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작가 소개 XII> 디스토피아(This-Topia), 지금 여기에서 유토피아를 찾다, 사진작가 임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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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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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topia’의 This는 영어로 거리와 심리상 ‘가까이에 있는 것’, 시간성을 말할 때 ‘지금’, ’현재’를 말 하기도 하며 장소를 말 할때 ‘이곳’ ‘여기’를 말 할 수 있는 대명사다. 그리스어로 ‘장소’를 뜻하는 Topia 를 합하여 만든 제목이다. - 임정현 –
사진작가 임정현은 서울예술대학교와 파리 뱅센느 - 8대학 조형예술학부에서 사진을 전공, 현재 파리에서 활동 중이다. 디스토피아(This-Topia)는 작가 고유의 개념으로, 임정현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파리, 그리고 그 근교의 공사장에 천착하는 그가 추구하는 것은 ‘유토피아’이다. 유토피아는 인간이 꿈꾸는 이상 세계이지만, 그리스어의 ‘ou(없다)’와 ‘topos(장소)’를 조합한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을 가진다. 현존을 뜻하는 지시대명사 ‘this’를 붙여,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지금, 여기’로 소환하는 그의 의도는 분명하다. 세계 거의 모든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공사장, 그곳은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모순적인 장소이다. 실제로 그곳에 있으나 아직까지 사용되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 그리고 그곳이 목적과 용도에 맞는 이상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임정현의 사진은 회화의 구성 요소들 즉, 이차원의 평면에 구현된 선, 면, 색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삼차원의 세계에 실재하는 대상으로부터 선, 면, 원, 사각형 등의 기하학적 요소들을 찾아내 평면으로 되돌리는 환원적 작업은 추상회화를 낳은 현대 회화의 출발이고, 가시적 세계에서 비가시적 요소를 찾아 드러내는 조형실험이었다. 임정현의 작업은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공사장이라는 모순적인 장소, 건축물이라는 현존하는 대상에서 직선, 직선들이 만들어내는 면, 빛과 색이라는 추상적 요소들의 완벽한 조화가 있는 이상세계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지난 12월 2일 토요일 개막한 개인전 ‘디스토피아’ 전시장에서 임정현 작가를 직접 만나, 작업세계와 전시,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어떤 계기로 사진을 공부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사진을 접한 시기부터, 사진작가가 되기까지 과정을 알려주세요.
- 고등학교 2학년 중반에 우연히 동네에 있는 사진학원을 발견하고 사진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다른 친구들도 그렇듯이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던 때였는데, 스포츠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스포츠 사진 전문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진 학원에 들어가게 됐어요. 아무래도 당시 우리나라에선 사진이 예술이라기보다는 기술로 인식이 되던 때였기 때문에, 저도 당연히 사진학원에 가면 사진기술을 배우게 되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상담을 받은 것을 계기로 사진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죠. 그런데 제 생각과는 다르게 사진은 기술의 발전으로 만들어진 예술분야였던 거에요. 엄연히150년 넘게 이어져온 예술의 한 분야였던 거죠. 학원에서 1년 반 동안 공부를 한 후에 서울예술대학교 사진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더 자유스럽게 사진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서울예대 사진과 1학년을 마친 후에 군입대를 하게 되었고 전역 후 2008학년 복학 전 2007년에 파리와 런던으로 각각 일주일간 처음으로 혼자 유럽여행을 떠나게 되었어요. 그때 받은 강렬한 끌림으로 복학 후에 프랑스에서 공부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구요.
2010년에 파리 8대학의 조형예술학부에서 학사를 1학년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한국에서 공부할 때보다는 확실히 다양하고 깊이 있는 수업들이 많아서, 한국에서는 사진이라는 하나의 분야만 공부를 했다면, 파리8대학에선 예술이라는 분야를 장르별, 시대별, 작가별로 꼼꼼하게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스스로는 아직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작가를 어떻게 정의 할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이제 제 작업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한 단계라서요. 사실 아직 더 공부를 하고 싶어요. 욕심 같아서는 ‘학생 프리패스’라도 받아서 아무 학교나 들어가서 수업을 듣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도 아직 공부할 것이 많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작가라는 말이 저는 아직까진 좀 어색하네요.
‘공사장’을 주요 소재로 삼은 것이 흥미로워요.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공사장 사진을 찍기 시작했나요?
- 예전에 한국에서는 ‘공중전화기’ 시리즈와 서울의 ‘한강 야외 수영장’ 시리즈를 찍었어요. 둘다 도시라는 공간에 있는 오브제와 장소에 대한 사진이었죠. 저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도시가 변화하는 것을 직접 지켜보았어요. 게다가 제가 살던 강남은 당시 재개발이 한창이었던 때라, 유년시절을 보낸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정말 끊임없이 건물이 사라지고 올라가고를 반복했어요. 항상 공사장이 주변에 있는 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적에는 그냥 신기하게 생각하며 지나치곤 했어요. 그 후에 파리에 와서 석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저의 개인작업을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어요. 파리는1800년 후반의 도시개발, 2차 대전 후 재건을 거쳐서 현재는 보수와 개발을 새롭게 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생태도시와 새로운 지하철 노선, 노후 지역 재개발 등, 많은 곳에서 공사중인 건물과 땅을 발견할 수 있죠. 공사장 작업을 시작하기전에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 라는 책을 읽게 되었어요. 거기에서 말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 라는 유토피아의 의미가 지금 현재의 제가 보는 공사장을 지칭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 서울에서 봤던 공사장도 그 당시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꿈꾸며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던 장소잖아요? 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사람이 만들어내고 사람이 변형시키고 심지어 사라지게 하는, 자연과는 달리 모든 것이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곳이니까요. 공사장도 일정시간동안 존재하다가 그 후에는 사라지는 일시적인 장소구요.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는 사실 당시의 시대를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책인데 오히려 이상도시에 대한 교본과 같이 된 책이기도 해요. 그래서 현대에 와서는 유토피아를 ‘이상적인 장소’로 사용하기도 하구요. 이런 여러가지 의미를 가진 현대의 유토피아가 공사장이라고 생각한거죠. 그래서 공사장을 촬영하기 시작했어요.
작품의 주제인 ‘디스토피아’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디스토피아… 약간의 말장난인데, 유토피아의 반대되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는 디스토피아(dystopia)라는 단어에서 따왔어요. 토마스 무어의 유토피아를 읽고서 조지오웰의 <1984>를 바로 읽었어요 유토피아 반대개념인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책이거든요.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는 것 같아요. 공사장도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한 공사장이 있고 기존의 것을 파괴하기 위한 공사장이 있는 것처럼, 공사장에서 유토피아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반대의 디스토피아적인 면도 존재하는거죠. 그렇다고 최근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전달하려는 건 아니고, 제 친구중에 영화를 공부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저의 공사장 프로젝트에 대해 의견을 자주 나누었어요. 그러던 중에 그 친구가 저에게 ‘디스토피아(This-Topia)’라는 제목을 제안했고, 매우 마음에 들었어요. 시간성과 장소성을 모두 말해주고 있는 적절한 타이틀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제목이 말해주듯, 현시대의 유토피아, 내 주변에 실재하는 유토피아를 대변하는 장소인 공사장에 대한 작업이라고 설명하면 간단할 것 같아요.
사진 촬영 과정을 알려주세요. 어떻게 대상을 선택하는지, 구도는 어떻게 결정하는 지 등이 궁금합니다.
- 먼저 지나가다가 공사장이 있으면 유심히 봐요. 다른 공사장과의 차별점이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그 공사장에 있는 요소들을 관찰합니다. 예를 들어, 제 사진에 자주 나타나는 요소인 기중기, 가림벽, 가림천, 칸막이, 컨테이너 박스 등, 특징이 될 수 있을 만 한 요소들을 찾죠.
다음으로 빛을 체크해요. 제가 선호하는 건 흐린 날 사진촬영을 하는건데, 그 이유는 명암대비로 나타나는 그림자로 인해 촬영하려는 소재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흐린 하늘이 일종의 캔버스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당연히 햇빛이 있고, 푸른 하늘이 어울리는 소재를 촬영할 때는 그런 날씨에서 촬영을 하구요. 보통은 흐린 날에 촬영을 하고, 사람들이 많이 왔다갔다하는 장소인 경우엔 오전 일찍 나가서 촬영을 해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구도를 잡을 수 있는지 직접 촬영을 해봐요. 제 사진에서 나타나듯 평면적인 구도를 좋아합니다. 전체적인 공사장의 모습보다는 제가 찍고자 하는 요소들의 부분만 나타나는 구도를 선호하구요.
지금의 작업방식이나 주제에 영향을 준 사진작가나 이론가가 있나요?
- 1975년에 미국에서 « New topographics » 라는 전시가 있었어요. 부제는 ‘인간에 의해 변화된 풍경’이었구요. 이 전시는 제목 그대로 당대의 도시 개발로 인해 변형되어가는 지형을 촬영한 사진작가들의 작업을 전시한 단체전이었어요. 이 전시의 카탈로그를 공부하고 사진들을 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죠. 거대한 자연속에 있는 개발 현장, 반대로 거대한 도시속에 자리잡은 자연의 흔적, 이 모습을 ‘새로운 지형학’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이곳에 참여한 모든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미국 사진작가인 루이스 발츠(Lewis Baltz)의 사진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새롭게 지어진 미국의 집과 건물들을 흑백으로 촬영한 사진들이었는데,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그의 구도를 보고 감명 받았죠. 그리고 베른트와 힐라 베허(Bernd & Hilla Becher, 흔히 우리나라에선 베허 부부)는 늘 흐린 날에 촬영을 했어요 아까 제가 말씀드린 명암대비에 대한 이유 때문이죠.
그들에게 구도와 빛에 대한 작업방식에 영향을 받았다면, 가장 근본적인 사진작가의 자세라고 해야할까? 사진작가로서 꼭 필요한 덕목은 한국사진작가인 배병우 선생님께 배웠어요. 서울예대 다닐 때 교수님이기도 하셨지만, 선생님이 최근3년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면서 진행한 프로젝트 때문에 어시스턴트로서 촬영을 자주 함께 다녔어요. 그러던 중에 선생님이 사진가는 노동자처럼 매일매일 나가서 촬영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가장 중요한 자세이자 덕목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파리8대학에서 공사장을 주제로 연구를 하는 박사과정의 이론가 앙젤 페레르(Angèle Ferrere)의 책을 보고 많은 공부를 했어요. 사실 공사장이라는 주제로 예술과 연결된 참고문헌이 많이 없어서 좀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쓴 « Du chantier dans l’art contemporain » 이라는 책을 읽고 이론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공사장을 주제로 작업한 새로운 작가들도 알게 되었구요.
지금 개인전을 하고 있는데요, 몽쥬약국의 후원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 후원을 받게 되었는지, 또 장소가 어떤 곳인지 등등 전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코끼리(Co : Qui Rit)라는 파리의 청년문화기획협회를 통해서 전시를 하게 되었어요. 그들이 몽쥬약국과 협업하여 처음으로 젊은작가를 후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운이 좋게 제가 선정이 되어서 함께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시 제목은 제 작업의 주제인 ‘디스토피아’로 동일하구요, 다양한 크기의 사진 12점을 가지고 개인전을 열게 되었어요. 전시가 열리고 있는 장소인 ‘문화공간 M(Espace culturel M, 15 rue du puits de l’Ermite)'은 사실 전시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몽쥬약국의 회의실 겸 직원교육장소로 쓰이는 사무공간이에요. 전시기간 평일 낮에는 원래 용도로 사용되다가, 저녁과 주말은 전시공간으로 탈바꿈 하는 거예요. 한국인 직원, 고객이 많은 몽쥬약국의 입장에서, 재불한인협회에 후원을 하고 또 직원 및 주민들에게 문화적인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메세나를 통해 일종의 ‘문화적 사회 환원’의 차원에서 협업이 이루어진 것이구요. 다만, 원래 전시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보니, 제약이 많이 따르고 공간 연출에 어려움이 많이 있었어요. 아쉬운 부분이 좀 있었지만 고생 끝에 다들 무사히 전시를 완성하게 되어서 저는 전시를 만들어 주신 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하죠.
성공적인 전시 개막을 축하드립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는데, 내년에 파리 보자르에 석사로 지원을 해볼 예정이에요. 파리8대학에서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면 이젠 좀더 현장 경험이 있는 작가들과 함께 교류하며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요. 더불어 여러 사진 공모전을 준비하고, 또다른 전시 기회 등을 기다리면서 지금까지 하던 대로 열심히 작업을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입니다.
도시의 공사장은 현대적 이상인 발전과 진보, 그리고 폐허가 공존하는 디스토피아(dystopia)적 공간이다. 임정현의 사진은 조형적 이상향의 탐구를 통해 지금 여기에 디스-토피아(This-Topia)를 구현하는 작업이다. 독특한 작가적 시각으로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젊은 사진작가 임정현의 행보가 기대된다.
<파리광장 / 김은정eunjeong.kim33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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