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작가 연재, 콜마르 <이젠하임의 제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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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하임의 제단화>
콜마르는 옛 참사회 교회와 여러 개의 수도원, 아름다운 극장, 운하, 대부분 14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지어진 목재골조 주택 등 풍부한 건축 유산을 가지고 있는 인구 7만 여명의 도시다.
콜마르의 남쪽 동네는 원래 강이 지나가는 늪지대여서 중세 때부터 채소를 재배했다.
뱃사공들은 여기서 키운 채소를 바닥이 평평한 전통적인 형태의 배에 실은 다음 강을 통해 시장으로 갔다.
지금은 뱃사공들이 베니스의 곤돌라 뱃사공처럼 관광객들을 태우고 다니는 이 강이 지금 "작은 베니스"라고 불리는 운하가 된 것이다.
콜마르는 또 하나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
1512년에서 1522년 사이에 마티아스 그 뤼 네 발 트 ( M a t t h i a s Grünewald, 1475-1528)가 그린 <이젠하임 제단화(Le Retable d’Issenheim)>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운터린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화가 그뤼네발트는 콜마르에서 머지 않은 이젠하임이라는 마을에 있는 성 안토니오 수도회로부터 수도원의 주 제단을 장식할 제단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 수도회는 "성 안토니오의 불"이라고 불리는 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 중세 때 널리 유행했던 이 무서운 병은 오늘날에는 궤양성 맥각중독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과학은 귀리 같은 곡식에 기생하는 맥각균이라는 곰팡이가 이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그 당시에는 이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이 병에 걸리면 온 몸이 꼭 불에 탄 것처럼 검게 변하여 괴사하고, 심지어는 한센병 환자들처럼 손과 발이 떨어져 나가기까지 했다.
또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환각증세를 일으키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다.
이 제단화가 그려진 것은 이 같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맥각균에 전염된 사람들을 위해 그려졌기 때문이다.
성 안토니오는 이 병을 일으킬 수도 있었지만, 또한 치유할 수도 있었다.
이 병에 걸린 수도원은 사람들을 받아들여 치료해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환자들이 수도원으로 몰려들었다.
수도사들은 수도원에 들어온 환자들을 이 제단화 앞으로 데려갔다. 환자들은 온몸이 상처로 뒤덮인 채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스러워하는 예수를 보며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느꼈을테지만 또 한편으로는 예수가 자기들과 함께 고통받는다는 사실에 위로받고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예수의 탄생과 죽음, 부활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이 제단화는 여러개의 패널과 날개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제단화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왼쪽 날개에는 성 세바스찬이, 오른쪽 날개에는 성 안토니오가 그려져 있다.
예수를 보라. 가시관이 씌워진 채 두 손 두 발에 못이 박힌 예수는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듯 온몸을 비틀고 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발버둥치다가 십자가가 휘어버렸을까. 창으로 찔리고 굵은 가시가 박힌 예수의 몸은 서서히 부패해가는 듯 초록색 반점으로 뒤덮여 있다.
예수의 오 른 쪽 ( 그 림 에 서 는 왼쪽)에서는 성 요한 사도가 성모 마리아를 부축하고 있다.
그림 오른쪽의 세례 요한은 한손으로 예수를 가리키고 있으며, 그의 뒷편에는 빨간색으로 이렇게 쓰여 있다.
"그분은 더욱더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복음> 3장 30절)
그의 발밑에는 희생당한 예수를 상징하는 양이 성배에 피를 흘리고 있다. 예수 오른쪽에서 손을 모으고 있는 여성은 막달라 마리아다. 그림 아래 부분에서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막달라마리아가 예수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나는 1992년에 처음으로 이 제단화를 보았고(그때는 지금과는 다른 장소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아주 가까이서 이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스탕달 증후군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창으로 찔리고 가시가 박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예수의 몸을 보는 순간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고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면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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