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리광장 답사기- 콩트르스꺄르프 광장 Place de la Contrescarp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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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콩트르스꺄르프 광장의 이름을 딴 ‘라 콩트르스꺄르프(La Contrescarpe)’라는 카페에서 사진가인 레오나르와 화가인 클레르를 만나기로 했다. 이 카페에는 노란 차양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 중 하나인 무프타르(Rue Mouffetard)이다.
노란 차양이 있는 ‘라 콩트르스꺄르프’ 카페. 예전에는 차양의 색깔이 빨간색이었다.
오른쪽 골목이 콩트르스꺄르프 광장으로부터 무프타르 거리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맵
약속 시간 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무프타르 길로 접어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콩트르스꺄르프 광장에 오게 되면 무프타르 길로 빠져 내려가면서 몇 가지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거리에서 나는 황급히 36번지를 향한다. 이곳에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작을 듯한 크레프 가게가 있다. 옥색이라 해야 할까 ? 이 애매한 색을 아주 오랜 세월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이 식당은 겉으로 봐서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손님이 안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다.
심지어 2층으로 올라가면 조그만 창문으로 밖을 내다볼 수도 있다. 주머니가 항상 가벼웠던 학생 시절, 그곳은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내가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서 당시 이 동네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는 가게였다. 특별히 비싼 음식은 없지만, 나는 미리 가장 저렴하고 간단한 계란 걀레트를 주문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친구가 수돗물을 마시는 것에 동의하고 내가 추천한 장봉 프로마주(Galette au jambon fromage) 주문을 확정하는 순간, 휴우 , 긴장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이곳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만찬장이 된다. 백설공주와 난장이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깻잎 한 장만한 이 식당의 이름은 크레프리 오로요나(Crêperie Oroyona)이다
무프타르 거리 36번지 크레프리 오로요나. 이미지 출처 : 구글 맵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까불이와 덜렁이들도 신기하게 음식이 나오고 포크와 나이프를 잡는 순간 얌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만물 구라 보따리를 꺼낸다.
나: 이집 이름이 오로요나(Oroyona)인데…...이집 주인 아내의 이름일 걸 ? 너 알아 ?라틴 아메리카에는 요로나(Llorona)라는 이름이 있어. 근데 요로나는 스페인어로 우는 여자라는 뜻이고, 멕시코와 중남미 지역에 여러 버전의 전설이 있지. 전설에 따르면 말이야, 요로나는 밤에 강가나 호수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내는데…..어때? 너무 무섭지?
친구: 오로요나(Oroyona)는 스페인 말로 금이란 뜻인데.
나 : 켁 ! 목 막혀. 여기 수돗물 한 병이요 ! 근데 너는 프로방스 출신인데 왜 이리 성질이 급한 건데? 한국사람이 하는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거다, 너. 그러니까 오로요나가 아니고 나는 지금 요로나에 대해서 말하고 있거든? 너 차벨라 바르가스(Chavela Vargas)가 누구인지 알아?
친구: 코스타리카 출신의 멕시코 가수.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óvar) 감독의 뮤즈.
나 : 그래. 너 잘났다. 아니, 이제 다왔다. 차벨라 바르가스(Chavela Vargas)가 부른 노래 중에 « 요로나 »라는 것이 있다고. 그게 아주 사람 가슴을 후벼 파는 깊고 떨리는 파토스가 있다는 말씀을 전해드립니다요.
오로요나 식당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한 나는 골목길을 쪼르르 55번지까지 내려가 ‘여행자의 나무 (L'Arbre du Voyageur) ’라는 서점이 오늘까지도 문을 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쇼윈도에 전시된 책들을 바라본다. 나는 이 서점의 신기한 책 전시 기술에 깜빡 속아서 첫 페이지를 열면 바로 잠이 들어버리는 아주 괘씸하게 지루한 내용의 책들도 샀다.
서점 여행자의 나무(L'Arbre du Voyageur)에서 구매한 책의 표지. 이미지 출처 : 출판사 Les Éditions de Minuit
서점 쇼원도우에 진열된 책들을 보아하니 주인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쇼윈도우의 책들은 약간은 불만스러운 어조로 내게 이렇게 일러바친다.
« 예전의 그 중년의 여주인은 은퇴했어요. 그녀는 아들에게 이 서점을 물려주었답니다. »
시계를 보니 앗 ! 만날 친구들이 기다리는 콩트르스꺄르프 광장으로 되돌아 가야 할 시간이다.
무프타르 거리 55번지에 위치한 여행자의 나무 서점.이미지 출처 : 구글 맵
강창일 파리 8대학 연극영화 박사, 파리 10대학 비교문학 연구자, 무성영화 변사.
저서로는 « Les débuts du cinéma en Corée(Ocrée Editions, 2021) », « Le cinéma coréen contemporain : A l'aube de Parasite (Ocrée Editions, 2023)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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