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회 카셀 도큐멘타, 우리는 아테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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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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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중부에 위치한 카셀Kassel은 과거 군수산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때문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폭격이 이곳에 집중 되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건물의 80 % 이상이 파괴되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이 척박한 땅에서, 1955년에 화가 겸 교수인 아르놀드 보데 Arnold Bode는 도큐멘타Documenta 라는 전시를 통해 나치 정권 아래 자행되었던 반인륜적 과오를 반성하고 예술로 독일 문화 재건 및 문화 부흥에 앞장서고자 했다.
모던아트의 기록 Documentation이라는 뜻을 가진 이 전시는 이렇게 나치 정권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동시대의 사회적 또는 정치적 이슈를 다루며 예술을 통한 담론을 이끌어가고 있다.
올해 14회를 맞이한 이 전시는 독일의 대표 개념 예술가인 요셉 보이즈를 시작해 부르스 나우만, 주세페 페노네, 피에르 위그, 모나 하툼, 윌리엄 켄트리지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다녀가며 명망 높은 국제적인 예술 행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2017년 카셀 도큐멘타의 예술 감독이 된 아담 심칙Adam Szymczyk이 선택한 주제는 "아테네에서 배우기Learning from Athens"이다. 특별히 아테네와 함께 100일 동안 전시되는 이번 도큐멘타는 먼저 4월 8일 아테네에서 시작하여 9월 17일에 카셀에서 끝이 난다. 160여명의 작가들의 650여점의 작품들이 카셀과 아테네의 도시 전역에 위치한 전시공간에 설치되었다.
어두운 주제, 화려한 전시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방문한 카셀의 분위기는 예술적 기운으로 가득 차 흡사 축제를 연상케 했다. 올해는 도큐멘타 뿐 아니라 10년에 한번 개최되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그리고 베니스 비엔날레까지 흔치 않은 예술 축제 기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수많은 예술 관계자 및 애호가들이 카셀에 모여들었다.
이 예술 도시의 중앙 광장에 도착한 그들을 맨 처음 맞이하는 것은 엄청난 규모의 작품인 ‘책들의 파르테논’ 이다. 작가 마르타 미누힌 Marta Minujin은 아크로 폴리스에 있는 신전의 실제 크기(길이 70 미터, 폭 31 미터, 높이 10 미터)를 고려해 이 철골 구조물을 설치했다. 이 대형 구조물을 둘러싼 것은 전세계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던 도서들이다. 작가는 1933년 유대인 작가들의 책을 태웠던 과거 독일의 수치를 상징하는 바로 이 곳에 금서 신전을 설치하여 검열에 대해 항변을 하고자 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우리는 종교 갈등, 난민 문제, 인종 및 성차별, 폭력, 전쟁 등 현재 지구촌을 둘러싼 심각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상당수의 작품이 여러 장소에 나뉘어 전시 되는 데다가, 평소 느린 템포로 관람하는 태도를 유지한 결과, 결국 모든 작품을 보지는 못한 채 4일간의 빠듯한 일정을 마치고 아테네를 향하는 비행기를 올랐다. 그리고 그제서야 펼쳐 본 전시 팜플렛을 보며 이번 전시의 주제가 "아테네에서 배우기" 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였다. 그런데 왜 아테네 일까?
아이러니한 제목
카셀에서 만난 작품들은 유럽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는 이슈들을 다루고 있기에 그 속에서 그리스의 맥락을 찾기란 어려웠다. 더구나 얼마 전까지 뉴스를 장식하던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 및 그렉시트 등 그리스와 채권 채무 관계에 있는 독일에서 이루어지는 전시 주제가 '아테네에서 배우기'라는 겸손한 제목을 선택한 것이 무척 의아했다. 대체 무엇을 배우자라는 것인가? 다원화된 사회에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고 탈 장르화 된 현대 예술에서 유럽 문화의 근간을 이루었던 그리스 전통 예술로 회귀하자는 것인가?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담 심칙이 아테네를 선택한 것은 현재 유럽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이민자와 유로 존의 위기가 특별히 그리스에 더욱 집약되어 있기 때문 이였다. 물론 그가 이루고자 한 바는 그리스 사회에서 유럽 중심의 엘리트주의를 멀리하고, 분열된 유럽에 의문을 제기하며, 유럽의 위기 속에서 예술적이고 민주적 관행을 파악하고자 하는 의지에 비롯된 것 이였지만, 위기의 중심에 서 있는 그리스인들에게 이 행사는 자신들의 비극을 이용하는 듯 느껴졌을 것이다. 실제로 일부 그리스 시민 단체의 반대 시위와 함께 문화 식민화와 같은 형태의 전시 기획에 대한 비난도 적지 않았다.
2015년에 도큐먼타의 아티스트 및 큐레이터들은 그리스 현실을 직접적으로 이해하면 작업을 하기 위해 그리스에 정착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이 작업한 작품들은 전시관 밖의 그리스인들에게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위기를 향유하는 예술
아테네에서 도큐멘타는 현실에서 너무나 분리되어 있었다. 40도가 육박하는 날씨에, 긴 팔 옷을 입어도 에어컨 온도에 몸을 움츠리며 전시 관람을 해야 하는 미술관은 너무나 깨끗하고 편안한 자본주의 속 예술의 세계였다. 불과 2년 전 다큐멘터리에서 전기 요금을 못 내서 전기가 끊긴 채 살아간다는 아테네 시민의 눈물이 무색한 이 미술관의 모습에 나는 기이함을 느꼈다. 관람객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북유럽에서 건너온 미술 애호가들은, 그들은 직접 경험 해보지도 아니 할 필요도 없는 고통과 고난으로 신음하고 저항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을 감상하며 이러한 윤택함을 누리고 있었다.
이번 도큐멘타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아테네 현대 미술관의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 이였다. 그것은 도시의 숨막히는 전경 너머 근사하게 보이는 파르테논 신전이 아닌, 미술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건너편 건물이다. 과거에 호텔 이였으나 지금은 폐허가 된 건물 옥상에는Welcome and Enjoy 라는 그래피티가 미술관 관람객을 행해 적혀있었다. 우리가 예술로 모색하려 했던 그리스 시민의 처참한 삶의 문제가 결국 예술로 인해 모순된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듯이...
<파리광장 / 김지현 july79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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