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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Paris) 그랑빨레(Grand Palais) 한국 도자기 걸작전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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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광장편집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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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terre, le feu et l'esprit Chefs-doeuvre de la céramique coréenne -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가 열렸던 그랑 빨레(Grand Palais)에서 삼국시대 토기부터 현대 도자 작품에 이르기까지, 한국 특유의 개성과 고유성이 돋보이는 진귀한 도자기들을 한자리에 소개하는 도자 명품 기획전, < La terre, le feu et l'esprit – Chefs-d’oeuvre de la céramique coréenne > 6 20일까지 열린다.

(la terre), (le feu), (l’esprit)’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적인 미와 개성이 담긴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 11건을 포함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진귀한 소장품 등3백여 점의 도자기 작품들이 선보인다.

한국의 도자기는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에 비해 프랑스와 유럽에 오랜 세월 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18세기 유럽의 귀족들은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를 수집하며, 때로는 붉은색, 초록색, 파란색 장식이 들어간 카키에몬(Kakiemon)* 스타일의 일본 도자기가 한국의 도자기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1880년에 이르러 조선의 개화정책과 함께 한국의 도자기는 프랑스에 그 존재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 예로, 1893년 기메박물관(Musée Guimet)내 한국관 개관을 주도했던 수집가 샤를 바라 (Charles Varat,1843-1893)가 한국을 여행하며 모아온 그의 소장품들을1889년 트로까데로 민족박물관(Musée d’Ethnographie du Trocadéro)에서 소개했다. 이후 19세기 조선주재 초대 프랑스 공사였던 빅또르 꼴랭 드 쁠랑씨(Victor Collin de Plancy, 1853-1922)의 수집품이 국립 세브르 도자기 박물관(Musée national de la Céramique de Sèvres)과 기메 동양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1900년 한국이 만국 박람회에 참여하며 한국의 도자기는 마침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고, 예술 애호가들에게경외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성장과 독특한 문화적 역동성으로 한국 도자기는 더욱 그 매력을 과시하며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다. 여러 국제전에 초청되었으며, 현대 도예 작가들은 국제 박람회와 작가 이우환(1936년 생)과의 협업 작품 등을 통해 큰 성공을 이루었다. 또한 이러한 한국의 도자 전통은 프랑스의 많은 도예 작가들을 매료시켰다. 추상적인 형태의 청자를 제작하는 장-프랑스와 푸이로(Jean-François Fouilhoux, 1947년 생) 등 많은 프랑스 도예 작가들이 한국 도자 전통에서 대담하고 새로운 형식의 창작 시도를 할 수 있는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번 그랑빨레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는 [삼국시대로부터 통일신라에 이르는 고대 토기]로 부터 [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 그리고 이같은 유구한 도자 전통을 이어받아 새롭게 해석, 창조한 [현대작품]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이어져 한국 도자문화의 발전과 특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한국 도자기의 전반적인 흐름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의 합성어다. 도토기라고도 부르는 도기는 토기를 말한다. 토기는 흙으로 만들어서 응달에 말린 후 약 1,000도 이하의 불에서 구워내는 그릇이다.

자기는 토기와는 좀 다르다. 첫번째는 유약을 바른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재벌구이를 한다는 점이다. 자기는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응달에 말린 후 약 1,000도 정도의 불에서 초벌구이를 한다. 그 다음 유약(잿물)을 바르고 약 1,300도 정도로 다시 굽는 재벌구이를 한다.

토기는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만들어졌다. 반면, 자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고려시대로 볼 수 있다. 고려청자가 우리나라 자기의 기원이다. 고려청자는 중국 송나라의 자기 만드는 기술을 배워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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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HYUNKYUNG (05.2016)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려 청자는 단기간 제작되다 소멸하게 된다. 그리고, 분청사기와 백자가 만들어진다.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의 줄임말로, 분으로 장식한 회색빛이 도는 청자그릇이라는 뜻이다. 고려시대 청자와 유사하면서 그릇 겉면에 분으로 장식을 한 그릇이라는 말이다. 분청사기는 14세부터 16세기까지 약 200년 정도 만들어지고 임진왜란 이후 사라진다. 

조선백자는 초기부터 분청사기와 함께 만들어졌으나, 임진왜란 이후 분청사기가 없어지면서 조선을 대표하는 도자기가 된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는 분청사기 보다 흰색의 백자가 더 선호되었다고 말해진다. 정갈한 흰색 빛깔의 백자는 이러한 빛을 빚어내기 위해 청자보다 고열의 불길에서 제작되는 것으로, 진일보한 기술로 평가받는다. 일본의 침략으로 조선의 백자 역시 소멸하게 된다.   

« La terre, le feu et l'esprit – Chefs-d’oeuvre de la céramique coréenne »

ㅇ일시 : 2016년 4 27-6 20

ㅇ장소 : Grand Palais, Salon d'Honneur - Square Jean Perrin

           3, avenue du Général Eisenhower 75008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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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광장 / 현 경, dongsimijs@gmail.com >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3-01-21 16:25:14 문화 / 예술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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