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박물관(파리)10월 3일 개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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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관광청과 파리관광안내사무소는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Yves Henri Donat Mathieu-Saint-Laurent,이브 앙리 도나 마티오-생-로랑),1936~2008)을 기리는 박물관(파리 16구(XVIe), 5 Avenue Marceau)을 오는 10월 3일 개관한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450 m2 규모의 이 박물관에는 이브 생 로랑의 다양한 작품들, 드레스와 악세사리 그리고 작업 노트(크로키), 사진과 비디오가 전시될 예정이다. « 이 박물관은 여성복 제작에 있어 천재적 디자이너의 모습에서부터 오뜨 꾸뛰르(Haute Coutre)* 컬렉션의 창조, 제작 과정을 대중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 라고 올리비에르 프라비아노 (Olivier Flaviano, 35 세) 패션 박물관 디렉터는 힘주어 말했다.
*오뜨 꾸뛰르(Haute Coutre) : 파리에서만 펼쳐지는 맞춤복 패션쇼. 소수의 고객만을 대상으로 고객의 모든 요구 맞춰 제작된 맞춤복이다. 특히 ‘고급 여성복 제작’을 의미한다. 제작 발표회는 1년에 2회가 열리는데, 샤넬, 디올, 지방시 등이 참여하고 있다. |
이브 생 로랑은 디올 수석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입문한 후 20세기 패션계의 전설로 기억되는 세계적 디자이너 중 한명이다. 그를 기리기 위해 개관하는 박물관은 이브 생 로랑 꾸뛰르 하우스(Yves Saint Laurent Couture House)를 개조한 곳이다. 박물관은 이브 생 로랑의 작품을 보존하는 데 앞장 서온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 로랑 재단(Fondation Pierre Bergé-Yves Saint Laurent)에 의해 운영될 예정이다. 이브 생 로랑 꾸뛰르 하우스는 과거 이브 생 로랑과 그의 여성복 제작팀이 약 30년 동안(1974~2002) 작품을 디자인하고 창작했던 장소로 천재 디자이너의 두번째 왕국. 이곳은 지난 2004년부터는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 로랑 재단 사무실로 사용돼 왔다. 각 층마다 생전 이브 생 로랑이 디자인한 오천여벌의 이상의 작품 원본(시본prototypes)들이 수집, 보존돼 있어 지금까지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진귀한 작품들을 재발견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곳은 박물관이 개관 되기전 부터 이미, 공식적으로 인정된 호칭, « 프랑스의 박물관 »으로 불린다.
전시 공간은 무대 디자이너 나탈리 크리니에르(Nathalie Crinière)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작끄 그랑제(Jacques Grange)에 의해 이브 생 로랑의 오리지널 쿠튀르 하우스 스타일로 꾸며진다. 방문객들은 과거 이브 생 로랑이 실제 사용했던 오트 쿠튀르 살롱과 스튜디오를 그대로 재현한 전시공간에서 그가 남긴 작품의 제작 과정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유서 깊은 패션 브랜드인 이브 생 로랑의 역사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으로 박물관측은 기대했다.
이브 생 로랑 (Yves Saint Laurent, Yves Henri Donat Mathieu-Saint-Laurent, 1936.8.1 알제리 오랑(Oran)출생 - 2008.6.1 프랑스 파리 사망, 향년 71세)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시대를 읽는 눈과 독창적인 창조력으로 생전에도, 사후에도 전설적인 디자이너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다. 여성 패션에 최초로 바지 정장을 도입해‘여성에게 자유를 입힌 패션혁명가’라는 평가된다. 지적이고 우아한 이브 생 로랑만의 독창적인 분위기를 창조해‘생 로랑 시크’라고 불리기도 했다. 프랑스인들이 파리 오뜨 꾸뛰르 황태자(Yves the Dauphin)라고 칭하기도 했던 이브 생 로랑은 스트리트 패션을 사랑해 기성복 라인(ready-to-wear)을 런칭하고 여성에게 바지를 입히는 등, 사회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는 새로운 패션을 제시한 혁명가로 불린다. 이브 생 로랑은 1950년대 당시 저명한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 쟈크 파트(Jacques Fath) 등이 심사하는 국제 양모 사무국 디자인 컨테스트(International Wool Secretariat Competition)에 참가하여 1953년에는‘드레스’부분에서 3등을, 1954년에는 18살의 나이에 1등을 수상했다. 이후 1955년부터 파리 최대 오뜨 꾸뛰르 하우스인 크리스티앙 디오르에서 디오르의 조수로 근무한다. 이브 생 로랑은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디오르 하우스가 발표한 80벌의 드레스 중 50벌이 그의 디자인이었을 정도로 스승인 디오르에게 재능을 인정받았다.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갑작스런 타계로 1957년 21세의 나이에 디오르(크리스찬 디올, Christian Dior)의 수석 디자이너로 혜성과 같이 화려하게 패션계에 등장한다. 1958년 봄 첫 컬렉션에서‘트라페즈 라인(trapeze line)’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어깨폭이 좁고 A자처럼 자락이 넓은 스타일로서 슈미즈 드레스의 변형에 불과했으나, 바닥에서 50cm 올라간 젊은 룩의 효과로 대호평을 받았다. 이후, 몬드리안룩, 판탈롱 슈트인 팬츠룩, 튜닉 스타일, 인어와 같이 매혹적인 여성을 연상케 하는 슬림 실루엣인 사이렌룩, 팝 아트 계열의 작품, 누드룩 등을 발표하였으며, 턱시도를 최초로 여성에게도 입혀 화제를 모았다. 브라크나 피카소, 후안 그리와 같은 화가들의 그림에서 얻는 색채의 이미지를 중시하였다. 그는 특히, 전통적인 엘레강스 관념 대신 모드의 대중화 시대에 어울리는‘매력(appeal/charme)’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2002년 65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혁명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20세기 후반 패션을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이국의 문화, 문학, 예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매 시즌 선보이는 독창적이고 새로운 디자인 영감의 원천이 되었으며, 20세기 패션 디자이너 중 가장 탁월한 색채 감각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평생 우울증,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다. 2008년 6월 1일 지병인 뇌종양으로 영면했다. |
< 파리광장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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