재(31) -루르마랭: 카뮈라는 이름을 숨기고 조용한 삶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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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연재 이후, 

<프로방스 여행-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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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마랭 전경

알제리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는 그의 20대 이후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은 그를 가르쳤던 루이 제르맹이다. 이 교사는 카뮈가 장학금을 받아 알제의 뷔조 리세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또 한 사람은《섬》의 작가 장 그르니에로, 루르마랭 성을 관리하는 로랑 비베르 재단의 연구생이자 그의 새로운 교사였다.

카뮈는 그를 통해 프로방스와 루르마랭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장 그르니에가 이 마을을 묘사하는 것을 듣고 매료된 카뮈는 멀지 않은 일쉬르라소르그에 살고 있어서 자주 찾아가던 친구 르네 샤르의 격려를 받아 루르마랭에 정착하게 된다.

카뮈는 1957년 10월 그의 작품 전체, 특히《이방인》과 《페스트》에 주어진 노벨문학상 상금으로 루르마랭에 집을 사서 1958년부터 이곳을 찾아와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는 이곳 땅을 묘사하는 데 자주 몰두했다. 카뮈가 태어나고 자란 알제리와 유사한 루르마랭과 뤼베롱의 풍경은 그가 알제리에서 바라봤던 먼 산과 자주 비교될 것이다.

카뮈의 딸 카트린은 이 집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집에서는 전망이 기가 막혔지요. 거기서 우리는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답니다. 아버지는 산 뒤에 바다가 있고 바다 뒤에 알제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요.”

루르마랭에 머무르는 동안 번잡하게 살고 싶지 않았던 카뮈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테라스’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그가 시간을 보냈던 올리에 식당, 신문을 읽곤 했던 오르모 카페는 아직 남아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축구 경기장이 있다.
이 스포츠를 무척 좋아했던 카뮈는 자신의 유니폼을 이곳 청년 스포츠 클럽에 기증하였다.

1960년 1월 1일 카뮈는 루르마랭 집에서 가족, 친구들(자닌과 미셀 갈리마르)과 함께 새해를 맞았다. 
1월 2일, 그는 원래 아내와 두 아이와 기차를 타고 파리로 올라가려 했지만, 이 친구 부부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기로 한다.
1월 4일, 그는 파리에서 100km 떨어진 한 마을에서 자동차가 가로수를 들이받는 바람에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마흔여덟이었다.
카뮈 자신의 말처럼 “죽음은 우리 주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카뮈는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살았던 루르마랭 묘지(Cimetière de Lourmarin)에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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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마랭 묘지에 있는 알베르 카뮈 무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는 이름과 태어나고 잠든 연도만 기록되어 있을 뿐 묘비명도 없이 이 작은 마을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21세기에도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을 남긴 이 작가의 무덤은 그의 삶이 그랬듯 소박하다.

퀴퀴롱 : 영화 속 아름다운 배경
카뮈의 죽음이 ‘자연적인 죽음이었을까, 아니면 의식적인 죽음이었을까’를 생각하며 루르마랭에서 동쪽으로 지척(8km)에 있는 퀴퀴롱(Cucuron, ‘언덕’이라는 뜻)을 향해 포도밭 사이를 달려간다.

퀴퀴롱에 도착하자마자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성탑으로 올라갔다. 이 마을 집들의 지붕을 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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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퀴롱 전경

1995년 장 폴 라프노 감독이 장 지오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지붕 위의 기병〉에서 기병대장 앙젤로 파르디는 주민들로부터 샘에 독을 푼 이방인으로 몰려 붙잡혔다가 지붕 위로 도망치는데, 이 장면이 바로 퀴퀴롱에서 촬영되었다.

1832년 프로방스에는 콜레라가 창궐하고 있었다. 젊은 귀족 여성 폴린은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프로방스의 성으로 돌아가려 한다.
보병대장인 앙젤로 대령은 이탈리아의 독립을 위해 결성된 비밀결사 카르보나리 당원으로 오스트리아 군인들에게 쫓기고 있다. 두 사람은 열흘 동안 함께 길을 가게 된다.

사람들은 콜레라에 걸려 수도 없이 죽어가면서 점차 집단 광기에 사로잡힌다. 영화 속 그들이 인간성을 잃고 짐승이 되어가는 그 시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전염병의 시대를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앙젤로와 폴린은 이러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용기와 예의, 타인에 대한 믿음과 사랑, 품위, 절제 등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을 보여준다.
이 같은 덕목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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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베롱 언덕의 고르드 전경

리들리 스콧이 연출하고 러셀 크로와 마리옹 코티아르가 출연한〈어느 멋진 순간〉(2006)은 전반부 런던의 주식시장 장면을 제외하고는 뤼베롱 지역이 배경이다. 포도밭은 보니유의 라 카노르그성에서, 파니가 일하는 식당 장면은 고르드에서 촬영했다.

퀴퀴롱에서는 막스와 파니가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을 찍었다.

생미셀 성탑(Donjon Saint-Michel)에 올라가면 퀴퀴롱 동네와 이 동네 집들의 지붕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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