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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자연사 박물관, 국립 보존 연구소의 김민중 복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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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 대모, 박병선 박사 영향으로 공학에서 문화재 복원으로 진로 변경


김민중 복원가를 안 것은 몇 년 전이었다. 듣기로는 복원학은 예술 뿐만 아니라, 물리, 화학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공부할 양도 많고, 힘든 학업이라고 한다. 당시 그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어렵다는 복원학,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는 그가 궁금했다.

그동안 시간이 흘렀고, 지금은 파리 자연사 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그를 이제서야 인터뷰할 수 있었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내뱉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울림이 컸다. 고 박병선 박사와의 인연, 그리고 얼마전 막을 내린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직지 전시 등,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복원가, 김민중 씨가 본 문화재와 전통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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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와 인터뷰 중인 김민중 복원가


본인 소개부터 해 주세요

-저는 김민중 문화재 보존 복원가(36) 라고 합니다. 현재 자연사 박물관에서 국립 보존 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있습니다. 프랑스로 조기 유학을 와서 중학교부터 다녔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대학원까지 파리에서 모두 졸업하고 현재 한지 관련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어떻게 복원학을 하게 되셨어요 ?

-전 공학도였어요. 그런데 진로를 변경하게 된게 박병선 박사님을 만나고 나서였어요. 공학을 했는데, 이 공부가 저와 안 맞았어요. 그때 방황을 좀 하다가 박병선 박사님을 아르바이트로 만나게 되었어요. 외규장각 관련하여 집필하셨던 과정에서 박사님을 만나게 되었죠. 저는 박사님 밑에서 불어로 쓰여진 수필을 해독하고 번역하는 작업을 주로 했어요. 그렇게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다가 나중에는 대사관에 있던 직지 문화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했어요.


복원가님에게 박병선 박사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

-박사님은 제 인생을 바꾼 사람이죠. 박사님의 모든 작업에 함께 했었고 여러가지를 배웠어요. 박사님은 매우 다정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굉장히 날카로우신 분이었어요. 그리고 박사님은 연구의 집념이 대단했어요. 저는 당시 박사님께서 어려운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구하는 모습을 항상 봐왔었죠. 일화가 하나 있어요 : 박사님에게 암 진단이 내려졌어요. 의사가 암 전이가 너무 커져서 이제 얼마 살지 못한다고 한거에요. 그때 박사님께서 의사에게 제발 1년만이라도 시간을 달라고 하셨어요. 본인에게 1년이라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모든 것을 집필하고 가겠다고 하신거에요. 그래야지 당신의 일을 다 끝마치고 갈수 있다고 하신게 기억이 나네요. 제가 그때 투병 중이셨던 박사님께 원하셨던 텍스트를 가져다 드렸던 생각이 납니다 결국 이 집필은 본인 손으로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 외규장각이나 이런게 뭘까, 무엇이길래 이렇게 필사적으로 연구를 하실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박사님을 알게 되면서 문화재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어요.


그런 영향으로 공학도에서 문화재 복원학으로 진로를 바꾸신거네요 ?

-네. 파리 1대학에서 미술품 보존 복원학(Conservation-Restauration des Biens Culturels)을 했어요. 그리고 복원학으로는 또 다른 양대산맥에 있는 학교로INP(Institut National du Patrimoine)가 있는데요, 이 두 학교가 파리에서 문화재 보존 복원 부분으로 유명합니다. 


복원학 공부가 쉽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어떠셨어요 ?

-복원 공부하는게 쉽지는 않죠. 왜냐하면 다방면으로 알아야돼요. 예술사뿐만 아니라, 물리, 화학, 광물학, 미생물학, 곤충학까지 해야해요. 그리고 실기도 중요해요. 


복원학은 몇 년 과정이에요?

-5년 과정인데, 2학년으로 편입해서 4년 동안 공부했어요.


어떠한 계기로 복원에서 한지를 만나게 되었나요 ?

-박사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저는 다시 방황했어요. 돌아가시고 나서 제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저는 복원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중에 일본 전통 종이 화지를 복원종이로 사용한 것을 알았어요. 저는 그때 박사님과 대화했던 한지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생각이 났고 이 종이를 통해 한동안 잊고 있었던 박사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하루는 제가 학교에 한지를 소개하고자 제가 찾은 한지를 가지고 갔어요 동료들과 교수님이 이 종이를 보더니 이 멋진 화지는 어디서 가져왔어? 라고 저에게 물었어요. 저는 이 종이는 화지가 아닌 한지라고 강조했지만 어느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지를 알리는데 오기가 났어요.  


학교 마치고 바로 취직이 되신거에요 ?

-네, 바로 루브르 박물관과 연이 닿아서 그쪽에서 처음에는 인턴으로 일하다가 유급 인턴으로 전환되어 일했어요. 자리가 많지 않아서 경쟁이 심했는데, 운 좋게 들어가게 되었어요.


루브르 박물관에서 하신 일은 어떤거였나요 ?

-저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복원에 쓰이는 모든 종류의 종이들을 정리하고, 복원할 문화재를 확인하고 복원작업에 투입되기 적합한 종이를 선별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서양 문화재 복원에 사용하는 한지 연구

그럼 복원학에서 종이는 어떤건가요?

-서양의 문화재를 복원하는데 한지를 사용합니다. 이 종이는 영구성이 우수하고 유연하고 가벼우며 젖어있는 상태에서도 질기며 단단합니다. 서양 복원에서 필요한 모든 조건이 충족되는 종이입니다. 아직 초기 단계긴 하지만 이미 프랑스 국보급 문화재 중에 한지로 복원된게 많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복원으로 일본전통종이 (화지)를 많이 써왔어요, 화지와 한지가 많은 부분 비슷하지만 한지가 일본 종이에서는 없는 특성들이 있어요. 그게 치수안정성입니다. 이 종이는 치수안정성이 복원에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치수 안정성은 종이를 만드는 초지 공정으로 이해가 됩니다. 현재는, 둘 중에 뭐가 좋다 나쁘다가 아닌 복원품마다 어떤 문화재는 한지만을 쓰기도 하고 또 어떤 문화재는 화지와 한지를 함께 병행하며 사용하기도 하고 있어요. 

한지로 복원하는 기술들을 만들어야지 한지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겠죠. 저는 복원 응용에 쓰일 종이와 이 종이로 문화재를 보존 복원할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가 문화재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한데, 남의 나라에서 가져온 것도 잘 보존하고 지킬려고 하는 그런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 프랑스에서 박물관에서 일하는 데에 혹시 한국인으로서 힘든 적은 없었는지요?

- 저는 루브르 박물관이 제 3대 박물관이라는 부분이라는 표면적인 부분 때문에 입사했던 것 보다는 전세계 문화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곳이니 이곳에 보란듯이 한지로 복원을 성공해서 알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2017년 중순에 성공했어요. 그게 막시밀리앙 2세 책상 복원이었죠. 주위 사람들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하기 전에 사람들이 거기 가면 어렵지 않겠느냐, 어려울 수 있다고 이야기는 했어요. 그쪽은 정말 보수의 집결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가보니 제가 생각했던 분위기와는 매우 달랐습니다. 루브르 쪽에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은 빠르게 인정하고 존중하고 낮은 자세로 배우려고 해요. 저에게 루브르 박물관은 오히려 따뜻한 곳이었어요. 지금도 루브르 복원팀과 학예팀과 좋은 관계로 복원에 쓰이는 재료(한지)선별 과정에 참여하고 있어요. 오히려 어려움은 기존 납품 업체와의 관계에서 있었어요. 어떤 유명 매체에서 이 복원종이 시장의 규모가 4조원이라고 추측하고 있으며 한국 산업에서 전통한지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큰 시장규모입니다. 다른 나라 납품업체와의 신경전이 불편하게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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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로 복원 작업 중인 김민중 복원가 


사실 전통종이는 프랑스 포함해서 유럽전체에서 사라진 상황이에요. 서양에서는 공업화가 일찍 시작되었고,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까 전통 종이가 사라졌어요. 그 전통을 복원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는 있는데 한번 사라진 전통은 다시 복원하기 어렵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는 공업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좀 늦었잖아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잘 보존되어 온거라고 저는 봐요. 루브르에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게 한국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에서 잘 보존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어요. 우리는 못했으니 당신들은 꼭 보존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이분들은 문화 자체를 전세계의 것으로 보고, 남의 문화도 본인의 문화처럼 지켜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조건에서 서양 문화재 복원에 한지를 사용하는게 저에게는 굉장히 뿌듯한 일이에요. 


루브르 박물관에 한지가 있는거군요.

-네. 한지를 보호하기위해 « 미래에서 온 종이 » 라는 서울시 산하 사단법인을 창립했어요. 이 곳을 통해 학술회를 진행하고 또 루브르 박물관 관계자들을 한국으로 초청을 해서 한지장들과 작업실을 소개했어요. 한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고 그것을 국내 업체를 통해 정식 구매하고 루브르에서 복원 전에 분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지가 루브르 문화재 복원에 맞을까 싶었는데 조금씩 한지를 한번 사용해 봤는데 매우 잘 맞았어요. 그렇게 한지가 이쪽 문화재 복원에 사용하게 되었죠. 


이번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있었던 직지 전시도 보셨겠네요. 어떠셨어요 ?

-박병선 박사님 생각이 많이 났죠. 직지는 박병선 박사님께서 재발견하신거죠. 직지의 첫번째 전시는 1900년도 만국박람회 한국관에서였어요. 박사님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인 1972년에 직지의 존재에 대해 몰랐던 한국인들에게 이 책을 알렸다는게 박사님의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에 진행된 전시를 보면서, 박병선 박사님은 구텐베르그 이전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최고 금속활자본으로 직지가 소개되었다는 것만으로 굉장히 기뻐하실 것 같았어요. 이건 또한 제 바람이기도 했어요. 


복원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한마디해 줄 수 있다면요?

-복원에 한지, 그리고 더 나아가 전통 재료에 좀 더 생각해 주었으면 해요. 누구도 국수주의적일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본인의 전통 문화를 스스로 낮출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당당해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전통 재료는 누군가 계속 사용해 주어야 합니다. 한지를 계속 사용하면 한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전통은 어느 누구도 지켜주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 지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하루 빨리 한지가 스스로 지켜지고 전세계에서 사랑받기 위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

-일본종이를 사용하다가 현재는 한지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뜻은 반대로 말하면 충분히 일본 종이 복원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따라서 한지로만 복원할 수 있는 복원 테크닉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복원 종이 시장을 넓힐 수 있고 더 나아가 복원용 전통종이 생산과 더불어 이 전통재료를 지킬 수 있습니다. 저는 따라서 한지와 복원에서의 이 한지의 응용법을 좀 더 연구하고, 한국과 프랑스와의 교류 쪽으로 애써보려고 합니다. 한지 관련 컨퍼런스를 위해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컨퍼런스에는 지금까지 복원된 문화재 복원에 한지가 사용된 케이스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관심과 프랑스 한인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김민중 복원가는 현재 디지털화 된 것들도 종이라는 전통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면서, 인공 지능 시대에 전통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전통과 현대의 디지털화가 함께 공존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디지털도 결국은 전통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피력했다. 


<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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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바캉스님의 댓글

  • 바캉스
  • 작성일
좋은 인터뷰네요...대학생시절 과천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품 복원실 견학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평생 잊혀지지 않는 인상깊은 기억 중 하나인데, 이 인터뷰를 보니 그 당시가 생각나네요. 당시 한국에서 미술품 복원은 굉장히 희귀한 분야로 제대로 공부한 전문가분 찾는것도 굉장히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남니다.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최고관리자님의 댓글의 댓글

  • 최고관리자
  • 작성일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에 한국에는 복원가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워낙에 이 분야가 공부가 힘들다고도 들었고요. 지인이 프랑스에서 복원 공부하다가 너무 힘들어 그만두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김민중 복원가에 더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은 지금은 달라졌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