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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작가 <프로방스 여행> 연재(25)-생폴드방스 (Saint-Paul-de-V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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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연재 이후, 

<프로방스 여행-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니스의 전통음식들(지난 회에서 계속)

아이올리와 피스투

프랑스에서 마늘은 주로 리옹 남쪽 드롬(Drôme) 지방에서 재배된다. 약 750ha에 달하는 이 재배지에서는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흰 마늘을 키운다. 반면 니스의 배후지에서는 크기가 더 작은 보라색 마늘을 재배한다.


아이올리(Aïoli)와 피스투(Pistou)는 마늘이 주 재료인 소스다. 아이올리 소스는 프랑스의 지중해에 면한 지역뿐만 아니라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도 많이 먹는다. 로마인들이 마늘과 올리브유를 섞어서 일종의 반죽을 만든 것이 아이올리 소스의 시초로 전해진다. 그러니까 이 소스를 만든 건 로마인들이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소스의 질은 마늘이 좌우한다. 그러므로 수확한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마을을 사용해야 하며, 그 어떤 경우에도 바싹 마른 마늘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가장 고전적인 형태의 아이올리 소스는 마늘과 올리브유만 섞어서 만들고, 여기에 달걀 노른자와 레몬즙, 후추를 첨가하여 좀 더 풍미가 느껴지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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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올리(Aïoli) 소스  


이 소스는 대구나 골뱅이 같은 어류, 푹 삶은 소고기나 양고기 같은 육류뿐만 아니라 특히 아티초크와 살짝 삶은 호박, 셀러리, 당근, 잠두콩, 무, 회향, 브로콜리, 감자 등 거의 모든 채소에 곁들일 수 있다. 아니면 삶은 달걀이나 올리브 열매에 곁들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모든 음식에 다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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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투 소스 


피스투 소스는 마늘과 올리브유 외에 바질을 섞어 만든다. 소금과 파르마산 치즈, 후추, 소금을 넣어 좀 더 깊은 맛을 낼 수도 있다. 이 소스는 생선 요리나 양고기 요리와도 잘 어울리지만 특히 진한 흰콩 수프와 같이 먹으면 좋다.


 

-생폴드방스 (Saint-Paul-de-Vence)

프로방스다운 골목길

 니스 동물공원 앞에서 생폴드방스(Saint-Paul-de-Vence)로 가는 L400번 버스를 탔다. 버스가 르누아르 미술관이 있는 인구 5만여 명의 큰 도시 카뉴쉬르메르를 지나 인구 8천여 명의 중소 도시 라콜르쉬르루(La Colle-sur-Loup)로 들어섰다. 그 순간, 오른쪽 저 높이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생폴드방스(St. Paul de Vence) 마을이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송이 꽃처럼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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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드방스의 골목길  



샤를 트르네는 〈7번 국도〉에서 “파리는 생폴드방스의 교외”라고 노래하고, 미셀 사르두는 〈브로드웨이의 자바 춤〉에서 “생폴드방스에서처럼 장난치고 노래하세”라고 소리치며, 자크 프레베르는 〈생폴드방스에서〉라는 산문시에서 생폴드방스의 아이들과 꽃, 작은 새들을 찬양했다.

산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올라앉아 있는 생폴드방스는 르네상스 시대에 카를 5세의 군대에 저항하기 위해 쌓아 올린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치형의 성문을 지나면 나타나는 낡은 돌집과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가파른 계단, 물이 졸졸 흘러나오는 샘, 길 양쪽에 늘어서 있는 화랑, 화가들의 아틀리에, 곳곳에 전시된 예술품…. 이 마을을 천천히 걷노라면 정말 프로방스에 와 있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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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드방스의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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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드방스 

 

황금 비둘기 식당에서 시작된 인연

시몬 시뇨레는 1921년 3월 25일 독일에서 시몬 카민케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프랑스 배우다. 폴란드계 유대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파리 북쪽의 부촌 뇌이쉬르센에서 자랐다. 그가 조부모 집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한 이 젊은 여성은 〈르 프티 파리지앵〉 신문사에서 비서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배우를 꿈꾸었던 그는 연기의 세계에서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기로 하고 일을 그만둔다. 단역으로 시작한 배우 생활은 이 젊은 배우에게 매혹된 이브 알레그레 감독의 〈새벽의 악마들〉이라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946년에는 그가 연출한 〈마카담〉에서 주연을 맡아 진정한 전후의 스타로 탄생한다. 그리고 2년 후, 두 사람은 결혼하여 딸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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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시뇨레와 이브 몽탕                               황금 비둘기 식당에서


1949년,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시몬 시뇨레는 생폴드방스에서 세 살배기 딸과 함께 바캉스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황금 비둘기 식당(La colombe D’Or)에 들렀다가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소개로 한 동갑내기 청년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바로 〈고엽〉을 불러 큰 성공을 거둔 가수 이브 몽탕이었다. 그는 얼마 전 에디트 피아프와 헤어져 우울해 하고 있던 차였다.


두 사람은 한눈에 서로에게 끌렸다. 시몬 시뇨레는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여성이었다. 결국 이브 알레그레를 버리고 딸과 함께 이브 몽탕에게 와서 1951년 12월, 결혼식을 올렸다.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두 번씩이나 유산을 하자 포기한다.


두 사람은 시몬 시뇨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삶을 함께한 부부이기도 했지만 프랑스 공산당에서 정치적 투쟁을 벌인 동지이기도 했다. 핵발전소 건설과 매카시즘(1950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에 반대했고, 알제리 독립과 칠레 난민들을 위해 싸웠으며, 인종차별에 맞서 투쟁했다. 프랑스 공산당을 지지했지만, 1956년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을 돌아보면서 인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고 지지를 철회하였다.


시몬 시뇨레는 이브 몽탕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특히 마릴린 먼로와)을 알고 있었다. 독한 담배를 연이어 피우며 과음하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자주 다투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브 몽탕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고, 그를 떠날 수도 없었다.

시몬 시뇨레가 198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이브 몽탕은 6년을 더 살았다. 이 두 연인은 지금 파리 페르라세즈 묘지의 무덤에 함께 누워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을 살고 있다.


<이재형 작가>



1, 이재형 작가와 함께 하는  "파리구석구석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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