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작가,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연재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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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 세번째
본지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를 마치고,
이재형 작가의 파리 저서,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2022년 디이니셔티브 출판)를 연재합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해 주신 이재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5.
클로드 모네,
<개양귀비꽃>,
1873, 50 x 65 cm, 5층, 29번 전시실.
“내가 화가가 된 건 어쩌면 꽃을 그리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모네)
전경의 여인이 입고 있는 푸른 옷과 푸른 양산, 그리고 이제 막 비가 그쳐 더 청량해 보이는 푸르른 봄 하늘이 붉게 물든 개양귀비꽃과 한층 더 또렷하게 대비된다. 줄기가 안 보이는 개양귀비꽃들은 마치 나비처럼 긴 풀 사이를 점점이 날아다니는 듯하다. 오른쪽의 밀밭은 미풍에 물결치듯 부드럽게 흔들린다. 그림의 절반을 차지하는 하늘과 흰 구름은 그가 보불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갔을 때 본 존 콘스터블(John Constable)의 풍경화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관람객은 어느새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저 여인처럼 초원을 산책한다.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지고, 붉은 꽃이 다리를 쓰다듬는다. 아이는 이 짧은 산책을 기억하고 싶어 꽃다발을 만든다. 그 당시 유행하던 밀짚모자와 우산을 쓴 여성은 모네의 첫 번째 부인인 카미유이고 소년은 큰 아들 장(당시 여섯 살)으로 추정된다.
모네가 이제 막 익히기 시작한 인상파 화법이 밝은 색깔, 하늘, 움직이는 구름, 인물의 간략한 묘사 등을 통해 드러나 있다. 그의 터치는 색들을 병치하고 교차시켜 “움직이는 것과 순간적인 것”을 표현해내고 있다.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인 해석이나 문학적인 해석, 사회학적 해석이 필요없다. 관람객은 이 작품에 동조하며 순수한 감동을 느낀다. 바로 이것이 이 작품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보는 사람의 시선과 마음에 곧장 와 닿는 이유다.
이 <개양귀비꽃>은 모네가 서른 세살 때인 1873년에 그린 작품이며, 배경은 파리 북서쪽의 아르장퇴이유다. 아르장퇴유는 지금은 큰 도시가 되었지만 1873년에는 저렇게 개양귀비꽃이 만발한 시골이었다. 1973년은 모네가 아마도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가장 여유 있는 해였을 것이다. 아버지로에게서 받은 유산과 아내의 지참금 덕분에 1871년에 센 강 근처 아르장퇴유에 정원 있는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고, 그 다음 해에는 화상인 폴뒤랑-뤼엘이 그의 그림을 스물아홉 점이나 사주었다. 모네는 이 작은 그림을 1874년 사진작가 나다르의 아틀리에에서 열린 첫 번째 인상파 전시회에 내놓았다.
6. 에드가 드가(Edgar Degas,1834-1917), <빨래 다리는 여자들>,1886, 76 x 81.4cm, 5층, 31번 전시실.
드가는 그의 작품이 인상주의 화풍의 몇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파리에서 여덟 번 열린 인상파 전시회(1874-1886)에 일곱 번이나 참석했다. 하지만, 풍경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고 주로 경마라든가 벌거벗고 몸단장하는 여성, 오페라극장의 발레리나, 오케스트라의 음악가들, 노동하는 여성 등 현대 생활의 장면들에 관심을 가졌다.
19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프랑스 농촌에서는 농작물 생산이 빠르게 기계화되었다. 기계가 농민들을 대체하자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대도시로 이주해야만 했다. 그 결과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도시노동자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1886년 당시 프랑스의 도시 노동자수는 3백 만 명을 넘었고, 그중 3분의 1이 여성이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대부분 기계화로 인해 남성들의 힘이 덜 필요해진 화학공업과 섬유산업에 고용되었다. 그리고 옷을 마르고 짓는 여성, 피륙을 짜는 여성, 다리미질하는 여성, 빨래하는 여성 등 집이나 방에서 옷과 관련된 손일을 하는 여성들도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
이 여성 노동자들이 점점 더 많이 대도시로 몰려들면서 이들은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았고(기숙사나 가구 딸린 셋방),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위생상태가 불량해서 갖가지 질병을 앓았다. 당연히 그들의 사망률은 매우 높았다. 그들의 노동환경을 특징짓는 불결과 비위생은 그들을 폐결핵 같은 호흡기질병에 노출시켰다. 폐결핵이라는 병은 가히 19세기의 재앙이었고, 폐결핵에 걸린 여성은 이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여성들은 대부분 춥고 습한 지하실에서 남성보다 더 오랫동안(하루 14시간에서 15시간) 일을 하는데도 임금은 남성들에 비해 훨씬 적었다. 이들의 임금은 거의 대부분 남성들에 비해 절반 이하여서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매춘까지 해야만 했다.
드가의 <빨래 다리는 여자들>은 이 같은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가난과 알코올 중독에 찌든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에밀 졸라의 <목노주점>(1877)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에는 지하실에서 빨래다리는 일을 하는 두 여성이 등장한다.
오른쪽 여성은 고개를 숙이고 등을 구부린 채 두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다리미를 누르고 있다. 아마 그녀의 이마와 목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서는 그녀를 짓누르는 노동의 힘이 그대로 느껴진다. 또 다른 여성은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고 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거의 다 마신 술병 주둥이를 꽉 붙잡고 있다. 그녀는 어떤 술을 마셨을까? 색깔이 붉은색인 걸로 보아 포도주인 것 같지만, 우리는 그녀가 압생트를 마셨다고 상상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압생트는 도수가 무려 68도에서 72도에 달하는 독주지만 값이 포도주보다 싸서 1870년대에는 프랑스인의 90퍼센트가 마실 만큼 인기 있는 술이었던 것이다. 아마 혹사당하며 저임금에 착취당하던 이 여성 노동자도 힘들었던 하루를 이 술로 달랬을 것이다. 어쩌면 몸을 팔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는 압생트를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뇌가 망가져 일찍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을지도 모른다. 반고흐처럼 말이다.
드가의 <압셍트>
드가가 그린 <압셍트>를 보라. 여기서 드가는 17세기와 18세기 플랑드르 회화의 전통적인 주제였던 카페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즐거운 축제 분위기가 아니라 압생트에 취한 두 등장인물의 고독하고 우둔한 표정을 본다. 이들은 술잔을 앞에 놓고 눈길조차 교환하지 않은 채 침묵 속에 앉아 있다. 이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이들은 무기력하다. 이들에게 카페는 이제 더 이상 다양한 인간 체험의 장소가 아닌 것이다. 옆에 누가 있지만, 이들 각자는 혼자이며 자기가 혼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보라, 이들의 눈빛은 광채를 잃어버렸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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