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리광장 답사기- 콩트르스꺄르프 광장 Place de la Contrescarp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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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보리스 비앙 협회
나는 콩트르스꺄르프 광장의 이름을 딴 라 콩트르스꺄르프(La Contrescarpe)라는 카페에서 사진가인 레오나르와 화가인 클레르를 만났다. 우리는 수다를 떨다가 콩트르스꺄르프 광장의 이름을 딴 떼아트르 드 라 콩트르스꺄르프(Théâtre de la Contrescarpe) 공연장으로 걸어갔다.
레오나르: 자, 여기, 오늘 저녁에 볼 공연 티켓이야. 흠......네가 저녁 사. 공연장 바로 앞에 오래된 ‘한림’이란 한식당이 있어.
클레르 : 오늘 공연에서 사라(Sarah Olivier)가 노래를 담당할 건데, 내 작업실 건물주의 딸이지 뭐야. 공연 끝나면 같이 인사하자.
좁디 좁은 좌석 사이를 지나 겨우 앉으면 나처럼 다리가 짧은 사람도 앞좌석과의 접촉으로 무릎이 바로 까질 것 같다. 이날 공연의 제목은 ‘리멘도가 연주하는 보리스 비앙(Rimendo joue Boris Vian)’으로 보리스 비앙의 음악을 하나의 악극으로 구성한 공연이다. 마치 김민기 선생의 노래들을 모아 라이브로 들려주며 그의 인생과 시대를 이야기하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리스 비앙(Boris Vian, 1920-1959)은 프랑스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평론가, 재즈 트럼펫 연주자, 강사 및 배우이다. 동시에 시와 소설의 작가이기도 하다. 재주가 많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니 스스로도 헷갈렸던 걸까? 가끔은 철자를 좀 바꾸어서 비송 라비(Bison Ravi)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946년 갈리마르(Gallimard)에서 출판된 보리스 비앙의 소설 이미지. 오른쪽은 인쇄 전 오리지날 필사본 이미지이다.
출처 : 프랑스국립도서관
그는 미국 소설의 번역가이자 연극 대본 및 영화 시나리오 작가이며, ‘넘사벽’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그랑제꼴 중 에꼴 상트랄(École Centrale)에서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이기도 하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점령에 반대하는 레지스탕스 운동가들의 지하 신문 《꽁바(combat)》에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등과 나란히 글을 기고하였고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과 교류한다.
당시 파리는 실존주의(Existentialisme)를 표방하던 철학자들과 작가들이 문단과 지성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보리스 비앙은 재즈의 즉흥성과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새로운 예술 양상을 콘서트와 음악비평 기고 등을 통하여 전파하였는데 이것이 사르트르 등의 작가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파리 사교계는 보리스 비앙의 지성뿐 아니라 그가 단순히 엘리트 교육을 받은 ‘말빨’만 좋은 이론가가 아닌 가슴을 후벼 파는 예술가라는 점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란다.
왼쪽부터 장 폴 사르트르, 보리스 비앙, 시몬느 드 보브아르. 이미지 출처: 오리아(Auria)
다시 떼아트르 콩트르스꺄르프의 공연장으로 돌아가자. 보리스 비앙의 음악 세계를 재조명하는 공연이 한창이다. 좁아 터진 객석의 불편함을 이미 잊고 이 시간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던 찰나,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바로 보리스 비앙이 불렀던 ‘탈영병(Le Déserteur)’이란 노래다.
<탈영병> 대통령 각하, 시간이 난다면 제 편지를 읽어주세요. 저 방금 입영통지서를 받았어요. 수요일 저녁 전에 전쟁에 참가하라네요. 대통령 각하 저는 진심으로 그러고 싶지 않아요. 불쌍한 사람들을 죽이려고 제가 이 땅에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저의 말로 대통령 각하의 심기를 거슬러 당신을 화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꼭 말씀드려야겠어요. 저는 탈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태어난 이후로 저는 이미 전쟁으로 인해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어요. 제 눈 앞에서 아버지가 사살되는 것을 보았고 제 형제들이 전장으로 떠나는 것을 보았으며 제 아이들이 우는 모습을 보았어요. 울다 지친 엄마는 폭탄에 돌아가셔서 이제는 무덤 속 벌레들 옆에 누워 계시죠. 전쟁 중 저는 죄인 취급을 받았고 제 아내는 겁탈당했고 제 영혼은 도둑맞았어요. 소중한 과거도 모두 다 빼앗겼죠. 나는 문을 닫고 내일 아침 일찍 제가 결심한 길을 갈 것입니다. 저는 프랑스의 모든 길, 부르타뉴에서 프로방스까지 방방곡곡을 헤매며 목숨을 구걸하는 놈으로 취급을 당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 길에서 만난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거예요. « 여러분은 이미 충분히 선한 사람들이예요. 전쟁터에까지 나가 여러분의 피를 흘릴 필요는 없으니 당신들을 전쟁에 보내려는 명령을 거부하세요 » 라고요. 대통령 각하 저를 체포하러 오실 때 헌병대에 미리 알려주세요. 저는 아무런 무기도 소지하고 있으니 발견 즉시 저를 향해 그냥 발포하면 된다고요. |
<Le Deserteur>
Monsieur le président Je vous fais une lettre Que vous lirez peut-être Si vous avez le temps. Je viens de recevoir Mes papiers militaires Pour partir à la guerre Avant mercredi soir. Monsieur le président Je ne veux pas la faire Je ne suis pas sur terre Pour tuer de pauvres gens. C'est pas pour vous fâcher, Il faut que je vous dise, Ma décision est prise, Je m'en vais déserter. Depuis que je suis né, J'ai vu mourir mon père, J'ai vu partir mes frères Et pleurer mes enfants. Ma mère a tant souffert On m'a volé ma femme, On m'a volé mon âme, Et tout mon cher passé. Demain de bon matin Je fermerai ma porte J'irai sur les chemins. Je mendierai ma vie Sur les routes de France De Bretagne en Provence Et je dirai aux gens Refusez d'obéir Refusez de la faire N'allez pas à la guerre Refusez de partir S'il faut donner son sang Allez donner le vôtre Vous êtes bon apôtre Monsieur le Président Si vous me poursuivez Prévenez vos gendarmes Que je n'aurai pas d'armes Et qu'ils pourront tirer |
공연이 끝나고 나는 레오나르와 클레르와 함께 오늘 공연의 여가수 사라 올리비에를 기다린다. 사라가 도착하고 우리는 프랑스식 ‘볼따구 인사’를 마치고 대화를 시작한다. 공연을 보고 나온 사람들이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우리는 뭔가 멋진 자세를 취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에 잠시 도취되었지만 바로 공연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는 모범생 관객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내가 말할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먼저 프랑스인들이 알만한 한국영화로 운을 띄우며 간을 볼 셈이다.
보리스 비앙의 노래 ‘탈영병’이 수록된 앨범 이미지. 출처 : 보리스 비앙 협회
나: 너 혹시 박찬욱이란 감독이 만든 « 올드보이 »란 타이틀의 한국영화 봤어?
사라: 어. 봤지.
나: 같은 감독이 그전에 만든 《공동경비구역 JSA》란 영화가 있어.
그 영화에 ‘이등병의 편지’란 테마 음악이 있는데...대략 가사가, 흠, 그러니까…...
« Aujourd'hui, je quitte ma ville natale et prends le train pour me rendre au centre d'entraînement militaire. Lorsque je dis au revoir à mes parents, que j'ouvre la porte de ma maison et que je sors, un sentiment de regret s'installe dans mon cœur… »뭐 이런 식이야.
사라: ‘탈영병’이란 노래하고 같은 에스프리(Esprit)네!
실제로 나는 보리스 비앙의 ‘탈영병’을 듣고 나면 한국 노래 ‘이등병의 편지’를 바로 이어 듣곤 한다. 예비역인 나는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곤할 때면 군대에 가 있는 꿈, 아니 악몽에 시달린다. 상황은 늘 비슷하다. 제대를 준비하는 나에게 인사계장이 다가와 “어, 행정사고다. 너 군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생겼는데? ”라고 말하는 것이다. 제대한 지가 언제인데, 이처럼 군대의 트라우마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4년 여름, 한국 매체들은 돌아오지 않는 어린 해병과 훈련소에 갓 입소한 햇병아리 훈련병의 죽음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오늘 밤 나는 다시 군대 가는 악몽에 시달릴까 두렵다.
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영화 변사.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Ocrée Editions, 2021) »,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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