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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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13회에 걸쳐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를 연재합니다.
게재를 허락해준 이재형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콩크 : 콩크는 순례길에 있는 마을 중 가장 아름답다.
콩크의 역사는 순례길보다 오래되었다. 골족이 살던 이 심심산골에 처음으로 수도원이 세워진 것은 메로빙거 왕조(481~751) 때였다. 이 수도원은 생트 푸아의 성유골이 거듭해서 기적을 보여줌으로써 몇 백 년 동안 명성을 날리고 번영했다.
콩크에서 가장 꼼꼼히 눈여겨보아야 할 건축물은 콩크 대수도원 성당의 팀파늄이다. 팀파늄은 예술적 가치로 보나, 풍요로운 구성으로 보나, 규모로 보나(높이 6.75미터, 너비 3.62미터) 로마네스크 조각의 걸작이다. 모두 124명의 인물이 조각되어 있는데, 머리가 없어진 조각상이 하나도 없다. 대수도원 성당 앞마당에 도착한 순례자는 지면에서 3.5미터 떨어진 이 삼각면의 장면들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올려다볼 수 있다. 900년이나 지났지만 말이다.
구성은 아주 간단하다. 거대한 반원은 포개진 세 개의 칸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 글씨가 새겨진 긴 띠가 삽입되어 있다. 요컨대 이것은 글과 그림이 결합된 성경만화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문맹률이 높았으므로 최후의 심판이라는 일화를 글과 그림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조각가는 지상에서 이 조각상들을 하나하나 만든 다음 20개의 석판에 붙여 마치 거대한 퍼즐 조각을 맞추듯 팀파늄에 갖다 붙였다.
모든 조각상은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해 균형이 맞지 않을 정도로 큰(1.16미터) 그리스도 상을 중심으로 정돈되어 있으며, 모든 인물의 시선도 그리스도를 향해 있다. 그리스도의 왼쪽에는 지옥이, 오른쪽에는 천국이 있다(순례자가 볼 때는 반대다). 이 팀파늄 조각상은, 여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당시 중세의 일상생활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간통을 한 여인과 그녀의 정부는 벌거벗고 목이 한데 묶여 하루 종일 길거리를 뛰어다녀야 했다. 천국의 예루살렘을 밝히는 기름등이라든지 지옥문과 천국문에 달린 자물쇠와 열쇠, 생트 푸아가 풀어주는 죄수들의 수갑, 악마들이 자랑스레 휘두르는 무기가 다 당시 사용되던 그대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원래 이 팀파늄 조각에는 붉은색(지옥)과 푸른색(천국)이 칠해져 있었다고 하고, 지금도 그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다 지워졌지만 말이다. 아마도 이 문 앞에선 중세의 순례자들은 이 원색의 강렬한 대비를 보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했을 것이다.
자, 이 조각판은 〈마태복음〉 25장 31절과 32절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
생트 푸아 대수도원 수도사들이 이끈 이 로마네스크 조각가의 손이 이렇게 힘차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데 기여한 곳은 여기 말고는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박공의 한가운데서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이 예술가는 두 천사가 그의 머리 양쪽에서 풀고 있는 긴 띠에 새겨져 있는 글을 직접 말씀하시는 이 극적인 순간을 돌 속에 고정하려고 했던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태복음, 25:34)
그러고 나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태복음,25:41)
들어 올린 오른손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선택된 자들을 맞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콩크의 그리스도는 심판자인 동시에 군주다. 심판자와 왕을 뜻하는 JVDEX와 REX가 십자가가 새겨진 그리스도의 후광에 씌어 있는 것이 보인다. 낮춰진 왼손의 움직임은 영원한 형벌을 받을 장소를 죄 많은 자들에게 가리켜 보인다.
그리스도는 별들이 흩뿌려져 있는 타원형의 후광 위에 앉아 계신다. 자세히 보면 그리스도의 오른쪽 허리 부분의 옷이 깊이 파여 있다. 창으로 찔려 생긴 상처를 보여주려는 것이며, 아마 처음에는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위쪽에 있는 거대한 십자가는 두 천사가 붙들고 있으며, 이 십자가의 횡목 부분에는 “주께서 심판하러 오실 때 십자가상이 하늘에 있으리라”라고 씌어 있다. 〈마태복음〉에는 “인자가 그의 모든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오시리라”(마태복음, 25:31)라고 쓰여 있다. 그리스도의 왼쪽에서 한 천사는 섬세하게 조각된 향로를 들고 있으며, 또 한 천사는 “생명의 책이 봉인되도다”라고 쓰인 책을 펼쳐 보이고 있다. 검과 창으로 무장한 두 기사 천사는 악마들과 저주받은 자들을 제지하는 임무를 부여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의 “천사들이 나와서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떼어 놓으리니”(마태복음,13:49)라는 구절이 칼을 든 천사의 방패에 새겨져 있다.
그리스도의 발밑에서는 두 천사가 촛대를 들고 있는데,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날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더 이상 빛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위쪽 양편 모서리에서는 두 천사가 상아각적을 불고 있다(“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태복음, 27:13).그리스도의 바로 오른편에서는 성모마리아가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그 뒤를 주교복을 입은 베드로 성인이 한 손에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를, 다른 손에는 목자의 홀장을 든 채 따른다. 이 두 사람의 뒤쪽에 있는 인물들은 후광이 없다. 이들은 성인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이 삼각판 조각상은 아마도 수도사들의 요구에 따라 조각가가 생트 푸아 수도원의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인물들을 새겨 넣었다는 점에서 대담하다.
T자 모양의 지팡이를 든 인물은 아마도 콩크를 세운 은자 다동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다시 네 번째의 수도원장은 다섯 번째 군주를 한 손으로 잡아끈다. 이 수도원장은 베공 3세, 군주는 샤를마뉴 왕일 것으로 짐작된다. 샤를마뉴 대제는 이 수도원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용서받아야 할 죄도 많이 지었으므로 자기 뒤의 두 인물에게 자신이 수도원에 관대한 행위를 많이 했다는 것을 증명할 성유골 같은 것이 담긴 상자를 들려 따라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스도의 왼편 아래쪽에는 탑에 톱니바퀴 모양으로 총안이 뚫려 있고 기둥과 아치가 있는 ‘천상의 예루살렘’(영원의 도시) 모양으로 천국이 표현돼 있다. 한가운데에는 아브라함이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을 안고 있으며, 그 양쪽의 아치 안에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앉아 있다(등을 들고 있는 정숙한 처녀들, 종려나무 잎을 들고 있는 순교자들, 양피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예언자들, 책을 들고 있는 사도들).괴물(뱀이나 악어, 용의 형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레비아탄)이 지옥 입구에 버티고 서서 영벌을 받은 자들을 집어삼키고 있고, 악마가 선민들을 뒤돌아보며 영벌 받은 자들을 괴물의 입속에 밀어 넣고 있다.
지옥문 오른쪽에 다른 등장인물들보다 키가 큰 인물이 있는데, 몸뚱이들이 뒤집혀 있기도 하고 엉켜 있기도 한 이 혼란스러운 세계를 지배하는 루시퍼(사탄)다.
지옥의 장면들로 말하자면, 일종의 ‘공포의 교리문답’이다. 가장 무시무시한 고문은 얼핏 풍자나 익살로 보이기도 한다. 꼭 우리 마당극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한 교활한 악마는 영혼의 무게를 다는 장면에서 저울의 판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있다. 속임수를 쓰는 것이다. 아니면, 현세의 귀족들을 조롱하는 것을 보라. 지옥에서 왕은 완전히 벌거벗겨졌지만 머리에는 왕관을 아직 쓰고 있다. 이 왕 앞에서 악마는 복종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있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조롱기가 느껴진다. 우리의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가 생각나지 않는가. 아니면, 주교는 악마가 휘두르는 낚시꾼 그물에 걸렸다. 주교의홀은 뒤집혀 있다. 또 있다. 이 지옥에서는 사냥감이 사냥꾼을 불길에 굽고 있다. 말하자면 지옥에서는 현세의 현실이 뒤집혀 있는 것이다.
이 칸에 들어 있는 인물들은 저질러서는 안 되는 죄, 즉 교만(갑옷을 입은 기사는 쇠스랑으로 공격을 받고 말에서 떨어졌다)과 사치(간통을 저지른 여인과 정부의 목이 밧줄로 묶여 있다), 나태(영벌을 받은 자가 사탄의 발밑에 누워 있다), 탐욕(한 남자가 목에 돈주머니를 건 채 교수형에 처해졌다), 중상모략(악마가 영벌을 받은 자의 혀를 뽑고 있다), 분노(악마가 목구멍에 칼이 꽂힌 채 지옥으로 떨어진 자의 뇌를 먹어치우고 있다), 허영(악마가 영벌을 받은 자의 하프를 빼앗고 집게로 그의 혀를 뽑고 있다)의 죄를 저지른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옥 장면은 그 위에도 있다. 영벌을 받아 꼬챙이에 꿰어져 구워지는 자, 두 발이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포도주를 토해 내고 있는 주정뱅이, 쇠가 녹은 걸 마셔야 하는 화폐 위조자, 낚시 그물로 생포한 나쁜 수도사…….악마들은 텁수룩한 머리와 균형이 맞지 않는 몸뚱이, 뿔, 튀어나온 눈, 찡그린 얼굴 등 괴상한 겉모습을 하고 있다. 요컨대 콩크 생트푸아 성당의 팀파늄은 천국과 지옥을 간단한 방법으로 대립시켜 최후의 심판이라는 주제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주제는 로마네스크 예술에서는 매우 드물게 등장하기 때문에 이 시대에 이 주제를 표현한 작품은 거의 없다. 콩크의 생트푸아 성당 팀파늄은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 최후의 심판 문 위에 붙어 있는 팀파늄을 연상시킨다.
■ 순례는 하강과 상승의 반복이다. 해가 뜨면 태아가 어머니 배 밖으로 나아가듯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고 해질 무렵이 되면 고단한 몸을 눕히기 위해 저 아래 마을로 내려가 다시 안온하고 평화로운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기를 되풀이한다.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우리가 어머니 태반 속에 있을 때 무의식 속에 형성된 원형적 이미지를 ‘요나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즉 우리는 어떤 공간 속에 감싸이듯이 들어 있을 때 안온함과 평화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태 회귀 본능이다.
순례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요나처럼 고래 뱃속에 갇혀 있다가 또 다른 나, 새로운 나가 되어 그곳에서 나와 더 넓은 곳으로, 더 높은 세계로 걸어 나간다. 요나는 큰 물고기에게 씹힌 것이 아니라 삼켜져서 물의 동화작용에 의해 변형되어 새로운 요나로 태어나는 것이다. 순례자도 물고기가 토해낸 요나처럼 새로운 사람이 되어 콩크 마을을 빠져나간다. 순례란 ‘새롭게 태어남’이다.
○ 콩크에서는 수도원에서 일박하며 수도원 성당에서 열리는 미사에도 참석하고 음악회도 감상해보라.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관광객이 다 떠나고 정적에 잠긴 밤의 콩크는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만큼이나 몽환적이다.
<글 사진 :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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