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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프랑스에서 한국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는 최옥경 교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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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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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이우환 작가 관련 저서, <LEE UFAN espaces non-agis>  출판 기념회-

최옥경 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가 2015년 9월 프랑스 한인회에서 주최한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기메 박물관 한국관 탐방이었다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은 전 세계 아시아 유물 박물관으로는 최대 규모이며한국관에는 김홍도의 풍속도퇴계 이황의 글씨고려청자 , 금동불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선사 시대의 유물부터 조선시대의 그것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미술사를그것도 프랑스에서 태어나거나어린 나이에 와서 자라나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최옥경 교수는 자료를 준비해서 나누어 주면서 한국어와 불어로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단순한 전달식 강의가 아닌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끌어내었다이 같은 열정은 박물관을 방문하던 다른 이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최 교수의 설명을 듣게 했다.  당시 그런 그를 보면서 느낀건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그러지 않으면 저런 열정은 나올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서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온다그것은 주위 사람들까지도 기분좋게 물들이곤 한다파리 국립동양어문화대학에서 한국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는 최옥경 교수는 한국 미술 관련해서 불어로 된 자료가 거의 없다며 한탄한 바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3월 불국사 석굴암 관련 저서가 프랑스 세르클 다르 출판사 Editions Cercle d’Art 에서 출간되어 주 프랑스 한국 문화원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그가 공저한 책이었다그리고 이번에 같은 출판사에서 이우환 작가에 대한 책  <LEE UFAN espaces non-agis>을 출간,  6월 22일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현대미술로는 가장 중요한 서점 아르퀴리알Artcurial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진다.

 

얼마전 어떤 전시에 갔는데한 프랑스인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로 추정되는 한국 호랑이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직인만이 있을뿐 작자나작품 관련해서 어떠한 설명도 없다면서 답답한듯 물어온 적이 있다바로 최옥경 교수가 이야기했던프랑스에 한국 미술 관련 자료가 없다는게 떠올랐다최 교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체감한 순간이었다이같은 상황에서 최 교수의 역할은 크다고 할수 있겠다이우환 작가 저서 출간에 즈음하여 그를 만났다.

 

한인회 기메 박물관 탐방때 청소년들에게 열정적으로 강의하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한인회 행사에 여러번 강연을 하셨는데 어떠셨어요?

한인회 주최로 프랑스에서 태어나 한국 미술을 잘 모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메 박물관 탐방 행사를 기획했다고 초대를 해서 네 번의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런 자리는 처음이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다행히 두시간이라는 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어요마지막 탐방은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게 되었는데 그때  청솔회 어른들이 많이 참석하셨어요그날은 한국 역사와 문화를 저보다도 오래전에  체험하신 그분들 앞에서 내가 무엇을 덧붙일수 있나 하는 생각에 더 긴장되었어요결국  2시간 동안 서서 열심히 들으시는 모습에 제가 감동을 했답니다.  자리가 있어서 앉아서 들으시라고 말씀드렸는데  강연자가 서서 말을 하는게 더 힘들텐데 어떻게  편하게 앉아서 듣냐고 하시면서  앉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그 탐방은 제가 누군가를 가르친다기 보다는 하나의 만남의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그 이후 이곳 한인들과 심리적으로 많이 가까와진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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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학생들이 한국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지요 ?

-정말 관심이 많아요.  한국학과에 온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서 왔기 때문에 한국 미술 이전에  한국 문화 자체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번 1학년  학생들은 거의 200명이 되는데 미술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수업 후에 저를 보러와서,  졸업하고 한국 미술을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한번은 프랑스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한국 여행을 가서는 석굴암과 불국사 앞에서 찍은 사진을 제게 보내왔어요.  제게  배우지 않았더라면 이 문화유산들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몰랐을 것이라는, 한국어로 쓴  감사의 글과 함께  말이지요. 석굴암은 한국 미술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화 유산으로 수업 중에 제가 많이 강조하는데그 학생들이 저의 수업을  듣고 힘들게 돈을 모아서 한국에 문화 유산을 직접 체감하러 간 거에요.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보다 더한 선물을 바랄 수 있을까요 ?   

 

지난 3, 선생님 공저인  불국사, 석굴암 관련 저서 <Trésors de Corée - Bulguksa et Seokguram > 이 불어와 한국어로 나와 한국문화원에서 출판 기념회를 가졌는데요, 그책에 대한 말씀 좀 해주세요.

 

제가 그 책 출간에 참여한 것은 사람이  정말로 무엇인가를 원하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제게는 아주 소중한  계기가 되었어요. 몇년 전 프랑스에서 한국 미술사 와 한국 문화유산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좀  더 생생한 강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여름 방학때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가서 여러 문화 유산 유적지를  돌아보게 되었어요내가 느낌이 있어야  학생들한테 그 느낌을 전해줄 수 있기 때문에 , 오래전에 가 보았던 곳들을 다시 돌아보며  남쪽으로 내려오다 경주 석굴암까지 오게 되었어요.

 

예전에도 몇 번이나 와서 보았던 보호 유리벽으로 막힌 석굴암 앞에 섰는데  같은 광경인데도 그때는 아주 큰 충격을 받았어요우선 그 위엄스런 본존불에게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강한 느낌을 받았을 뿐 아니라 불상들을 넘어서 조각상들 사이에 있는 석굴암의 공간을 보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에서 멀리 와서,  바로 눈 앞에 두고도 굴 안에 들어가 유리벽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실제로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언젠가 베니스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 파도바에 도착하고도 예약을 못해서 교회안에 있는 지오토의 그림을 못본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지는 않았었어요. 그래서 유리벽 너머로 석굴암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저 곳에  들어가야지’’ 라고 마음을 먹으며 힘들게 발길을 돌리고 말았답니다.

 

그때가 20148월이었는데,  20151월에  현대미술 전시 일로 방혜자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고 우연히 석굴암에서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방선생님은 제 눈을 똑바로 보시며 하늘이 저를 보냈다고 하시는거에요. 알고보니 오래전부터 방혜자 선생님께서 석굴암과 불국사 관련 불어 서적 출간을 열망하고 계셨던거에요.   그리고는 같이  석굴암에 가자고같이 책을 만들자고 하셨어요그렇게 해서 그 해 4월 우리는 같이 석굴암에 들어갔답니다.  저로서는 오히려 그 분이야말로 하늘이 제게 보낸 사람 같았어요제 꿈이 불과 몇개월 뒤에 이루어졌으니까요.  

 

그 책을 위해 한국 불교미술의 대가이신 강우방 선생님도 글을 쓰셨고, 프랑스 사진 작가 실바와 평생을 석굴암 사진을 찍어오신 안장헌 선생님께서도 그 귀한 사진들을 주셨지요 .  실제로 저는  그 책 프로젝트에서 부족했던 바퀴의 한  작은 조각에 불과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작은 조각이라도 그 조각이  없으면 바퀴가 구를 수 없는 것이기에 만나야 할 사람들이  운명처럼 적시에 만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이 아름다운 만남이 아름다운 책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최옥경 교수 공저인 <Trésors de Corée, 한국의 문화 유산 > 표지bc6ed978b63aca4263c157b6f84bff42_1674421660_1728.jpg

 


석굴암 안에 들어가 보신 느낌은 어땠어요 ?

 

주실로 들어가기 전에 전실에서 석굴암 큰 스님과 함께  예불을 드렸어요. 스님의 염불 소리와  목탁 소리가  동굴안에서 신비스럽게  울렸어요. 그리고 뛰는 가슴으로 본존불 뒤 원형 주실로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사십여구에 가까운  불보살 부조상들을  볼 수  있었죠저는 학생들에게 작품을 볼 때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해요. 몸 전체로,  나의 존재 전체로 보는거라고 말하곤 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공간에 들어가서  직접 몸으로 느낀 것들이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불교 미술은 5세기 인도의 굽타미술에서  양식적인 절정을 이루었어요이 미술은 인도에서 시작되어서  한편으로는 동남아시아로 다른 한편으로는 비단길을 거쳐 극동으로 뻗치면서 전파되었는데 그 영향은 석굴암에 까지 미쳤어요석굴암은 문화 흐름의 종착역 같은 곳으로 극동에 핀 마지막에 핀 꽃과 같습니다.  경주 토함산의  한 구석에 있지만 그 당시 국제적으로 가장 세련된 양식을 받아들여서  그 위에서 한국적으로 발전시킨 것이에요.  통일 신라인들은 외래의 영향이 단순한 모방으로 그치지 않게 할  불심과 역량을 가지고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대단한 예술을 이루어낸 것이죠

 

 

이번에  세르클 다르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우환 작가 관련 저서에 대해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이 책은 제가 2006년 소르본 4대학에서 받은  미술사 박사 학위 논문을  좀 더 다듬고 보완한 것이에요.  논문 발표 이후에 하신 작품도 고려를 해서 업그레이드를 했지요.  그 사이 십여년이 넘는 동안 이우환 작가의 국제 무대에서의 활약이 눈부셨고 이제는 아시아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셨지요.  

 

 bc6ed978b63aca4263c157b6f84bff42_1674421738_2879.jpg이번에 출간된 최옥경 교수의 이우환 작가 저서 < <LEE UFAN espaces non-agis>표지 


원래 전공이 미술사였나요 ? 

-불문학 전공이었어요. 소르본 대학에  들어가니  복수전공을 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미술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고 그 당시 문학쪽 제DEA 논문 주제가 미술과 관련이 있어서  그 논문을 더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 미술사 과정에도 등록을 했어요.  결국 불문학과 미술사 두 군데에서DEA 학위를 받았는데  박사 논문을 시작할 때는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  프랑스에 공부를 하러 왔으면 배우고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언가 학계에 보탬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외국인으로서 언어를 다루는 문학쪽으로는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었고,  곳곳에 미술관이 산재한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미술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지요.   

 

이우환 작가와의 인연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요.

- 이우환 선생님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문학을 하던 내가 그를 주제로 논문을 쓸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지요. 그러던 차에 1999년 우연히 갤러리 뒤랑 데쎄르에서 이우환 작가 전시를  보게 되었어요커다란 화랑에  터치 한 두 개 있는 큰 캔버스 몇 개와 돌과 철판으로 된 조각, 그 정도가 다 였는데 아주 특이한 공간감을 느꼈어요.  그 공간감에 이끌려 오랫동안 그 화랑에서 나가지를 못했었죠그로부터 몇 달 후 지도 교수가 독일에서 한 전시를 보고 와서 그 중에는 이우환이라는 대단한 한국 작가도 있다는 얘기를 하셔서 그 작가를 주제로 하면 박사 논문 지도를 받아주시겠구나 생각하고 , 말씀드려  미술사 박사 학위를 하기로 결정하게 된 거죠.   

이우환 작가에게 전화해서는, 선생님에 대해서 논문을 쓰겠다고 했는데, 바로 그날 뵙게 되었지요.  작품이나 책을 통해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감지했기에 처음부터 어설프게 그를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는 철저하게 공부를 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일본에 살면서 유럽을 오가시는데논문을 준비하는 동안 파리에 오실때마다 뵙고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신뢰가 조금씩 쌓여나갔지요.   

소르본  대학의 제 지도교수는 그르노블 미술관 관장이셨다가 이후에는 오르세 미술관 관장도 하신 분인데 그 분에게서  확실히 배운 것은미술사는 구체적으로 작품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예술의 본질은 작품입니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지만 다 컨트롤  할수 있는게 아니에요. 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닙니다. 작품은 작가를 넘어설 수 있는 거에요그런데 한국에서 이우환 작가에 대해 쓴 논문들을 보면 흔히 작품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장황한 상황론만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저는 연구의 기본이 되는 것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그래서 논문을 시작하면서  영국, 독일, 한국, 일본 이태리 그리고  논문 후에도 베니스 비엔날레미국의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 등, 대부분의 전시를 보러다녔죠석굴암의 경우처럼 작품의 힘은 내가 직접 보고 느껴야 글을 쓰거나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조금전 말씀하신 것 처럼 예술의 본질은  작품이라는, 그 관점에서 이 책을 구성하신거겠네요.

-물론이죠.  제 책의  출발점은 작품입니다. 그래서 작품 설명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우환  작가의  자서전적인 요소는 거의 배제되어 있습니다. 제 책은왜 그렇게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여백이 많고 만들지 않은 면이 많은가, 그러면서도 왜 그런 특이한 공간감을 자아내 는가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지요.  그것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  1장의 일본 모노파 미술 운동에 대한 것이에요작가가 가진 세계에 대한 비전이 그때 거의 형성되기 때문에 모노파 시기의 활동들은 중요하지요.  스무살의 나이에 한국에서  건너 온 이우환이라는 작가가  60년대말  일본 현대미술사에서도 중요한   모노파 운동을 이끌었다는 것은 그 당시에도 산재했던  반일 감정과 더불어  한국에서도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지요. 이 부분을  연구할 때 일본에 가서  작가들과 비평가들을 만나고 인터뷰도  했습니다너무 고맙게도 일본인 친구가 일본어 자료 번역과 통역을 많이 도와주었어요이우환 선생님이  60-70년대에 일본어로 쓴 글이나 다른 이들의 비평또 한국 미술계에서 쓰여진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자주  만나고 있는 사람이 그 당시에 그처럼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신화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발견 검증해가다가 선생님을 파리에서 다시뵐 때 가끔은 기분이 이상해지곤 했지요.      

이우환  작가는 단순히 자기표현만을 위해서 작품을 하는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세계 미술사에 도전하는 작가입니다. 제가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학계에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다 주기를 바라듯이, 작가도 미술사에 어떤 자기만의 해답을 주고 싶은 것이죠.   그래서  제 책에서도 미술사의 맥락에서 이우환 작품이 던지는 문제제기를 재조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그의 작품들을 세잔이나 마티스모리스 루이스, 샘 프란시스, 마르탱 바레나, 니엘 토로니 등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여백과 비교하거나 고찰하고  조각에 있어서도  리처드 세라 등을 비롯한 포스트 미니멀리스트들과 비교 연구합니다.   제 책 각 장들은 기본적으로는 시간순으로 전개되지만  각각의 장은 주제가 있고 그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우환 작가의 회화와 조각 작품들이  어떻게 전개되어 오늘의 작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인 작품 기술을 세밀히 추척하는 것이지요.   

 

다행히 제가 불어로 쓴 이 책 출간과 동시에 영어판 번역도 나왔습니다그래서 프랑스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읽힐 수 있게 되었어요.  10년전 독일 사람에 의해서 책이 한 권 나온 이후, 최근 작품들까지 다루며 이우환 작가론을 낸 사람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개인적으로는 논문에서 시작해서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 책의 출간으로 마침내 인생의 한 단계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모퉁이를 돌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선생님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한국 미술사 관련 자료 많이 남겨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처음 유학왔을 때는 한국 미술사를 하려고 온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서양미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둘러 다시 재발견하는 한국 미술사의 매력은 굉장합니다.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알아야 될 것이 많고 또 개인적으로도 알고 느끼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최근에 제가 불국사· 석굴암에 관련된 글을 쓰거나  채색화 (민화) 혹은  단색화에 대한 컨퍼런스 등을 하거나 혹은 지난 주에 오픈한 이응노 작가 전시 도록에 글을 쓰는 등, 미술사의 다양한 시기를 오가는 것이 산만해 보이기 쉽겠지만 실은 이 모든 것들은 제 머리속에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언젠가  불어로 된 한국미술사를 쓸 수 있는 역량을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그렇게 살아왔듯이  꿈을 꾸면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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