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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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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13회에 걸쳐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를 연재합니다. 

게재를 허락해준 이재형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생콤돌트에서 오브락, 생첼리도브락을 거쳐 골리냑까지(47.5킬로, 2일 소요)

○ 생콤돌트 시청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국민 영웅인 카스텔노 장군 가문의 기념비가 있다. 이 기념비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카스텔노 장군의 세 아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역시 전사한 두 손자와 증손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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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클레망소 국방장관이 카스텔노 장군에게 전쟁이 끝나면 뭘 할 거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전쟁이 끝나면 눈물을 흘리며 자식들의 죽음을 애도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 무척이나 힘든 오브락 지방을 지나면 나타나는 중세 마을 생콤돌트에서부터 로트 계곡의 온화함을 즐길 수 있다. 더 멀리 가면 병풍처럼 둘러처진 나무들 뒤에 보일 듯 말 듯 자리 잡은 페르스 Perse 성당은 분홍색 사암으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예술의 보석이다. 에스탱Estaing은 인구 4000여 명의 소도시다. 로마 가도가 지나가고 한때는 가구와 매트리스, 장갑 등을 생산하며 번영을 누렸지만 1926년 도청 소재지의 지위를 잃으며 쇠락하기 시작했다.

로트 강가에 자리 잡은 이 도시에는 아치가 넷 있고, 분홍색 돌로 만든 고딕 양식 다리가 있어 고풍스럽다. 생 루이 시절에 지어졌고 당시에는 두 개의 탑이 서 있었으나 지금은 부서지고 없다. 이렇게 생긴 다리를 보통 당나귀 등 다리라고 부른다. 모양이 당나귀 등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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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팔리옹에서 출발한 순례길은 로트 강가를 따라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콩크까지의 순례길 양편에는 온통 산딸기가 익어가고 있어 나그네의 허기를 달래준다.

온 국민이 허기에 시달리던 1960년대 한국의 농촌에서 자란 나와 친구들은 굶주린 배를 이 산딸기로 채우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산딸기가 익어있는 걸 보면 자연스레 손이 나가곤 한다. 주택가를 통과한 다음 찻길을 2킬로미터 정도 걷고 나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1킬로미터 가량 더 가다 보면 생피에르드 베수에줄 성당이 나타난다. 지금의 성당은 16세기에 지어졌지만, 특이하게도 생미셀 예배당만은 11세기에 건축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 2층에 있다. 이 예배당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기둥머리 조각들이다. 콩크의 생트푸아 성당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는 이 화려한 기둥머리 조각들 중에서도 반인반마의 켄타우로스 두 마리가 사이렌의 비늘 꼬리를 받치고 있는 조각이 특히 흥미롭다. 그리스의 신화 세계가 이 궁벽한 시골 마을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그리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제단에는 용을 물리치는 대천사장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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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수에줄 마을을 지나면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깎아지른 듯한 절벽도 아닌데다가 이 길을 오르고 나면 저 아래로 멋진 경치가 활짝 펼쳐지는 고원지대가 나타난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기서 맛난 점심을 먹었다. 옆에서는 독일 쾰른에서 왔다는 똥똥한 두 젊은이도 간단하게 요기를 하더니 자리를 깔고 눈을 붙였다. 이번에는 내리막길이다. 오솔길과 담배밭을 지나고 소박한 성당을 감상하며 길을 가다 보면 예쁜 돌집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집집마다 텃밭이 있어 갖가지 채소가 자라고 있다.

   평지로 내려서서 5킬로미터 정도 걷는다. 저 아래 오른쪽으로는 깊은 계곡이 내려다보이고 길가에는 온통 밤나무다. 밤나무는 아직 열매를 맺지 않았지만 그 대신 밤꽃 냄새를 진하게 풍겼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밤은 19세기까지만 해도 세벤이나 아베이롱처럼 깊은 산골 주민들의 주식이었다. 오죽하면 ‘빵나무’로 불렸을까. 심기만 하면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자라 열매를 맺는 밤나무야말로 이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15세기에 지어진 고성이 로트 강을 내려다 보는 작은 도시 에스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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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인 에스텡은 간단히 소개하면 데스탱 가문(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텡 대통령!)의 본거지다. 이곳은 또한 르퓌 길을 이용하는 순례자들과 북동쪽에서 온 순례자들이 만나는 교통 요충지이기도 했다.

   에스탱에서 골리냑까지는 14킬로미터밖에 안 되지만 중간에 꽤 높은 고개가 버티고 있어서 여간 힘든 코스가 아니다. 에스탱을 벗어나자마자 오른쪽으로 아침안개에 휩싸인 로트 강을 바라보며 4킬로미터가량을 걷는다. 왼쪽 길로 접어든다. 길이 급작스럽게 오르막을 시작한다. 숨이 차오르고 호흡이 가빠온다. 그러다 보면 육체는 고통스러워지지만 정신은 조금씩 맑아진다. 이것이 걷기의 미덕일까?

   길가에는 박하가 천지다. 아직 꽃을 피우기 전이지만 그 향은 나의 거친 숨을 쏴하게 물들인다. 가난이 곧 일용할 양식이었던 60년대의 궁벽한 시골에서 자라난 내게는 박하사탕이 유일한 주전부리였다. 그나마 그 박하사탕도 자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1년에 겨우 몇 차례, 귀한 손님이 집에 찾아올 때뿐이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마들렌 과자처럼 박하가 먼 과거를 불러온다. 고진감래! 몸을 거의 45도가량 접은 채 낑낑거리며 3킬로미터 정도를 오르다 보면 정상이 나타난다. 저 아래로 광활한 풍경이 펼쳐진다. 인간의 삶도 이런 식일까? 과연 고생 끝에 낙이 올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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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다가 총을 들고 사냥개를 대동한 사냥꾼 일가족을 만났다. “무얼 잡으러 가세요?” “토끼나 참새 같은 조류…….” “늑대는 안 잡나요?” 그가 피식 웃는다. 숲길이 시작된다. 숲은 깊고 어둡다. 너무 깊어 햇살조차 닿지 않는 숲이 죽음과도 같은 장엄한 침묵에 잠겨있다. 문득 원초적인 공포가 순례자를 사로잡는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가 파하자마자 책가방을 내던져 놓고 들로 산으로 쏘다니곤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 보면 문득 어둠이 쏜살같이 내려온다. 그때의 섬뜩한 공포! 멀리 굴뚝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우리 동네가 나타나면 그 공포는 안도감으로 바뀌곤 했다. 그때처럼 그렇게 길고 길게 이어지던 숲이 끝나자 골리냑 마을이 나타난다.

   골리냑 마을 초입에서는 지팡이를 든 순례자의 모습이 새겨진 아름다운 돌 십자가가 순례자를 맞는다. 이 십자가는 중세의 순례자들이 이 마을을 지나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우리는 지난 1200년 동안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갔던 수많은 순례자의 발걸음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다. 그들은 돈도 거의 없이 옷 몇 벌만 들고 말도 통하지 않는 멀고 먼 그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성당을 향해 몇 달 동안 걸어갔다. 그런 다음 자신이 갈 때 남긴 흔적을 다시 하나하나 발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그들의 눈은 영롱하게 반짝이는 별로 가득했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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