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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르퓌 산티아고 순례길 연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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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13회에 걸쳐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 순례길 저서 <프랑스를 걷다>를 연재합니다. 

게재를 허락해준 이재형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소바주(Sauvage)에서 생탈방쉬르리마뇰(Saint-Alban-sur-lImagnole), 

오몽오브락(Aumont-Aubrac)을 거쳐 오브락(Aubrac)까지(56킬로, 2일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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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탈방쉬르리마뇰은 제법 큰 마을로, 순례자들 대부분이 무심하게 지나치지만 사실 이곳에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수아 토켈(François Tosquelles) 정신병원이 있다. 1912년에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난 토켈은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주의자들이 패하자 프랑코 체제의 위협을 받아 프랑스로 망명, 1940년부터 생탈방쉬르리마뇰 정신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며 굳게 닫혀 있던 정신병원의 문을 활짝 열고 환자들을 들판으로 보내어 농사일을 돕도록 했고, 농민들은 그들의 임금을 감자라든가 양배추 등의 식료품으로 지급했다. 그래서 환자들은 자유롭게 마을에 갈 수 있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병원에서는 마을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했고, 마을 사람들도 병원 일을 도왔다. 그 뒤로 20여 년 동안 토켈은 환자들이 마을에서 열리는 카니발과 축제 등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자유롭게 참여하여 지역사회에 더 잘 동화되도록 함으로써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를 크게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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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화된 사회치료의 요람인 토켈 정신병원은 아웃사이더 아트(art brut)로도 유명하다. 이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그린 그림을 차곡차곡 모아 두었고, 그것을 본 장 뒤뷔페라든가 폴 엘뤼아르, 레몽 크노 등은 관심을 가졌다. 1943년 이 병원에 머물렀던 엘뤼아르는 이 그림들을 보고 파리로 가져왔는데, 오늘날 이 작품들은 아웃사이더 예술의 걸작으로 인정받아 전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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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병원은 또한 1943년부터 토켈과 보나페가 주도하는 비밀 레지스탕스 운동의 본거지였다.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해 있는 동안 이 병원의 수녀들과 의사들, 직원들, 환자들은 부상당한 레지스탕스와 폴 엘뤼아르를 비롯한 망명자들을 맞아들이고 숨겨주고 치료해주었다. 생탈방쉬르리마뇰은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고립되어 있어서 독일군이나 프랑코 지지자들을 피해 도망쳐 온 수많은 레지스탕스 운동가들과 지식인들, 의사들, 예술가들이 몸을 숨기기에 좋았다

 

 □ 제보당의 괴물

 1764년에서 1767년까지 3년 동안 오베르뉴 남쪽의 제보당(Gévaudan) 지역에서만 무려 104건의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상처를 보니 무엇인가에 물린 자국이 나 있었고 목이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이 보통 살인 사건이 아니었다. 즉 인간이 아니라 늑대, 혹은 늑대보다 더 크고 사나운 야수에 의해 저질러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피해 규모가 계속 커졌지만 지방의 영주들은 무능했으므로 농민들은 루이 15세에게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청원해야만 했다.

 대규모 수색에도 불구하고 그때부터 양을 치는 어린 소녀들에 대한 공격이 계속 증가하면서 집단적 공포가 목축을 하는 이 지역 주민들을 사로잡았다. 그 뒤로 이 정체 모를 짐승에게는 ‘제보당의 야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짐승은 머리가 엄청나게 크고, 허리 부위는 불그스레한 색깔을 띠고 있고, 등에 긴 검은색 띠가 있고, 꼬리에는 털이 무성하고, 다리도 굵고 발톱도 크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 지역 주민들은 물론 나라 전체가 동요하자 용기병 부대를 현지에 파견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희생자는 오히려 더 늘어났고, 무엇으로도 이 야수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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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르퓌 순례길이 통과하는 제보당 지역 주민들을 공포에 빠트렸던 〈제보당의 괴물상〉. 오몽오브락 시내 한가운데 서 있다.


결국 장 샤스텔이라는 농부가 늑대 혹은 큰 들개로 판명된 동물을 죽인 1767 6월 말에야 이 사건은 막을 내렸다.

 길이 8미터의 소나무를 전기톱으로 조각해 만든 거대한 제보당괴물이 위협적인 표정으로 르퓌순례길이 통과하는 소그를 내려다보며 서 있고, 오몽오브락 시내 한가운데에도 쇠로 만든 이 괴물 상이 버티고 서 있다. 오몽오브락 남쪽의 마르브졸이라는 도시에도 역시 쇠로 만든 짐승의 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또 소그 서쪽으로 17킬로미터 떨어진 오베르라는 마을에 있는 ‘괴물의 집’이라는 박물관 앞에는 마리잔 발레라는 어린 소녀가 제보당의 괴물이 달려들자 겁먹지 않고 오히려 창으로 괴물을 창으로 찌르는  청동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또 소그에도 ‘제보당의 괴물’ 박물관이 있어서 이 지역 주민들이 이 괴물에 대한 집단 공포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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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베르뉴의 음식, 알리고와 트리푸

 순례자는 오베르뉴 지방의 오몽오브락에서 나즈비나스  사이에 있는 숙소 중 한 곳에서 거의 확실히 알리고라는 음식을 먹게 될 것이다. 알리고가 고산지대여서 소를 많이 키우는 오베르뉴를 상징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르퓌 길 순례를 할 때 숙소에서도 먹어보고 식당에서도 여러 번 먹어본 적이 있는데, 정말 속이 든든해진다. 알리고는 으깬 감자랑 치즈, 크림, 버터, 마늘을 넣어 만든다. 포크로 푹 찔러 넣은 다음 위로 죽 잡아 늘이면 성인의 키보다 더 높이 올라올 정도로 탄력이 강해서, 숙소나 식당 주인들이 일부러 보여주기도 한다.

 르퓌 순례길이 지나가는 오베르뉴 지방은 4월에도 눈이 올 정도로 날이 추우므로 걷다보면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양파수프로 속을 든든히 채우면 좋다. 양파수프는 대부분 스타터로 먹지만, 위가 작은 나는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지역에 따라 조리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양파와 버터, 식용유, 빵 조각, 치즈, 소금, 후추는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는 양파수프 값이 10유로가 넘어가지만, 예전에 추운 날 르퓌 길 순례를 할 때는 이름 없는 시골 식당에서 1유로에 먹어본 적도 있다. 내가 후다닥 먹어치우고 식당 주인을 무심결에 쳐다봤더니 한 그릇 더 가져다준 적도 있다. 프랑스에서도 아직 시골 인심은 넘쳐난다.

 트리푸(tripoux) 역시 오베르뉴 지방의 전통 요리다. 송아지의 창자를 잘게 잘라 양의 위 속에 쑤셔 넣고 끈으로 잘 묶은 다음 서너 시간 익힌다(계속됩니다)

 

<글 사진 이재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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