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새여자 친구, Une nouvelle amie>, 트렌스젠더 눈빛에 끌리다.
작성자 정보
-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0 추천
- 목록
본문
피를 나눈 친구가 죽었다. 실제로 피를 나누었다. 7살때 친구는 전학왔고, 서로 변치않을 우정을 다짐하고자, 칼로 손바닥을 얇게 그어 두손을 맞잡았다.
사춘기 여자 아이들이 머리를 빚겨주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그시절에 같은 동성에게 느꼈을 야릇함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게 그녀들은 함께 자라 성장하여 각자 가정을 가진다.
한 친구의 아이가 태어났고, 그녀는 갑작스레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는다.
여기까지가 화려하고 빛났지만 일찍 세상을 버린 로라와 절친, 하지만 로라의 그늘에 가려 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끌레르의 평범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이자, 시작이다.
장례식에서 울먹이며, 남은 아이와 남편을 돌보겠다는 끌레르는 친구의 죽음으로 심한 우울에 빠지면서 연락조차 못하는 지경에 이르른다.
하지만 아이와 친구 남편 소식이 궁금해 어느날 우연히 집을 찾아간 그녀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젖먹이에게 우유를 주고 있는 로라를 연상케하는 금발 머리 여인의 뒷모습을 보고는 로라 엄마인줄 알고 “마담”이라고 불렀는데, 돌아보는 이의 모습은 로라의 남편 다비드다. 다비드가 로라 분장을 하고 아이에게 우유병을 물리고 있었던 것이다.
기분 나빠지는 장면이 아닐수 없었다.
남자가 여자 가발을 쓰고, 여자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는 아이에게 우유를 주는 여자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란 끌레르는 집을 나가려고 하지만 다비드는 설명하겠다며 그녀를 말린다 :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심하게 동요하고 있던 아이를 달래려고 로라의 체취가 뭍어있는 옷을 아이에게 닿게 하니 안정을 되찾더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다비드의 여자 분장은 시작되었다.
다시는 다비드를 보지 않을 것 같이 완강하던 끌레르는 자석에 이끌리듯 그를 찾게된다. 그렇게친한 친구들처럼 둘만의 비밀을 가지게 된다.
프랑스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감독 프랑소와 오종François Ozon 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 젊은 감독은 엄마, 아빠로 구성된 기존 가정의 틀과 남성, 여성 모두를 뒤집어버렸다.
아빠가 죽은 엄마로 대신 분장해서 엄마 역할을 하고, 남자가 여장을 하고 그 모습에 또 다른 여성이 끌리게 된다.
그야말로 울랄라~다.
그런데 가히 충격적이고, 예민할 수밖에 없는 주제를 가지고 부드러운 멜로를 만들었다.
대사 많이 없는 전형적인 프랑스 영화다.
처음에는 다비드에게 “변태”라고 하면서, 다시는 안볼 것 같이 모질게 굴었던 끌레르가 점점 로라로 분한 다비드에게 빠져드는 심리 묘사는 섬세했다. 로라에 대한 그리움인지 아니면 그간 친구의 그늘에 가려 존재감 없이 지내다 새로운? 여자친구에게 끌리면서 어쩌면 자신을 발견했다고 여겼을 것 같기도 하다. 로라에게 느꼈던 잠재적인 동성애가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며 연민으로 일어 로라로 변장한 다비드에게 극하게 발현된 것은 아닐까 싶다.
어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해하기 힘든 일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다비드는 게이도, 트렌스젠더도 아니다. 단지 여장하기를 즐기는 남자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 끌레르는 “버지니아”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지어준다.
젖먹이 아이를 두고 아내가 갑자기 죽어버렸다. 남편은 의사에게 허락을 받아 아내의 시신에 결혼 드레스를 입힌다. 죽은 아내의 몸을 만지며 드레스를 입힌 남편은 아내의 시신옆에 누워 숨이 끊어진 아내를 안고는 슬퍼한다. 그때 그는 여자로 분하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아내의 절친이었던 끌레르가 그를 알고 이해해 주고있다. 끌레르와 다비드는 사랑했던 로라의 부재로 인해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끌레르가 끌렸던건 남자인 다비드가 아닌 버지니아다.
그래서 끌레르에게 버지니아는 새로운 여자친구다. 둘은 함께 쇼핑하며 친구처럼 즐긴다. 제모를해 주고, 화장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위험하다며 그만하자고 하던 끌레르는 그후 버지니아가 그립다. 결국 두사람은 함께 살게 된다. 남자인 다비드와 여자인 끌레르로, 하지만 로라와 함께 가진 아이가 7살이 되었을 때 여장한 다비드 즉 버지니아가, 임신한 끌레르와 함께 학교앞으로 아이를 찾으러 온다. 그게 마지막 장면이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무거운 주제를 부드럽고, 때때로 가벼운 코믹으로 풀어갔다.
두사람이 게이 클럽에 갔을때 몇몇 동성애씬이 나온다. 그런데 무대위에서 어떤 트렌스젠더가 니꼴 크롸질 Nicole Croisille의 “Une femme avec toi”를 부른다. 그리곤 버지니아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거북스러울수 있는 동성애 장면을 부드럽게 완화시켜주는듯 했다.
그리고 다비드가 교통사고로 의식 불명 상태에 있으면서 깨어나지 못할 때 끌레르는 다비드에게여장을 해주며 이 노래를 부른다. 눈덩이에 아이샤도우를 발라주고, 가슴털을 깎아주며 다비드를 버지니아로 분장해준다. 그리고 그는 깨어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끌레르가 불러주는 노래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영화평들을 보니 “모호함”이었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건지는 알수 없었다.
프랑소와 오종 감독은 메시지는 없다고 한다. 단지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고, 작년, 프랑스에 동성 결혼이 법으로 허용되었고, 요즘은 강하게 입양을 반대하고 있는 와중이라 사람들이 좀 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겉만 보면 친구 죽고난뒤 그 남편과 살게 되는 단순한 불륜 이야기다.
끌레르는 남편이 있다. 보통 이런 구조는 남편, 애인인데 반해, 남편과 새로운 여자친구다. 아주 생소하다. 아마 다비드였다면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비드 역할을 한 배우, 로맹 뒤리스 Romain Duris가 버지니아로 분해서 내뿜는 눈빛은 묘한 매력을 풍기며 같은 여자가 봐도 끌렸다. 그리고 끌레르 역할을 맡은 아나이스 디무스티에 Anaïs Demoustier 연기 또한 탁월했다.
영화관 문을 나서는데 느낌이 강했다. 가슴 깊은 곳이 건드려진 것만 같았다.
끌레르안에 내재된 동성애와 다비드안에 잠재된 여자로 분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봤지 않았을까 싶다. 그게 사랑하던 이 [로라]의 죽음으로 인해 상처받은 두 영혼이 그렇게, 그런 방법을 통해 서로 위로했던건 아니었을까? 그런 그들에게 도덕과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며 비판하고 싶지는 않았다.
<파리광장편집부>
관련자료
-
다음
-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