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입양인 2세 아로이스 데라스(Aloïs Dér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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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뿌리협회 청년 회원이자, 운동선수로 활약
파리광장은 문화체육관광부 해외홍보원 코리아넷의 명예기자인 나탈리 피즈(Nathalie Fisz)씨의 프랑스어 인터뷰 기사를 번역, 편집하여 올립니다.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인 2세들의 이야기로, 그들이 부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한국을 또한 어떤 시선으로 보고 느끼는지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 기사는 코리아넷 사이트에 게재되었습니다.
나는 아로이스를 한국뿌리협회(Association Racines Coréennes)의 온라인 아페로(visio-apéros)를 통해 알게되었다. 이 젊은 참가자는 우리의 주목을 끌었다. 23세인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의 생각들을 풀어내곤 했었다. 아로이스는 강의와 논문을 준비하고 있고, 강도 높은 스포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어떻게 한국뿌리협회를 알게 되었어요 ?
-어느날, 우연히 1950년에서 2000년 사이에 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되어온 국제 입양 관련 기사를 읽게 되었어요. 기사는 특히 입양인들로 구성된 단체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역사와 개인의 기억'의 자리를 구체화하는 역할에 관해 자세히 설명했어요. 당연히 내가 관련이 되었음을 감지했고요, 이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간접적으로 나의 한 부분이고, 연결되어 있었어요. 이 모든게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나의 아버지가 입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의 뿌리인 나라에 관해 뭔가 연결되어 있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독특하면서도 공유되는 또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이를테면 때로 무시되거나, 부인되거나, 결핍된, 이야기가 없는 이야기에서 시작된거죠.
한국뿌리협회에 메일을 보냈는데, 당시 협회 회장인 니콜라 마숀(Nicolas Masson)이 바로 답을 주었어요. 그의 초대로 그로부터 몇주 뒤에 온라인 아페로에 참여하면서 회원들을 알게 되었죠.
아로이스
언제부터 뿌리협회를 알았어요 ?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무엇이었나요 ?
-2020년 1월이었어요. 저의 관심을 끈 건 우선 소통이었어요. 각자의 비전이나, 위치, 행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잘 모르고 있던 개인사들이었는데,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는 각자 다른 삶의 과정속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협회는 저에게 많은 친구를 만나게 해주었어요. 온라인 아페로는 교류와 공유, 기쁨의 순간과 강렬한 성찰이 있는 알찬 모임입니다.
우리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동기는 다양하지만 우리는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신중을 기하지만, 한국뿌리협회는 이런 문화변용(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두 사회가 지속적이고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서로가 갖고 있는 문화에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 혹은 재문화변용에 아주 좋은 중개자입니다.
협회의 어떤 활동과 행사를 가장 좋아하나요 ?
-저는 지방에 살고있어요. 그래서 디지털화된 것이나 온라인 활동에 주로 참여하고 있어요. 회원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고요, 기회가 되면 만나기도 합니다.
가족 중에 아버지가 입양되신거죠. 몇살에 프랑스에 오셨는지요 ?
-70년대 초반이에요. 우리가 접근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의 간극에소 우리가 추측하거나 상상하는 이야기가 있죠. 우리의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 우리는 해명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특정 맥락의 역사적 상황을 발견함으로써 모든 것을 재구성하게 되는데, 그러나 이렇게 재구성된 진실의 본질은 언제나 추측적이고 잠정적이며 불확실합니다.
아버지가 친부모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
-아버지는 몇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었을거 같아요 ?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의 말을 인용하는걸로 답을 할게요 : « 인간에게 뿌리를 없애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영혼을 위축시키는 좌절입니다 »
직업은 무엇이에요 ? 취미나 특기는요 ?
-23살이고요, 광고 쪽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어요. 대학에서 과학과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강의를 하고 있고, 체조 운동선수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졌나요 ?
-사실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저는 그보다는 한국뿌리협회를 통한 입양인들의 개인 이야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저에게 한국문화는 멀게 느껴져요.
혼혈인일 경우, 문화가 상대적인 것이 되고 결코 100% 동일시할 수 없는, 극복할 수 없는 중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곤 합니다
프랑스에서 저는 모습 때문에 자주 중국인으로 알아요. 한국에서는 혼혈이죠. 저는 K-Lost(잃어버린, 입양된, 자손)이거나, Wasian (white-asian)이에요.
K-Pop, K-drama, K-food, K-fashion의 맥락에서 K-Lost라는 용어는 좀 더 환원적이고 모호합니다. 그것에서 멀어지는 사람은 길을 잃은 사람입니다. “잃어버린” 사람이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정체성에 속하죠.
한국에 대한 서구의 시각은 부분적으로 문화 산업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기초하여 새롭고 매혹적이며 이상주의적입니다. 일부 한국인들은 바게트의 진부한 표현을 통해 프랑스를 생각합니다.
나와 한국 문화의 연관성을 이해하려면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가족의 역사로 돌아가야 합니다. 한국 문화는 장미빛은 아니고, 아버지가 버림받아 조국에서 멀리 보내지게 된 역사적 상황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연결되어 있는 한국 문화는 방탄소년단도, 삼성도, 오징어 게임도 아니에요.
1960년대에는 여성들이 혼외 출산한 아이들을 버려야 했고, 국가는 극심한 빈곤에 빠졌고, 가족들은 굶주림으로 죽어갔으며, 매춘을 강요받은 여성 중 일부는 16세에 임신했습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폭격으로 폐허가 된 나라고, 억압받은 ‘아줌마’들이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살아가고 있는 상처받은 곳이죠.
하지만 이 한국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곳을 통해 나의 아버지와 관계되었고, 나에게까지 연결되어 있어요.
저는 한국 문화 보다는 그 문화 속의 역사와 연결됩니다. 이 나라는 엄청난 회복력을 보여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이러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안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그가 태어난 시대 만큼이나 비극적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역사적인 측면에 대해 알 준비가 되어 있어요?
-모든 것을 알 준비가 되어 있어요.
한국에 가본적이 있어요 ? 한국 친구가 있어요 ?
-한국에 가본적은 없어요. SNS를 통해 한국 친구들을 알게 되었어요.
한국 친구들이 당신의 이중적인면, 한국과 프랑스 둘 중 어느 쪽으로 더 강하게 느끼는거 같아요 ?
-그들이 우리 뿌리에 있는 매듭의 복잡성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나는 한국 역사에서 터부시되는 부분을 구성하는 시대와 연결되어 있는데, 젊은 세대는 아마도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세계 안에서 나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한국친구들에게는 어떤 호기심이 섞인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부분적으로 혹은 멀리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는 나를 소개할 좋은 구실이 될겁니다. 한국인들은 자주 내가 왜 '혼혈'인지,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하더라고요.
비록 그게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친구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너는 혼혈인데, 너의 한국인 아버지는 너에게 무엇을 물려준거야 ? 라고요..
아버지는 문화로부터 단절되었고, 그의 부모, 가족, 그의 나라로부터 외면당했어요. 저는 이런 아버지로 인해 고아였어요.
이는 나에게는 연결된 줄이 끊어지는거였어요.
이같은 연결되지 않음은 운명적으로 한국과 아버지의 유일한 연결이기도 했어요. 한국은 저의 육체적인 모습속에 있습니다.
K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어요.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아로이스의 삶이 프랑스에 있는 친구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아요 ?
-관계가 단지 클리세나 인기 현상에 그치면 그들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 팬이 됩니다. 하지만 단순하지는 않은게 고정관념은 나름의 기능을 갖고 있으며 때로는 필요할 때도 있다고 봐요.
K-팝이나 K-드라마 팬들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갖게 되는 한국의 이미지가 부분적이고, 환상에 불과하더라도 그들이 다른 문화를 흡수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저는 그들이 그것에 정말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정말 깊이 파고들다 보면 한국의 문화적 DNA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나에게 조국에 대해 가르쳐 줄 수도 있을겁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요.
모든 세대를 아우르고 있는 한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한류 열풍의 규모는 콘텐츠의 문화적 잠재력에 비례합니다. 이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다양한 문화적 장벽을 무너뜨려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한류 열풍은 유럽과 태평양을 가로질러 전 세계가 관심 갖는 소프트 파워입니다.
블록버스터와 음악이라는 미국 문화는 풍부하지만, 케이팝과 드라마의 등장으로, 미국 취향이었던 세계 대중 문화 산업이 다양해졌습니다.
한류에 대한 어떤 이들의 열정은 때때로 지나친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그곳에서 찾았을겁니다. 이로써 충분한 가치가 있는거죠.
운동 중인 아로이스
운동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13살때 부터 « 스트릿 워크아웃 »과 « 체조calisthenics »를 해왔어요
(스트리트워크아웃은 야외 공원이나 공공 시설에 존재하는 철봉 및 평행봉에서 행해지는 운동)
저는 중학교때부터 강해지고 싶어서 손으로 하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6세에 학업을 위해 니스에 가서는 이 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Outsiderz" 팀에 합류했습니다. 2019년부터 평형유지를 전문적으로 하게 되었고, 저의 SNS에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죠. 인기가 있었어요.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는건 저에게는 어떤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었어요.
운동이 나의 삶을 변화시켰듯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고독한 운동선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연습하는 장소와 소셜 네트워크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스트릿워크아웃, 거리운동"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틀에서도 벗어나는 훈련이지만 문화가 있습니다. 저는 이제 프로 운동선수가 되었고 지난 7년 동안 14개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나는 다른 대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가지고 내년에 참가할 것입니다.
한국뿌리협회가 당신의 한국적인 면모를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나요 ?
-제가 과연 한국적인 면모가 있는 걸까요? 이것은 이미 첫 번째 질문이었고 협회에서는 확실한 답은 아니어도 이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어떤 부분이었나요 ?
-중요한건 협회가 그에 대한 성찰의 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한국적인 면모라는게 중요한건데요, 한국에 대해 생각하면서 결국은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자신에 대해 생각하다가, 한국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자신이 고독하다고 생각하는 저, 아로이스는 이렇게 저의 개인적인 질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하기로 동의했습니다. 사실 가족의 역사와 문화의 일부를 빼앗긴 그(알로이스)는 높은 수준의 스포츠로 또 다른 우주를 재창조했습니다.
아로이스에게는 괴로움은 없고, 감사와 관대함,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그의 마음이 담긴 순수함이 있습니다.
<글, 사진: 나탈리 피즈, 파리광장 번역 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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