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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맘 지니의 단상> 사춘기 (1) -부모와 아이는 상호 절대적 존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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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 삶을 살다보면 누구나 그런 주제 하나쯤은 가지고 살지 않을까.  그건  나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배우자일 수도 부모님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난 두 아이의 사춘기가 내 인생의 가장 드라마틱한 소잿거리였다. 엄마 생활 만 21. 분명 내가 딸이었는데 어느 순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엄마가 되어있었다. 이리 삐걱 저리 삐걱, 내게 가장 큰 매뉴얼은 지난 세기 속에 위치된 나자신의 무의식적 환경. 하지만 아이는 나와 아빠의 유전자가 섞여있고 그 조합과 환경은 또 다른 금세기 아이인지라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수 권의 육아 교육서적을 읽었고 강의도 많이 들었지만, 이론은 이론이요, 현실은 현실이라 늘 잔소리 짜증 대마왕의 모습으로 두 딸을 키워왔다. 내 입장에서는 분명 사랑이고 훈육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공포와 불안함이었음을 두 아이의 혹독한 사춘기를 겪고 나서야 이제 깨닫고 스물 넘은 아이 둘 육아를 처음부터 다시 하고 있는 중이다.

내 기준의 사랑이란, 사회속에서 반듯한 예의나 성적 내지 도리 같은 사회나 문화가 만들어  객관적 기준과 가치에 맞는 아이로 키우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어른인 나도 일관성있게 지키기 힘들 수도 있는데 늘 나보다는 더 괜찮은 아이를 키워내고 싶어 아이만을 온전히 사랑하는 건 늘 뒷전에서 소외되고 있었다. 어쩜 인성교육마저 주입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니 "그러면 안돼. 네가 잘못 했으니 그렇지."라는 말이 먼저였지 "너도 속상했겠구나. 우리 같이 고민해 보자."라는 말은 이해 과정에서 빠진 채 모범답안만 주고 대처 능력이 미숙한 아이를 실력 부족으로 몰아세운듯하다. 아이입장에서는 우리 엄마는 나보다 사회적 기준을 더 사랑한다는 오해가 생긴 나머지 힘들어도 엄마마저 냉혹한 현실로 느껴져  맘둘 곳 없는 아이들은 곪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힘들 때 온전히 나를 맡기고 의지할 수 있고, 용서받고 싶은 게 나의  종교적 믿음이라면  어리고 여린 아이에게는  하느님이나 부처님보다 부모가 더 큰 믿음이거늘 우리 아이들의 믿음 대상인 나는 나 스스로의 불안감에서 나오는 차가운 정답으로 아이들을 충분히 감싸주지 못했다라는 깊은 반성을 하고 있다.

샤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이다. 인간은 선택을 선고 받았지  처음부터 정해진 용도나 본질 따윈 없다.  인간의 본질적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건 실존 그 자체에서 나온다. 내 아이는 존재 자체로서 사랑받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은 용감하고 무조건이란 숭고함을 타당하게 해준다. 부모의 사랑으로 무장된 아이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무기로 힘든 세상 속에서 잘 자라날 것을 확신한다. 아이와 엄마. 엄마와 아이. 우린 서로에게 절대적 존재다.


<땡큐 맘,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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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Paris님의 댓글

  • Paris
  • 작성일
샤르트르의 실존주의....오랜만에 들으니 마치 오래전에 알던 친구처럼 반갑기까지 하네요. 실존 그 자체.....맞는 말씀입니다.

최고관리자님의 댓글

  • 최고관리자
  • 작성일
공감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