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맘, 지니의 단상> 자식들이 내 품을 떠나기 시작할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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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둘째 아이가 외쳤다. "엄마 , 나 자전거 배우고 싶어!"라고… 나의 어린 시절, 자전거를 제법 탔던 기억은 있지만 아이에게 어떻게 가르쳐줘야할지 방법도 모르겠고 막막하기만 했다. 일단 자전거라는 도구를 마련했고, 놀이터로 나가 첫 연습에 비틀거리는 아이를 위해 갖은 힘으로 뒤에서 잡아줬다. '엄마는 그렇게 잡아주면 어떡해' , '너가 그렇게 타니 자꾸 넘어지지' ,자전거를 가르치는건지 모녀간에 다투는 건지… 잡아주는 나도 힘들었지만, 혼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아이도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결국 아이는 수 번의 엉덩방아를 찧었고 여러 번 넘어져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달래면서, 다시 아이의 뒤를 잡아줘야만 했다. 어느 순간 제법 타기 시작했다. 살짝 손을 놓아도 봤다. 혼자서 곧 잘 탔다. 아이는 신났다. 이제 엄마는 여기서 기다리라하고 혼자서 놀이터 몇 바퀴 돌고 오겠다 한다. 아이는 이제 자전거타기의 즐거움에 몰입된 것 같았다. 아주 가끔씩 엄마가 제자리에 있는 지 확인만 했다. 나는 놀이터에서 우두커니 서서 계속 아이만 주시했다.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니 뿌듯하기도 했고, 다치지 말았으면 하는 걱정과 함께 묘한 공허함이 겹친다.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의 강한 가르침으로 암기한 숙어가 생각났다.
"look after , take care of, 돌보다, 보살피다 "
결국 아이가 혼자 자전거타기를 위해 난 끊임없이 아이의 뒤에서 보살핌의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3월이다. 그렇게 보살피던 딸들이 둘 다 입학과 학원을 위해서 내 곁을 떠난다. 약간의 서운함과 사랑이 비워지는 시간들에 대한 두려움 탓인지 " 빈둥지 증후군"을 앞당겨 걱정도 해보지만, 떠나가는 아이들을 보니 그래도 많이 키웠나보다라는 생각도 든다.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 '성장과 독립'이라는 길고도 힘든 과정을 겪어내야 했기에, 엄마인 나로서는 고스란히 그 몫을 함께 해야만 했다. 때로는 힘겨운 아이를 달래며 키웠고, 때로는 아이만큼 힘겨웠던 내 속의 아이도 달래가면서, 우리는 함께 성장해온 것 같다. 며칠 전, 지난 해 고3 을 지내면서 세번이나 병원 입원을 하며 내 사랑을 확인시켜준 둘째가 미안한듯 내게 물었다.
"엄마는 다음 세상에도 애기 낳을꺼야?" 힘들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당연히 '네버' 라고 손사래를 치고 싶었지만 난 흔쾌히 "응"이라고 대답했다. 아이 덕분에 내 어머니의 소중한 희생과 아픔을 알게 되었고, 모나고 각진 삼각 관계의 사랑이 아니라 수직적 일직선 상에 놓인 무한한 사랑을 또한 알게 되었다. 나 또한 엄마이자 동시에 자식이라는 중간자적 입장에서 아이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느껴질 때는 어릴 적 나를 불러보았고, 엄마로서 힘들 때는 기억 속 엄마에게 진심 죄송해졌다. 타인의 입장을 알고 이해해 보려한다는 건 깨달음이었고, 그 깨달음은 삶에 대한 태도를 겸허하게 해주었다.
이제 두 딸들은 자전거를 타고 약간의 자신감과 함께 놀이터 바깥으로 나간다. 내 시야에서 벗어난다. 나는 이제 집에 들어와 언젠가 안전하게 돌아올 아이들을 믿고 기다리며 마냥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던 시선을 돌려본다. 내가 아이들을 바라본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한결같이 멀찌감치에서 나의 뒤를 지켜보고 계시는 나의 엄마 쪽으로 돌려본다.
<땡큐 맘, 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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