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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작가 <프로방스 여행> 연재(5) -알퐁스 도데의 풍차 마을 퐁비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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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연재 이후, 

<프로방스 여행-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연재합니다.

연재를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반 고흐가 입원해 있던 생폴드모졸레 정신병원을 찾아가기 위해 아를에서 북동쪽으로 25분가량 차로 달려가다 보면 퐁비에유(Fontvieille)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자동차를 야외 주차장에 세워두고 진한 소나무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야트막한 바위산을 10분쯤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풍차가 하나 나타난다.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빙글빙글 돌아갈 것 같은 이 풍차는 흔히 ‘도데의 풍차’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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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토방 성

프로방스 출신의 작가 알퐁스 도데(1840~1897)는 파리에서 30년을 살았다. 그는 삶이 힘들게 느껴질 때마다 퐁비에유를 찾아와 친구인 앙브로이 가족이 소유하고 있던 몽토방 성에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성에서 멀지 않은 풍차까지 천천히 걸어 올라가 앞에 드넓게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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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비에유의 풍차

사실 알퐁스 도데는 1814년에 세워진 이 풍차에 살지도 않았고 이 풍차의 주인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풍차 주변에서 영감을 얻어 단편집 《풍차 방앗간 편지》에 실린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을 썼다.

 

풍차 방앗간의 풍차가 하루 종일 돌아가는 마을이 있었다(아마도 퐁비에유일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수확한 밀을 이곳으로 가져가서 빻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 증기를 이용한 방앗간이 들어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풍차 방앗간을 찾지 않고 증기 방앗간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하여 마을의 풍차 방앗간은 전부 다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곳, 60년 동안 풍차 방앗간 일을 해온 코르니유 영감의 풍차는 계속해서 돌아갔다. 사람들이 궁금해하자 그는 빻을 것이 많아서 풍차 방앗간을 계속 돌린다고 대답하면서도 방앗간 안은 보여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손녀 비베트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정도였다.

비베트는 마을 청년 한 사람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코르니유가 반대하자 그를 설득하기 위해 청년과 함께 방앗간으로 찾아간다. 코르니유가 마침 외출 중이어서 그들은 방앗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밖에서는 풍차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안에 있는 맷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동안 코르니유 영감의 풍차 방앗간은 아무것도 빻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진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밀을 모아 코르네유 영감의 풍차 방앗간으로 가져가고, 그걸 받아든 영감은 신이 나서 다시 맷돌을 돌렸다. 풍차는 코르니유 영감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마을 사람들이 들고 오는 밀을 찧으며 계속 돌아갔다. 그가 죽자 풍차 방앗간은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져갔다.

 

카마르그의 여름밤을 장식한 작고 새까만 황소의 승리

아를을 지나 남쪽으로 흐르는 론강과 동쪽으로 흐르는 프티 론강 사이에 형성된 카마르그(Camargue)는 생태계가 매우 잘 보존된 습지로 늪과 호수, 갈대밭, 모래 해변, 염전 등 다채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유럽에서 가장 넓은 이 습지를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이 지역의 상징과도 같은 홍학과 흰색 말, 그리고 검은 황소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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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르그의 투우 경기장

뿔이 위로 곧게 뻗어난 이 작고 새까만 황소는 카마르그 습지에서 중세 때부터 사육되었다. 이 황소는 세 살이나 네 살이 되면 처음으로 투우 경기장(아를과 님, 뤼넬, 보케르, 샤토르나르 등 프로방스 도시에 규모가 큰 투우 경기장이 있다)에 입장한다. 황소의 두 뿔 사이에 방울 술(‘코카르드(cocarde)’라고 부른다) 2개가 달린 리본을 묶는다. 이 리본은 이 황소가 ‘싸움소’라는 것을 의미한다.

황소를 풀어놓으면 흰옷을 입은 투우사(카마르그의 투우사는 ‘코카르디에(cocardier)’라고 부른다)는 황소와 맞서며 작은 갈고리로 이 리본을 잡아채려고 애쓴다. 투우사가 리본을 뺏으면 상금을 받게 된다. 반면에 황소가 화도 내고 꾀도 부리며 15분 동안 버티는 데 성공하면 영광스러운 승자가 되어 주인이 모는 트럭을 타고 카마르그의 풀밭으로 돌아가서 다음 싸움에 불려가기를 기다리며 풀을 뜯는다. 하지만 리본을 뺏긴 황소는 좁은 경기장과 시끄럽게 고함을 질러대던 관객, 악착 같았던 투우사를 원망하면서 복수를 다짐할 것이다.

프로방스에 살 때 내게는 나보다 서른 살 어린 프랑스 남자 대학생 친구가 있었다. 그는 자기가 사는 뤼넬이라는 동네의 원형경기장에서 투우 경기가 벌어지는데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여름이라 투우는 밤 10시쯤 시작되었는데 경기장은 이미 관람객들로 꽉 차 있었다. 작은 덩치에 뿔을 천으로 감싼 카마르그 황소의 투우 경기는 덩치가 엄청난 황소(뿔이 땅 쪽으로 향해있는)가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은 투우사에게 희롱당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스페인 투우와는 달리 위험하지 않다. 황소를 죽이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날 밤의 투우 경기는 마치 동네 축제처럼 즐거운 분위기였다. 동네 청년들로 보이는 남자 투우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바치겠다며 황소에게서 리본을 빼앗으려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황소는 인간들이 자신의 뿔에서 리본을 낚아채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결국 황소가 승리를 거두었다.

어른 황소가 의기양양하게 경기장을 빠져나가자 새끼 황소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리본을 선물하려고 어린 황소의 꽁무니를 줄줄 따라다녔다. 새끼 황소도 어른 황소 못지않게 민첩했다. 여자 투우사들은 어린 황소의 뿔에 달린 리본을 뺏기 위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뛰어다녔지만 어린 황소는 그들보다 훨씬 더 빨랐다.

황소들의 완전한 승리였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1, 이재형 작가와 함께 하는 4월 "파리구석구석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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