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받은‘김창열 화백’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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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화가’로 잘 알려진 김창열 화백이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았다.
김창열, « 생성 », 마포에 유채, 195×160cm,
1979.
김창열 화백은 지난 23일 오후6시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파비앙 페논(Fabien Penone) 주한프랑스대사로부터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오피시에(Officier)’를 받았다. 이 문화예술공로 훈장은 프랑스 정부가 예술문학 분야에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수여하는 것으로, 일종의 ‘명예의 상징물’이다. 이 훈장은 세 등급으로 나뉜다 : « 코망되르(Commandeur)», « 오피시에(Officier)», « 슈발리에(Chevalier) »*. 이번 김 화백에게 수여된 훈장은 두 번째 등급인‘오피시에’다.
* 프랑스의 모든 훈장에는 세 등급이 있다. 제3등급이 슈발리에, 즉 « 기사(騎士 Chevalier) »로 수훈자가 제일 많다. 제2등급이 « 오피시에(Officier) », 제1등급은 « 코망되르 (Commandeur) »다. « 슈발리에(기사) »에서 5년 경과 후, 그 동안 공적을 또 인정받으면 « 오피시에 »로 한 등급 오르고, 오피시에에서 3년 경과 후, 그 동안 다시 공적이 있으면 « 코망되르 »로 한 단계 승격된다. 그러나, 이는 기한이 지나면 자동으로 승급되는 것은 아니다. 공적의 지속성과 인정을 받아야 한다. 김창열 화백은 1996년에 ‘슈발리에’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공적을 인정받아 이번에 한 단계 높은 ‘오피시에’를 받았다. 프랑스 문예(문학-예술) 공로훈장(Arts et Lettres)은 한국인로서는 지휘자 정명훈, 영화감독 봉준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 전도연, 재즈가수 나윤선, 예술기획가 이미아 등이 수상한 바 있다. |
김창열 화백은 1969년부터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양국 간 문화교류 저변 확대에 이바지하면서 한국미술을 유럽에 소개하는 기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김 화백은 또한 지난2013년 제주도에 그의 대표작품 220점을 무상으로 기증했다. 이를 기반으로 지난해9월24일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 kimtschang-yeul.jeju.go.kr)이 문을 열어 많은 도민과 관광객이 그의 예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 김창열 화백은1929 평안남도 맹산 출생이다. 1948-1950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수학했다. 김 화백은 작가 초기 추상화를 그렸다.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1961년 제2회 파리비엔날레에 참가하면서 앵포르멜(Informel(부정형 :不定形) : 프랑스의 비평가 미셀 타피에가 주창하고 지도한, 2차대전 후에 나타난 추상회화의 한 경향)풍의 작품에 몰입하였다. 하지만, 뉴욕 체류(1966-1968 미국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판화 전공))이후 사실주의로 전향해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았다. 이후 프랑스에 정착하여 프랑스는 물론, 유럽 각지와 미국, 일본 등지에서 개인전과 국제전을 열며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추구하는 작가로 인정받는다.
물방울 작품을 40년 동안 그려온 김창열 화백은1970년부터‘현상’이라 불리는 그림을 그렸다. 이는 음울한 회색 형상이 색면 내부로부터 흘러나와 물방울 그림에서 보게 될 회색톤 기법의 전조가 된다. 캔버스에 점액 모양의 거대한 방울이 나타난 것도 이 시기다. 이어 1972년 파리의 권위있는 초대전 살롱 드메(Salon de mai)에 물방울작가로 데뷔하여, 오늘날까지 물방울을 작품의 소재이자 주제로 그리는 작가로 인정받는다.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은 극사실주의적 필치로 그려내며, 초기에는 응집력이 강한 영롱한 물방울에서, 최근에는 표면장력이 느슨해져 바탕에 스며들기 직전의 물방울까지 다채롭고 다양하게 표현된다. 물방울이 앉아 있는 표면(물질) 역시 캔버스에서 신문지로, 다시 모래에서 나무판으로 다양하게 변화했다. 그는 물방울 모양의 유리병이나 투명한 입체로 설치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창열의 물방울 « 왜 (그는) 물방울을 그리는가 ? » : 김 화백이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파리에 정착한 지 3년째인 1972년부터다. « 어느 날 캔버스에 뿌려본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걸 봤어. » 라고 작가는 간략히 말한다. 파리 가난한 아틀리에에서의 어느 날, 밤새도록 그린 그림이 마음에 안들어 유화 색체를 떼어내 재활용하기 위해 캔버스 뒤에 물을 뿌려 놓았는데 물이 방울져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순간 존재의 충일감에 온몸을 떨며 물방울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물방울 제작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평론가 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김창열 작가 일생의 예술 화두가 된 물방울의 탄생은 좀 더 근원적인 뿌리가 있을 것으로 유추한다. 대표적으로 물방울은‘상흔’,‘제사’등과 같은 1960년대의 뜨거운 추상, 앵포르멜작품과 1970년대의‘현상’같은 작품과도 연관이 있다고 해석된다. 구멍이나 날카롭게 갈라진 틈, 그리고 구멍에서 흘러나온 액체 이미지들이 물방울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고 (우리는) 유추한다.
김창열 화백은 1996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슈발리에)에 이어, 2012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17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17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오피시에)을 받았다.
< 파리광장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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