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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홍상수의 새로운 흑백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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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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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차려준 밥상, 숟가락을 드는 봉완(권해효). 아내는 봉완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봉완은 직원 하나 둔 소규모 출판사 사장이다. 그의 하나뿐인 직원이자 애인인 창숙(김새벽)이 일을 그만두고, 그 자리에 아름(김민희)이 대신하게 된다. 아름은 첫 출근부터 봉완의 처에게 헤어진 여자로 오해 받는다. 봉완이 아름을 달래던 중 옛 애인 창숙이 돌아오고 모든게 뒤틀린 봉완은 울음을 터트린다.

 

홍상수 감독의 21번째 장편 영화 <그 후>는 지난 6 7일 프랑스에서 개봉했다. 국내 작품인데 프랑스에서 먼저 개봉했고, 70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이번 신작은 <! 수정>(2000), <북촌방향>(2011) 이후, 그의 세 번째 흑백영화다. 그의 흑백영화들은 공교롭게도 배경이 모두 겨울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 속 겨울은 유난히 더 춥게 느껴진다.

 

홍상수는 1998 <강원도의 힘>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으로 처음 등장했고, 이후 꾸준히 칸에서 노미네이트되고 있는 감독이다. 또한 파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2011년 홍상수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chef d'oeuvre(걸작)라 불리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첫 작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이번 신작까지 꾸준히 인간관계(주로 남녀)에서의 상투성과 불확실한 자아에 대해 고민한다. 일부 평단에서는 그의 영화들이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확실히 그의 영화는 다른 누구의 작품일 거라고 생각할 수 없는 고유한 모티브들이 있다. 변변치 않은 남자(소위, 찌질한 남자), 강해 보이지만 이 찌질한 남자에게 끌리는 여자, 그리고 이들이 함께하는 술자리. 하지만 홍감독은 이 요소들을 집착스레 들여다 보기도하고 어지럽게 흩어진 조각 위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마치 이 모티브들을 통제변인 삼아 시공간과 인물의 조합으로 다양한 실험군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그의 영화를 주의 깊게 봐왔던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에서 새로운 서사구조를 통한 결과물에 흥미를 가질만하다.

 

그의 영화적 실험은 감독의 심경변화를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다. 초반, 남녀를 바라보는 찔릴 것 같은 그의 시선은 <극장전>(2005) 이후부터 온기가 돌더니,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에서는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그리고 2016년 겨울, 감독의 불륜 스캔들 이후로 그의 작품에서 또 다른 변화가 감지된다.

 

“왜 사세요?

-극중 새로 들어온 직원인 아름(김민희)이 사장 봉완(권해효)에게 묻는 질문-

 

“우리는 이따금 무엇인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또 혼란의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우리는 진실(la verité absolue)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을 찾는 대신 다른 것들을 찾게 됩니다.

-영화 속 위 질문에 대해 칸영화제 기자간담회에서 홍상수 감독의 대답 중 일부-

 

 

자가당착의 덫

지난 겨울 홍감독은 배우 김민희와의 혼외열애를 인정했다. 그렇기에 유부남 출판사 사장과 그의 직원의 연애와 파탄을 그린 이 영화에 대해 관객과 언론은 자전영화라는 해석이 많다. 하지만 이 영화가 완벽한 자전영화 일지라도 감독이 관객들에게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극중 유부남 출판사 사장은 자신이 뱉은 말의 덫에 걸려버리는 조롱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떠오르는 감독의 스캔들과 이에 대한 자학과 같은 지점들이 이번 영화의 재미 중 하나이다.

 

“비겁해.. 진짜 비겁한 인간이야!

-아내에게 연애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봉완에게 창숙이 소리친다-

 

홍상수 감독은 무언가에 대해 단언하는 것을 늘 경계해왔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그는 단언하지 않는 것또한 때때로 오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파리광장 / 차시은 nmejoj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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