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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작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연재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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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 궁의 방, 두번째



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를 마치고,  

이재형 작가의 파리 저서,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2022년 디이니셔티브 출판)를 연재합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볼 방은 국정회의실(the Council Room)이다. 이 방은 원래 루이 14세 때는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루이 15세가 하나로 합치면서 화려한 장식물들이 많이 훼손되고 사라졌다. 이 방에 있는 조각들 중 하나는 알렉산더 대왕이고 또 하나는 아프리카 사람 스키피온(로마의 장군이자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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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회의실


이 방은 100년 이상 프랑스 정치의 무대였다. 왕은 여기서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 때로는 수요일에 11시에서 오후 1시까지 장관들과 함께 일을 하고, 주요 관리들의 서약을 받고, 개인들을 알현하기도 했다. 회의를 하는 동안 왕은 명품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장관들은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1775년, 미국독립전쟁에 참전한다는 결정이 내려진 곳도 바로 이 방이다. 


왕은 거울의 방으로 나가는 문을 통해 미사에 참석하러 가곤 했다. 이 국정회의실과 이어져 있는 왕의 방(the King’s Bedchamber)은 1701년부터 왕의 방이 되었는데, 그 당시의 모습이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방이다. 온통 금색인 이 왕의 방은 베르사유 궁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즉 프랑스 왕의 방은 베르사유궁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중심이기도 한 것이다. 


루이 14세는 앙리 3세(1551-1589) 때부터 시작된 “왕의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의식과 왕의 잠자리에 들기 의식”을 완전히 정착시켰고, 이 의식은 루이 16세 때까지 계속되었다. 루이 14세는 1715년 9월 1일 이 방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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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방


이 의식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알아보자. 

아침 8시 반이 되면 제 1 시종이 침대 커튼을 젖히고 말한다. “폐하, 일어나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왕의 유모가 가장 먼저 와서 왕을 포옹하고, 이어서 의사가 나타나 왕의 건강 상태를 살핀다. 그러고 나면 식사 담당 시종이 죽을 아침식사로 가져온다. 


식사가 끝나면 제 1 시종이 문을 붙잡은 채 왕을 문안하러 온 귀족들의 이름을 왕에게 알려주고, 이 귀족들은 계급 순으로 왕을 알현한다. 

침대 위의 부조는 제목이 “왕의 잠을 지켜보고 있는 프랑스”다. 이 방의 그림들은 루이 14세가 직접 골랐고, 지금도 원래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다. 


루이 15세는 왕의 방이 너무 춥다고 생각, 1737년에 더 안쪽에 있는 왕의 방으로 옮겨갔다. 이때부터 이 방에서는 “왕의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의식과 왕의 잠자리에 들기 의식”만 행해졌고, 원래 하나였던 벽난로도 루이 15세 때 두 개로 늘어났다. 


다음에 보게 될 방은 왕의 두 번째 부속실로, “황소 눈알의 방(the antichamber to the Oeil-de-Boeuf)”이라고 불린다. 좌우측 벽 윗부분에 황소 눈처럼 생긴 타원형 창이 뚫려 있기 때문이다. 황소 눈 주변은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다. 루이 14세가 “어린아이들이 어디서나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저렇게 조각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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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눈알의 방


이 방은 원래 바싸노들(이 방을 장식한 베니스 출신 화가들)의 방이었다. 그러나 루이 14세가 아침에 일어나 궁정 귀족들 인사를 받기에는 왕의 방이 너무 좁다고 느껴지자 아예 왕의 방 일부와 바싸노들의 방을 합쳐 이 방을 만들고 여기서 아침인사를 받았다. 또 신하들은 이 방에서 기다렸다가 왕의 방으로 들어갔다. 


앞에 보이는 그림은 루이 14세 때 왕족들을 올림포스 산에 사는 신과 여신들의 모습으로 그린 것이다. 당연히 루이 14세는 아폴론 신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루이 14세는 이미 35세 때 대머리였으니, 이 그림이랑은 전혀 안 어울린다. 또 루이 14세의 초상도 있고, 그의 사촌인 샤르트르 공작의 초상도 있다. 루이 14세와 15세, 16세의 반신상도 보인다. 


오른쪽에 나 있는 문은 왕의 제 1 시종 집무실을 거쳐 여왕의 부속실로 통한다. 


자,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평화가 찾아오지 않겠는가. 거울의 방이 끝나는 곳에 있는 평화의 방(the Peace Room)은 원래 여왕의 대집무실로 쓰이던 장소다. 전쟁의 방과는 달리 이 방의 그림이나 원형 그림은 모두 평화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방의 천장화 역시 르브룅이 그렸다. 이 그림의 제목은 “평화의 여신에게 각 나라로 내려가라고 왕홀로 명령하는 프랑스”이고 그 주변에 “풍요”와 “화해”, “종교”, “위대함”, “예술” 등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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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방


벽난로 위에는 원래 르브룅이 루이 14세가 외국대사들을 접견하는 장면을 그리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헤라클레스의 방 천장화를 그린 르모인이 “유럽에 평화를 안겨주는 루이 14세”와 “불화를 이겨내고 승리하는 풍요와 동정의 신”을 그렸다. 


이 방에서는 루이 15세의 왕비인 레진스카가 매주 일요일에 음악회를 열었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비일 때에는 이런저런 놀이를 했다. 


자, 이번에는 열한 번째부터 열네 번째까지의 방을 보게 된다. 여왕의 공간(The Grand Appatement of Queen)이라고 불리는 이 방들은 말하자면 각종 의식이나 실내 파티 등 여왕이 공식적인 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여왕의 사생활 공간 역시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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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공간


이 방들은 원래 이 방들을 다 보고 나서 보게 될 여왕의 계단을 통해 올라와야 했다. 따라서 우리는 루이 14세의 아내인 마리 테레즈를 위해 만들어진 여왕의 공간을 역순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여왕의 방(the Queen's Room)에서는 세 명의 여왕이 살았고, 그중 두 명(마리 테레즈와 마리 레진스카)은 여기서 죽었다. 그리고 여기서는 미래의 루이 15세를 포함, 열아홉 명의 왕자와 공주들이 태어나기도 했다(여왕은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를 낳았다). 왕이 이 방으로 여왕을 찾아와 같이 잤다고 한다. 


루이 14세의 아내 마리 테레즈는 천장을 저렇게 나누어 놓았다. 루이 15세와 마리 레진스키가 결혼한 1725년부터 이 방의 개조 작업이 시작되어 실내장식이 여러 번 바뀌었다. 1734년에 그려진 문 위의 그림들을 보라. 평화의 방 쪽에는 “두 명의 공주(루이 15세의 딸인 아델라이드와 빅트와르다)를 프랑스에게 소개하는 젊음과 미덕의 여신”이, 그 반대쪽에는 “왕자 루이와 공주 엘리자베트와 앙리에트를 프랑스에게 소개하는 영광의 여신”이 그려져 있다. 


천장과 벽의 이음부를 보면 당대 최고의 화가인 부세가 1735년에 금색과 회색 단일화로 그린 “여왕의 네 가지 미덕(풍요, 성실, 신중, 자애)”을 볼 수 있다. 


황태자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바로 이처럼 장식된 이 방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녀는 폴리오와 루소가 루이 14세풍 장식을 대부분 유지하면서 약간 고쳐놓은 장식에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을 조금 반영했다. 높은 거울 위를 보면 타피스리 기법으로 그려진 둥근 초상화들이 있는데, 어머니인 황후 마리 테레즈와 오빠인 게르만제국 황제 조제프, 남편인 루이 16세의 모습이 보인다. 


1786년부터는 이 방의 현대화가 시작되어 대리석 벽난로를 설치하고 여름용 가구들도 새로 들여놓았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는 1789년 혁명이 일어나자 파리에서 몰려온 폭도들을 피해 왼쪽에 있는 문을 통해 도망쳐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 방에 돌아오지 못했다. 벽난로 위에 있는 그녀의 조각상은 그녀가 28세 때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여왕의 방은 1789년 10월 6일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다. 그리고 왼쪽의 저 보석함은 혁명이 일어나고 경매로 팔렸던 것을 다시 회수해서 가져다 놓은 것이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이재형 작가의 프로방스 여행 -내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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