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유 끌로델 Camille Claudel 박물관 개장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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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6일 (2017년) 프랑스 동쪽지방 도시인 노장 쉬르센Nogent-sur-Seine에서 19세의 여성 조각가였던 까미유 끌로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 개장했다. 까미유 끌로델(1864-1943)은 1876년에서 1879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프랑스 로브 l’Aube 지역의 작은 도시인 이곳은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걸리는 곳으로, 이 박물관에서 12년동안 까미유 끌로델이 조각 작업했던 것을 볼수 있다. 지역 시청에 이 미술관을2008년에 구입했으나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예정보다 3년이 지나서 문을 열게 되었다.
벽돌로 장식된 미술관에는 조각 작품을 통해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을 만날수 있다.
미술관에는 모두 200개의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중 43개는 2008년에 지역단체에서 까미유 끌로델의 손주 조카로부터 구입한 것이다. 까미유 끌로델에게 영향을 받은 조각가들(Marius Ramus, Paul Dubois, Alfred Bouche)의 작품들이 0층에 전시되어 있고, 1층으로 올라가면 까미유의 조각 작품들을 감상할수 있다. 이 부분은 19세기부터 20세기초의 조각 작품들의 기술적인 설명이 풍부하게 가미된 파노라마식으로 펼쳐져 있다.
까미유 끌로델은 19살 때 로댕의 아뜰리에에 견습생으로 가게 된다. 당시 로댕의 나이는 43살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스스로 연구를 하면서, < 지옥의 문> 같이 기념비적인 조각의 손, 발 등을 연습하게 된다. 꺄미유는 로댕의 제자였지만 연인이었다. 하지만 로댕은 천재적인 예술 영감을 타고난 꺄미유에 대해 점점 불안감과 부담을 가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꺄미유의 작품을 표절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보일 정도로 그녀의 예술성은 뛰어났다.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이 중요했던 로댕은 꺄미유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에 까미유는 로댕에 대해 파괴적인 열정을 가지게 되었고, 로댕이 까미유가 전시하고자 했을때 압력을 행사하여 방해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또한 당시 사생활이 노출된 여류 조각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꺄미유는 "로댕이 나의 재능을 두려워해 나를 죽이려한다."며 강박증에 시달렸고, 30년을 요양원에서 갇혀있다가 세상을 떠난다.
박물관에는 까미유의 작품 단계와 경력이 11번실에서 15실까지 펼쳐져 있다. 로댕의 제자였던 까미유는 작품면에서 로댕을 따르지 않았고, 작업에서 그들은 서로 힘을 주고 받은 관계였다고 박물관 관장인 세실 베르트랑Cécile Bertran 씨는 주장했다.
그만큼 까미유의 재능은 뛰어났다. 하지만 이같은 이중적인 영향으로 인해 까미유는 10년간의 관계를 청산하고 로댕과 결별하게 된다. 당시 까미유는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주장했고, 자신의 작품만으로 명성을 얻고자 했다. 로댕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어디서 금을 찾을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찾고자 하는 금은 그녀에게 있었다’’
미술관에는 그녀의 재능을 볼수 있는 대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1893년 까미유 끌로델은 작가이자, 그의 남동생인 폴 끌로델에게 그녀의 조각작품 ‘La Valse’를 두고는, ‘’더이상 로댕에게서 온게 아니라는 것을 봤지. 내 것으로 입혔어’’라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까미유 끌로델 박물관이 개장함과 동시에 파리 그랑팔레에서는 로댕의 백주년 기념 전시가 열리고 있다.
까미유 끌로델 박물관 Musée Camille Claudel,
10, rue Gustave Flaubert, Nogent-sur-Seine
Tél. : 03 25 24 76 34
10h-17h (월, 화 제외)
<파리광장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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