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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파리광장 답사기- 콩트르스꺄르프 광장 Place de la Contrescarpe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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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르스캬르프 극장의 보리스 비앙 공연을 보고 나서 우리는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한식당 한림으로 갔다. 오늘 밤 내가 저녁 식사비를 낼 것이라는 상황 판단 속에 레오나르는 많은 요리를 주문했다. 한복을 입은 여성이 음식을 내왔다. 한국에서 여러 차례 전시 경력이 있는 화가 끌레르는 제육볶음을 시켰는데, 자신의 한식 경험을 뽐내듯 양파가 잘 볶아졌다며 흐뭇한 미소를 터트렸다. 그 옆에 앉은 레오나르는 정진 중인 스님처럼 쌀 한 톨 안 남기고 하나둘 접시를 비우기 시작한다. 삼촌뻘 연배인 그와는 한국에서 영화작업을 하다 만났다. 그는 프랑스 CNC(Centre national du cinéma et de l'image animée)가 참여한 한불 공동제작 프로젝트 영화에 사진가로 참여했다. 나는 프랑스에서 뤽 베송(Luc Besson)이 제작한 영화의 한 시퀀스 더빙 작업을 막 마치고 레오나르와 같은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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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르셀의 추억» 중 한 장면                   이미지 출처: www.unifrance.org


레오나르와 끌레르의 대화는 어느덧 한국요리 미식 비평회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의 감회는 사뭇 달랐다. 배고픈 학창 시절에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냄새만 맡던, 바로 그 음식을 마주하게 된 것이었으니...


옆 테이블 중년 남성들의 얼굴은 어느새 얼큰하게 뻘건 육개장 빛으로 물들었고, 테이블의 소주병들은 볼링장에서 스트라이크를 기다리는 한다발의 핀들처럼 놓여 있었다. 한국 ‘소주 맨’들의 목소리는 점점 우렁차 지더니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볼륨을 압도했다. 나의 온갖 기억과 감정은 뻥튀기 기계 안에 들어간 곡식 알갱이처럼 마구 뒤섞여 돌아가기 시작했고, 갑자기 ‘뻥 !’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에서 쏟아져 나오듯 어떤 한 장면이 이성과 물리체계를 무시하며 내 앞에 등장하였다.


그것은 마르셀 파뇰(Marcel Pagnol) 원작을 영화로 제작한 «마르셀의 추억(Le Château de ma mère) »의 한 장면이다.

마르셀 파뇰은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고하는 자서전적 소설 «유년시절의 기억(Souvenirs d'enfance)»을 집필하였는데, 제1부 «마르셀의 여름 (La Gloire de mon père)»과 제2부 «마르셀의 추억(Le Château de ma mère)» 모두 1990년대에 이브 로베르(Yves Robert)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어린이와 청소년 관객들이 보면 정서적으로 교육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 믿은 유네스코의 극찬과 공식적 추천으로 전 세계 관객은 졸지에 ‘방학용 가족영화 ’라는 조금은 독특한 장르의 영화 홍보를 경험하게 된다.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와 그 주변 지역들을 배경으로 하는 마르셀 파뇰의 소설과 희곡, 그리고 영화는 연령만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다. 그의 작품 안에는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각과 유머가 가득하지만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해학,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강력한 아픔의 쓰라린 비린내도 물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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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파뇰                                           이미지 : www.marcel-pagnol.com


«마르셀의 추억»은 마르셀 파뇰의 영화 감독 및 제작자 시절, 배우와 제작 스태프들을 줄줄이 차에 싣고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촬영 차 오바뉴(Aubagne)에 도착했다가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는 것을 기본 플롯으로 삼고 있다.


어린시절 그의 가족은 휴일마다 산 속에 위치한 허름한 오두막 별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 가려면 사유지인 귀족의 성곽을 멀리 돌아가야 했는데 이는 4시간 이상이 걸리는 험난한 둘레 길 코스였다. 그런데 우연히 귀족들의 사유지인 성곽 쪽문을 통과하면 소요 시간이 고작 20분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가족은 조마조마 살금살금 몰래몰래 귀족들의 사유지인 성곽의 쪽문을 통과하는 모험을 단행한다.


그런데 꼬리가 길었다. 금방이라도 사람의 목을 한방에 물어 비틀어 버릴 듯한 커다란 경비견을 동반한 사나이가 이들을 발견한다. 그는 귀족의 성곽을 지키는 경비원으로 마르셀 어린이의 가족에게 사유지 무단 침입으로 신고하겠다고 위협한다. 마르셀의 아빠는 직업인 교사직을 잃게 될까 고심하고 화들짝 놀란 엄마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절한다.


그런데 꼬리가 길었다. 금방이라도 사람의 목을 한방에 물어 비틀어 버릴 듯한 커다란 경비견을 동반한 사나이가 이들을 발견한다. 그는 귀족의 성곽을 지키는 경비원으로 마르셀 어린이의 가족에게 사유지 무단 침입으로 신고하겠다고 위협한다. 마르셀의 아빠는 직업인 교사직을 잃게 될까 고심하고 화들짝 놀란 엄마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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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Le Château de ma mère> DVD 


세월이 흘러 고향에 도착한 마르셀은 어린시절 가족들과 눈치를 보며 몰래 지나다녔던 귀족 성곽의 쪽문을 마주하게 된다. 잠시 고개를 숙여 무언가를 생각하는 마르셀. 그는 천진난만한 엄마에게 커다란 가슴앓이를 제공한 귀족 성곽의 쪽문을 구둣발로 힘차게 걷어차 시원하게 부숴버린다. 그동안 간직해온 울분의 풍선이 한방의 발길질로 터트려지는 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레오나르와 끌레르의 음식 담론은 계속되고 있었다. 소주맨들은 어느덧 자리를 뜨고 없었다. 한식 요리의 향기로 꼬르륵꼬르륵 내 허기진 청춘의 배를 늘 시끄럽게 만들었던 한림 식당 음식을 드디어 맛보게 된 순간 난 왜 하필 마르셀 파뇰 선생을 떠올리게 되었을까?

그는 1946년에 “우리(프랑스)의 언어를 순수하고도 우아한 방식으로 다루어 우리(프랑스)의 예술과 학문적 가치를 높이는 데 공헌함”을 인정받아 1635년 리슐리외 추기경이 설립한 프랑스 한림원(Académie française)의 회원으로 선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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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ww.marcel-pagn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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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영화 변사.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Ocrée Editions, 2021) »,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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