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맘 지니의 단상> 친구가 떠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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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 , 생전 떨지 않던 부산을 떨었다.
냥집사의 표시인 니트에 묻은 고양이 털도 떼어내고, 하지도 않던 화장도 했지만
간만에 하게 된 화장 탓인지 마음 탓인지 얼굴은 화사하긴 커녕 더 어두워 보였고,
매일 입던 니트는 그날따라 유난히 더 초라해 보였다.
우울하고 슬프다기보다는 이상 야릇한 낯선 감정들에 대처하느라,
나의 교감신경은 계속 흥분되어 있었고, 손은 하루종일 떨렸다.
슬픔으로도 사람의 감정이 이렇게 격앙될 수도 있는건가 싶었다.
30년지기 친구가 서울 호스피스 병동에서 대구 장례식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4년 간의 암투병 끝에 결국 떠났다.
80년대의 마지막 해 3월, 촌스럽지만 순수했던 대학교 1학년, 대학 입시를 끝내고 첫 자유를 맞이하며
수많은 만남에 대한 설레임 속에서 처음 마주친 인연. 우리는 이름도 똑 같았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던지 말장난에 귀가시간도 잊었고, 공강시간에는 대학교 잔디 밭에 앉아 노래도 부르고
사랑 이야기도 하면서, 가끔은 서로를 타박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서로 즐거웠던 친구.
카톡도 문자도 없던 시절, 도서관 자리를 잡아놓고 연락이 안될 때는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던 내 친구가 이제는 떠나버렸다.
장례식장에는 그 시절 몇몇 친구들이 모였다.
가버린 친구를 이야기하다가 회오리 바람에 휩쓸린 듯이 우리는 시간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의 기점은 대학교 1학년,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현실의 냉정함마저 눈멀게 했던 가슴 벅찼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
가버린 친구가 옆자리에 앉아있는듯, 그녀와의 이별은 송두리채 잊은 채,
그 날의 슬픔은 어느 순간 회상과 추억의 즐거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친구와의 이별이 그동안 못만났던 친구들과의 추억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기쁨이 되어
울다 웃다 하게 되는 역설적 감정의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다.
다들 이제 자주 만나자라는 클리셰 같은 인사 말을 남기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가버린 친구에게는 남편도 아이도 없었다.
부모님과 언니 한 분 그리고 먼저 가버린 여동생이 친구의 가족이 전부였다.
떠나기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생명의 줄이 붙어 있는 한 삶의 가치를 다하겠다고
일주일에 두어번 학원 강사 역할까지 해냈었다.
발인 후 며칠 뒤였다. 먼 지역에 계시는 신부님 한 분이 친구가 다니는 성당에 찾아오셔서 친구가 떠나기 전 몇달 동안,
그쪽 성당에 상당한 금액의 기부를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다.
아마 언제부터인가 친구는 자기가 가야 할 천국의 계단을 미리 오르고 있었던 같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고개를 들던 대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얼마나 소중한 만남으로 이어왔던가.
값진 인생으로 마침표 찍고자 노력한 친구의 의미 또한 소중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인생 모자이크의 한조각을 잃어버린 허전함에 잠시 '판단중지(epoche)' 가 일어났다.
잃고 난 자리에 오롯이 남아 선명하고 밝게 빛나는 것들.
만남이 소중한 건 언젠가 헤어져야 하기에, 그리고 우리 삶이 소중한 이유 또한 언젠가 떠나가게 됨을
알기에 삶과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다.
친구를 보내고 난 후, 이 시점에서 나의 무의식적 소중함들을 하나하나씩 불러모아본다.
예쁘고 탐나는 것들에 대한 갈망보다는 지금 내게 있는 것들에 감사하고 사랑해 가길.
모나고 틀린 것들을 바로 잡으려 다투고 살아가기 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삶이 우선시 되길.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미소로 대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길.
친구가 내게 주고 간 마지막 목소리와 미소가 맘을 스치고 지나간다.
<땡큐 맘,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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