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작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연재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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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 궁 두번째
파리광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를 마치고,
이재형 작가의 파리 저서,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2022년 디이니셔티브 출판)를 연재합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베르사유 궁을 보기 위해 차도를 건너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루이 14세의 기마상이다.
루이 14세는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과 함께 싸우러 갈 준비를 갖추었다. 그는 이제 파리로 가서 노트르담 성당에서 승리를 기원하는미사를 올린 다음 전쟁터로 나갈 것이며, 전쟁을 치르고 나면 다시 같은 성당에 들러 감사 미사를 올리고 베르사유 궁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 기마상을 등지고 서서 보면 앞에 거의 비슷하게 생긴 건물 두 채가 길 양쪽에 보인다. 왼쪽에 있는 건물은 큰 마구간이라고 불리며, 왕과 황태자가 탈 수 있는 튼튼한 말을 300마리 이상 관리했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작은 마구간으로 큰 마구간보다넓으며 주로 마차를 관리했다.
베르사유 궁 쪽으로 돌아서면 왼쪽으로 궁에 딸린 부속건물이 보인다. 이 거대한 건물은 망사르가 1682년에서 1686년 사이에 지었으며, 1층에 황태자와 황태자비의 저장창고와 주방이 있었다. 2, 3층에는 궁정의 조신들이 머무르는 600개 이상의 방이 있었다. 그중에는 르노트르와 “왕의 저녁식사를 위한 교황곡”을 작곡한 들라랑드의 방도 있었다.
왕궁으로 들어가려면 3개의 마당을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는 루이 14세의 동상이서 있는 마당인데 누구든지 이 마당에는 들어올 수 있었다.
두 번째 마당도 천연두에 걸린 사람과 창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이 마당을 둘러싼 철책은 아래 사진처럼 장식되어 있었다. 맨위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를 상징하는 백합꽃이고, 그 아래에서는 아폴론신이 햇빛을 널리 퍼트리고 있다.첫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넓은 앞마당이 나타난다. 이 마당에서는 붉은 옷을 입은 스위스 경비대와 파란옷을 입은 프랑스 경비대가 북이 울리는 가운데 국빈들을 맞이하였다.
베르사이유 궁의 마당을 둘러싼 철책
이 앞마당을 끝까지 걸어가면 “왕의 울타리”라고 불렸던 황금색 철책이 나타난다. 최초의 철책은 혁명 때 파괴되었고,2008년 5백만 유로를 들여 7톤의 쇠에 금종이 10만 장을 붙여 새로 만들었다.
이 철책을 지나면 “왕의 마당”이 나타나는데, 이 마당에는 오직 “왕의 사촌”이라고 불리는 작위 소지자들만 마차나 가마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왕의 울타리"라 불린 황금색 철책
“왕의 마당”을 지나 몇 개의 계단을 오르면 마지막으로 흰색과검은색 대리석으로 된 “대리석 마당”이 나타난다. 이 마당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3층 건물의 2층이 바로 왕의 침실이었다. 눈을 들면 이 건물 꼭대기에 문자반이 푸른색인 시계가 보인다. 시계 한가운데에는 황금빛의 아폴론 신이 빛을 발산하고있으며, 시침 끝부분에는 부르봉 왕가를 상징하는 백합꽃이 달려있다. 시계 오른편의 조각은 전쟁의 신인 마르스이고, 왼쪽 조각은 헤라클레스로, 루이 14세를 상징한다.
베르사유 궁전 안으로 들어가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왕의 생-루이 예배당이다. 베르사유 궁에는 모두 다섯 개의 예배당이 있었는데, 건축가인 망사르와 로베르 드 코트가 12년 동안 지은 이 예배당이 그중에서 가장 화려하다.
베르사이유 궁 안에 있는 생-루이 예배당
이 예배당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왕의 예배당은 구조가 다 이런 식이었다. 아래층에서는 일반 신자들이 예배를 보았고, 2층 입구 쪽에는 왕을 비롯한 왕족들이 자리를 잡았다. 왕은 여기서 매일 10시부터 1시간 동안 예배를 드렸다.
천장에는 삼위일체와 샤를마뉴 대제, 생 루이 왕, 구약에 등장하는 열두 명의 예언자들, 예수의 열두 제자 등이 그려져 있다. 정면으로 주 제단이 보인다. 삼각형은 성자, 성부, 성신의 삼위일체를 나타낸다. 그 위에서는 “푸티”라고 불리는 아기천사들이 날아다니고, 그 위에서는 어른천사가 “신을 경외하고 경배하라”는 내용의 성경 시편 110장이 쓰인 두루마리를 풀어 내리고 있다.
맨 위에 작은 파이프오르간이 보인다. 원래 다른 장식품들도 많이 있었으나 프랑스혁명 때 다 파괴되고 이 오르간만 남아 있는 것이다. 파이프오르간을 주 제단 위에 설치하는 것은 예외적인경우인데, 음악을 좋아하는 루이 14세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여기서 루이 16세가 될 황태자(1754-1793)와 마리-앙투아네트(1755-1793)가 1770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왕의 예배당 2층을 지나면 헤라클라스의 방(theHercules Salon)이 나타난다. 원래는 성 안에 있는 네 번째 예배당의 윗부분이었던곳이며, 실내장식은 1736년에 완성되었다.
자, 이 방에는 루브르 미술관의 <모나리자>건너편에 걸려 있는 <가나의 식사>를 그린 이태리의 위대한 화가 베로네세의 그림이 두 점 걸려 있다. 벽난로 위의 그림은 <엘리에제르와 레베카>(1580)다. 주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아들 이삭의 신부감을 찾아오라는 명을 받은 하인 엘리에제르가 아버지의 양떼들에게 먹일 물을 긷고 있는 레베카를만나는 장면이다.
베로네세 <엘리에제르와 레베카>
또 다른 그림은 <시몬 집에서의 식사>(1576)로, 마태복음 26장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이 그림은 원래는 베니스의 한 수도원 식당에 걸려 있었으나 베니스공화국이 1664년에 터키의 침략으로부터 자기 나라를 보호해준 데감사하는 뜻으로 루이 14세에게 선물했다.
베로네세 <시몬 집에서의 식사>
자, 이제 천장을 한번 올려보라.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르모인(1688-1737)의 걸작 <헤라클라스, 신이 되다>로, 열두 가지의 시련을 거친 헤라클레스가 올림푸스 산에서 신이 되는 장면이다. 여기서 헤라클레스는 곧 프롱드의 난이라는 시련을 거치고왕이 된 루이 14세를 상징한다.142명이 등장하는 이 그림을 그린 르모인은 왕의 수석화가였으나 3년 동안 이 그림을 그리느라 건강을 해쳤고 아내까지세상을 떠나자 결국 미쳐서 40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프랑수아 르모인 <헤라클라스, 신이 되다>
1671년에서 1680년 사이에 지어진 두 번째 방부터 일곱 번째 방까지는왕의 아파트(The King’s Grand Apartment)로 불린다. 말하자면 각종 의식이나 실내 파티 등 왕이 공식적인활동을 하는 공간이었다. 왕의 사생활 공간은 따로 마련되어 있었지만, 대부분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색깔의 대리석과 금색 회벽으로 장식되어 있고, 여기 전시된 가구나 그림들은 이 공간의 공식적 기능을상기시켜 준다. 원래는 이 방들마다 루이 14세가 수집한(그는 유명한 그림 수집가였다) 유명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각국 대사들이 한껏 차려입고 요란을 떨며 이 방들을 지나갔을 것이다. 겨울에는 여기서 1주일에 세 번씩 밤에 파티가 열렸던 것이다.
겨울에는 여기서 1주일에 세 번씩 밤에 파티가 열렸던 것이다. 이 방들은 낮에는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되어, 이들은 미사를 드리기 위해 여기를 지나 예배당으로 가는 왕과 마주쳤을 것이다.
이 방들에는 각 행성의 이름이 붙여져 있고, 마지막 방에는 루이 14세를 상징하는 아폴론의 방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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