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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작가 <프로방스 여행> 연재(28)-그라스(Grasse), 가죽의 도시에서 향수의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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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연재 이후,
<프로방스 여행-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향수의 도시 그라스 전경
향수의 도시 그라스(Grasse)에 가기 위해 니스 동물공원 앞에서 500번 버스를 탔다.
1시간 20분가량 달리던 버스가 커브를 돌아서는 순간 거대한 분지의 맞은편 끝에 도시 하나가 나타났다. 그라스였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소설《향수》의 주인공인 그루느이가 그랬던 것처럼 그라스가 눈앞에 훤히 펼쳐지는 산마루에 올라섰다. 그라스는 달걀 모양을 한 분지 저편의 절벽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라스는 중세 때만 해도 최고 품질의 가죽을 생산하여 유럽 전역으로 수출하던 ‘가죽의 도시’였다. 하지만 가죽으로 만든 제품에서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지독한 악취가 풍겼고, 16세기에 그라스의 가죽 장인 갈리마르는 이 악취를 억제하기 위해 가죽에 향을 입혔다. 가죽의 도시 그라스가 ‘향수의 도시’ 그라스로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라스 전경
그라스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주변 지역에서 라벤더와 자스민, 장미, 미모사, 도금양 등의 꽃을 재배하면서 향수의 본고장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그 이후로 향수는 외모의 예술이 최고의 경지에 이른 프랑스 베르사유궁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엄격한 의미의 향수뿐만 아니라 향수 주머니라든가 향기 나는 장갑과 부채 같은 액세서리에도 사용된 것이다. 향수는 퍼져나가면서 그걸 뿌린 사람 주위에 일종의 후광을 만드는 효과가 있어 궁정인의 존재와 사회적 영역을 확장시키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프라고나르(,Fragonard) 향수 제조 공장
베르사유궁에서 향수가 일상적으로 사용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궁에 화장실이 없어서 늘 지독한 악취를 풍겼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의학사 전문가인 오귀스탱 카바네스(1864~1928)는《과거의 은밀한 풍습》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공원과 정원은 물론 성에서도 토가 나올 정도로 악취를 풍긴다. 통로와 마당, 건물, 복도는 오줌과 똥 천지다. 궁 앞 오른쪽의 별관 건물 근처에서 돼지고기 장사가 돼지에게 똥을 먹여 키울 정도였다. 궁으로 이어지는 셍클루 거리는 괴어서 썩어가는 물과 죽은 고양이로 뒤덮여 있었다.”

프라고나르(Fragonard) 향수 작업장
말하자면 각 개인의 신분을 나타내고 악취 나는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몸에 진한 향수를 뿌린 것이다. 그리하여 루이 15세 시대에 프랑스 궁정은 ‘향기 나는 궁정’이라고 불릴 만큼 향수가 널리 사용되었다.
프로방스의 허브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로마인들은 골 지방의 숲을 없애버렸고, 이렇게 공동화된 토양은 향초(香草)와 덤불숲으로 덮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백리향, 로즈마리, 샐비어, 차조기, 회향, 라벤더 등의 허브는 프로방스의 자연 식물상을 대표하게 되었다.
프로방스 사람들은 경작되지 않은 땅이 제공하는 이러한 자연의 풍요함을 이용할 줄 알았다. 허브 판매인들은 이 석회질 토양의 황무지를 돌아다니며 허브를 채집하여 마르세유와 니스, 그라스, 압트에 있는 약제사와 향수 제조자, 향신료 상인에게 팔았다.
향수를 만들 때는 프로방스의 방향족 식물 중에서 라벤더가 단연 인기였지만, 요리를 할 때는 백리향만한 것이 없었다. 의학적으로 백리향에는 위의 통증을 완화시키고 축농증을 낫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미혼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의 집 문에 작은 백리향 묶음을 매달아서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다.

프로방스의 허브, 로즈마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로 향초, 특히 백리향에 대한 수요가 많아졌지만, 인건비 때문에 재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80년대 초에 기계가 발명되면서 백리향 재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백리향은 열을 지어 촘촘하게 심는다. 작은 백리향 덤불은 4월 초에서 6월까지 보라색이나 연한 분홍색을 띤 작은 꽃으로 뒤덮인다. 봄이 시작될 때 열과 열 사이의 땅을 파서 제초 작업을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수확을 할 때 백리향과 잡초를 구분하기가 너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백리향은 꽃이 완전히 피기 전에 수확해서 1m 50cm 두께로 넓게 펼쳐놓은 다음 아래쪽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 넣어 건조시킨다.

프로방스의 허브, 백리향
프로방스의 허브는 대체로 서너 가지 종류의 허브를 섞어서 만든다. 백리향과 로즈마리는 항상 들어가고, 꽃박하와 차조기는 자주 들어가며, 샐비어와 월계수도 이따금 들어간다.
허브는 건조한 다음 몇 가지를 섞어서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따로따로 향 주머니 속에 넣거나 오일, 반죽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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